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 - 21세기 페미니즘에 대한 7가지 질문
강남순 지음 / 한길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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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서도 페미니즘에 대한 나의 생각을 여러 번 기록한 바 있다. 나는 페미니스트다. 대학 강의에서도 페미니즘 관련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며 내가 페미니스트임을 숨기려고 한 적 없다. 그동안 다양한 책을 읽었다. 페미니즘 책을 읽으며 화장을 꼭 해야만 할 것 같은 과거의 나, 친가 제사에 가면 꼭 일을 해야 할 것 같았던 과거의 나는 해방되었다. 페미니즘은 확실히 내 삶을 바꿨다. 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은 그것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까지 바꿔주고 있다.

그러나 숙명여대의 트렌스젠더 입학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 이후 페미니즘에 대한 나의 혼란이 시작되었다. 과거의 사건들은 페미니즘과 안티-페미니즘의 대립이었다면, 그 사건을 달랐다. 본인이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서로 싸웠다. 그래서 혼란스러웠다.

이것은 페미니즘이라는 것이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한민국에서는 처음 마주한 문제였기 때문에 발생한 논쟁이기도 하다. 어쨌든, 나는 트렌스젠더 수술까지 마친, 법적으로도 여성으로 인정받은 사람이 대체 왜 여대에 입학하면 안 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트렌스젠더의 여대 입학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궁금해서 <젠더는 없다> 따위의 책을 읽어보기도 했다. (그 책은 읽다보니까 너무 짜증이 나서 끝까지 읽지도 않았다.) 그게 페미니즘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페미니즘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다면 저들과 무엇이 다른가, 내 생각은 어디서 나온걸까?

소수자를 차별하자는 의견에서 느껴지는 직접적인 불쾌함과 부정의함을 어떻게 페미니즘을 통해 설명할 수 있을지 헷갈렸다. 그러다 보니 나 역시도 나모르게 페미니즘에 대해 거리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 예전에는 페미니즘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많은 사건들을 겪을수록 그 시야가 흐릿해지는 느낌이었다.

<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는 이런 나에게 정답을 제시해 주었다. 잠깐 잊고 있었던 관심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나는 책을 굉장히 아끼는 사람이다. 소장하는 책을 고르는데도 까다롭고, 내가 가진 책들에 웬만하면 필기도 잘 안한다. 강박적일 정도로 책을 접고 뭔가 묻히는 걸 싫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익는 동안 연필을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이 좋아서, 필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밑줄을 긋고 별표를 치고 읽는 동안 떠오른 의문들을 책 구석에 적다. 읽는 중간중간 다른 페미니즘 책들을 꺼내 읽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공부를 해가며 책을 읽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데 오래 걸렸다.

페미니즘은 '여성도 인간이라는 급진적 사상'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페미니즘의 도착점은 여성만이 아니라, 젠더, 인종, 계층, 성적 지향, 장애, 국적, 종교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인간이라는 급진적 사상이어야 한다.

<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 p67

그래. 페미니즘은 모든 사람이 인간이라는 급진적 사상이다. 여성의 임금 차별을 이야기하는 것만이 페미니즘이 아니다.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뉴욕 한복판에서 흑인 남성에게 뺨을 맞는 동양인 여성의 이야기도, 완전히 수술까지 마쳐 여성이 된 트렌스젠더가 여대에 입학을 포기하게 된 것도 모두 페미니즘의 영역이다. 우리는 모두 어떤 부분에서는 소수자에 속해 있고, 어떤 부분에서는 강자에 속해있다.

나는 동양인이고 여성이지만, 동시에 비장애인이고 고학벌이며 이성애자다. 따라서 나는 여성으로서의 나, 동양인으로서의 내 권리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페미니즘과 함께 맞설 것이나, 비장애인이며 이성애자인 나 역시도 모른 척 하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누군가의 차별 위에 올라서 있을 수 있다는 걸 안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 그렇다. 이게 바로 페미니즘이 필요한 이유다.

페미니즘은 크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능을 한다. 첫째, '탈자연화'의 기능이다. 페미니즘은 그토록 오랫동안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여겨왔던 행위, 사유방식, 관계방식이 근원적으로 성차별적이며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탈자연화'를 통해 개선해나가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어떤 현상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간주할 때부터 '왜'라는 물음표는 박탈된다.

~ 둘째, 페미니즘은 사적, 공적 영역에서 다양한 '변혁적 균열'을 낸다.

~ 셋째, 페미니즘은 긍정의 언어, 즉 대안적 세계를 제시한다.

<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 여섯 번째 질문

페미니즘과 관련된 책들은 서점에만 가도 아주 많다. 당장 인터넷 서점에 '페미니즘'만 검색해봐도 우리가 아는, 혹은 모르는 책들이 줄을 서 있다. 거대한 도서 시장에서 페미니즘이라는 영역은 아주 큰 부분이다. 이때, <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는 이 시장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가?

카드뉴스 마지막 장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 책은 '페미니즘을 잊은 사람들에게, 페미니즘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이 세상이 어떻게 해야 더 나아질 수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모두 완벽한 선택이 될 수 있다.

페미니즘의 정의라는 가장 기본부터 시작해 페미니스트들이 잊고 있던 지점, 누군가를 공격하느라 외면하고 있던 지점을 짚어 준다. 따라서 나와 같이 '페미니즘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인사이트를 준다.

또한,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어려운 철학자나 개론 근거로 들지 않고, 매 장 끝마다 'Key Ideas Box'를 붙여 친절하게 요약까지 해준다. 강의로 따지면 '중간고사 전에 시험에 낼 부분을 다 알려주는 꿀강'이다. 내용은 진중하지만 문체 자체는 편안하기 때문에 '페미니즘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적절하다. 페미니즘을 오해하며 애써 그것에 대한 언급을 피해온 사람들에게도 좋은 책일 수 있겠다.

그래, 제목 그대로다. 페미니즘 앞에 서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은 한번 페미니즘을 '제대로' 마주해 보라고 손을 내민다. 페미니즘이 기본적 소양으로 자리잡고 있는 이 21세기에, 이 정도도 모르고 살아갈 수는 없다. 우리 한번, 이 책의 손을 잡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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