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박완서를 읽다
김민철 지음 / 한길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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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어떤 꽃의 이름을 알고 불러주었을 때 그것은 비로소 의미를 가지게 된다. 박완서 작가도, 이 책을 쓴 김민철 작가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박완서 작가는 소설을 쓰며 '이름모를 꽃'이 아닌 칸나, 며느리밥풀, 노란 장미를 하나하나 불러주었고 그녀가 이 세상을 떠난지 9년이 된 지금, 그녀의 문학 속 꽃들의 이름을 다시 한번 불러주는 책이 등장했다.

사람들마다 자기의 개인적 경험, 혹은 배경지식에 따라 서로 다른 모양과 색깔의 창을 가지고 어떤 문학을 들여다보고 있다.

김민철 작가는 박완서의 소설을 꽃이 가득한 창을 통해 들여다보고 있던 것 같다. 꽃과 문학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멋진 결과물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박완서의 문학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꽃과 식물에 대한 작가의 애정까지 느껴졌다. 단순히 박완서의 소설 속에서 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그치지 않고, 그렇다면 우리 주변의 어디에서 이 꽃을 찾아볼 수 있는지, 어떻게 구분하는지도 자세히 설명해준다. 꼭 들꽃박사인 삼촌이 내 옆에서 설명해주고 있는 기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목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책도 또 없을 것이다.

이 책의 가장 좋은 점은 사진이 함께 있다는 점이다. 김민철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 그리고 이 책속에 직접 인용된 박완서 작가의 소설 대목을 읽다보면 나 역시도 그 꽃을 스쳐지나갔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아주 오래된 농담>에 등장한 능소화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나 역시 매일 지나다니는 버스 정류장 옆에 피어있는 능소화를 떠올리고,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속 목련의 생명력