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수수께끼 - 개정판 마빈 해리스 문화인류학 3부작 1
마빈 해리스 지음, 박종렬 옮김 / 한길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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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들에 대한 설명은 메시아에 대한 설명과, 메시아에 대한 설명은 대인에 대한 설명과, 대인은 성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는 돼지숭배와, 돼지숭배는 돼지 혐오와, 돼지 혐오는 암소 숭배와 관계된다. 이 세상이 암소 숭배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생활양식의 여러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암소숭배부터 연구해보려 한다. 따라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독단적으로 해석하지 않기를 부탁드린다.

이 책의 각 장은 상호 독자적인 근거에 의존하고 있으면서도 서로 연결되는 특징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 학문 분야의 전문가들이 내게 퍼붓고 싶은 공격에 대항할 어떤 방어수단도 갖지 못할 것이다. 나는 전문가를 존경하며 그들에게서 여러 견해를 듣고 싶다. 그러나 독자들이 여러 전문가의 견해를 동시에 받아들이려 한다면, 이는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방해가 될 것이다.

<문화의 수수께끼>, p24-25

이 책은 번역된 지 35년이 지난 <문화의 수수께끼> 개정판이다. 표지부터 내부까지 깔끔하게 바뀌고 앞부분에 화보가 추가해 다시 태어났다. <문화의 수수께끼>, <식인문화의 수수께끼>, <음식문화의 수수께끼>로 이루어진 마빈 해리스의 문화인류학 3부작 가운데 1권이다.

<문화의 수수께끼>는 1장-거룩한 어머니 암소에서 출발해 돼지숭배와 돼지혐오, 원시 전쟁, 성차별에서부터 구세주, 메시아, 마녀사냥에 대한 이야기까지 흘러간다. 매 장마다 다른 주제를 가지고 있지만 결론적으로 모든 이야기들은 서로 통합되어 흘러간다는 생각이 든다. 심심할 때 가볍게 읽은 만한 책은 아니고, 문화인류학적 학술서에 가깝지만 그런 분야와 멀었던 사람이, 진지하게 문화인류학을 맛보고 싶을 때 읽을 법 하다.

그렇지만, 그냥 왜 어디는 암소를 숭배하고 어디는 돼지를 숭배하는지, 중세 시대의 마녀사냥은 어떤 맥락에서 이루어진건지 궁금할 때 읽어도 좋겠다. 궁금하지만 인터넷에 찾아봐도 얕은 설명 이상으로는 찾을 수 없었던 것들이 마치 보물처럼 이 책 안에 담겨있다.

그래, 이 책은 마치 원시시대부터 현재까지의 이리저리 뒤엉켜 있는 실타래들을 우리가 잘 볼 수 있게 살짝 풀고 정리해서 알려준다. 결론적으로 인류의 생활양식들을 잘 다듬어서 내놓은 셈이다. 그것도 아무거나 내놓은 게 아니라, 정말 '수수께끼' 같은, 2020년에 이 책을 읽으면서도 대체 왜 이런 문화양식이 만들어지고 유지된 걸까?- 싶은 주제들을 골라 내놓았다. 물 흐르듯이 이 주제들을 요리하는 마빈 해리스의 글솜씨에 빠져들면서, 문화 인류학에 이런 재미가 있구나, 도 함께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책이 너무 예쁘다!

 


돼지 숭배자들은 기르고 있는 돼지를 자기 식구로 생각하고, 돼지들과 잠자리를 같이 하고, 돼지들과 말을 주고받고, 돼지들을 애무하고 쓰다듬어주며, 끈으로 매어 들로 데리고 다니고, 이름을 붙여 부르고, 돼지들이 아프거나 다치면 마음 아파하고, 가족의 식탁에서 음식을 추려서 먹인다. 그러나 힌두교도들의 암소 숭배와는 다르게 돼지를 의무적인 희생 제물로 바치기도 하고, 특별한 명절에는 잡아먹기도 한다. 제사용이나 성스러운 축제용으로 돼지를 잡아 죽이기 때문에 돼지 숭배는 힌두교 농부들과 그들이 숭배하는 암소들 간에 존재하는 유대 관계보다 더 폭넓은 인간과 동물 간의 유대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전망을 제공해준다. 돼지 숭배의 클라이막스는 돼지의 살과 그 주인인 사람의 살을 결합시키고 돼지의 혼과 조상들의 혼을 결합시키는 때다.

<문화의 수수께끼> p80-81

나에게 가장 가볍고 재미있었던 것, 진지하면서 재미있었던 것. 두 가지는 음식 문화와 마녀에 대한 이야기였다.

<문화의 수수께끼> 첫 장은 '거룩한 어머니 암소', 두번째 장은 '돼지숭배자와 돼지혐오자'이다. 말그대로, 힌두교도의 암소 숭배와 그에 대비되는 돼지 숭배, 돼지 혐오에 대한 이야기다. 더 짧게 줄이면 '돼지와 소, 고기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힌두교라서 소를 안먹는 인도 사람들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나, 왜? 왜 그들은 소를 먹지 않는 것일까? 종교적 이유에서라면, 그 종교는 어떤 이유로 소를 먹는 것을 금지했을까?

지금까지는 굉장히 추상적으로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척 해왔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내가 교과서적 상대문화주의에 물들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로 그들이 소를 먹지 않는 이유는, 환경과 경제적 이유에 있었다. 인도의 경제 성장을 저지하고 청결성에 문제가 있어 보이게 하는 암소 숭배는 서구적 시선으로 봤을 때는 바뀌어야 할 구시대적이고 종교적인 문화이다. 그러나, 그 암소들은 전 생애에 걸쳐 인도의 중하층민들에게 지대한 도움을 주며 농작물 찌꺼기와 장터의 쓰레기들을 먹어치운다. 또한 큰 에너지 소비를 요구하는 쇠고기 도축 산업의 억제를 통해 인도의 특수한 환경에 인간이 적응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했다. 일종의 생존 수단으로 시작된 종교적 명제였으나, 지금은 인도 사람들의 생활, 생산 구조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장에서 다루는 돼지에 대한 이야기도 유사한 맥락이다. 소나 양보다 훨씬 시원한 사육 환경이 필요한 돼지를 기르고 도축하기에는 환경적으로 적합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종교적으로 금지하여 고기에 대한 욕구를 막은 것이다.

 


기원후 1000년에는 그렇게 날아다니는 존재가 있다고 믿는 것을 금지했다. 1480년 이후부터는 날아다니는 존재가 없다고 믿는 것을 금지했다. 기원후 1000년경 교회는 날아다니는 마녀라는 말은 악마가 조작해낸 환영에 불과하다고 공식 발표했다. 500년 후 교회는 날아다니는 마녀는 환영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악마와 손잡은 사람들이라고 공식 표명했다.

<문화의 수수께끼> p281

9장, 10장, 11장은 '마녀'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녀-라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마녀 사냥이라는 제도가 어떤 식으로 누구를 위해 활용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지금까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어린 시절, 뾰족한 모자를 쓰고 빗자루를 타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매부리코의 마녀에 대한 인상을 기억한다. 21세기에 태어난 한국인까지 이런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중세의 마녀 사냥이 인간의 역사에 있어서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으며 지금도 미치고 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인간의 행동들은 긴 역사의 흐름에서 돌아보면 참 자기모순적이며 웃기기도 하다. 교회도 그 예외는 아니다. 마녀가 있다고 믿는 것을 금지했다가, 마녀가 없다고 믿는 것을 금지하고 여자들에게 누명을 씌워 고문하고 화형시켰다가.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마빈 해리스는 차근차근 설명해나간다. 중세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인간의 지성에 대한 의문과 동시에 중세라는 이성의 부재기에 힘과 권력이 어떤 식으로 사용되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 책은 원시시대부터 중세시대, 현재를 이야기한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문화의 수수께끼를 하나하나 풀어나가며, 이런 문화를 맥락적으로 이해하고 궁극적으로는 문화를 스스로 창조해나가는 주체적 해독자가 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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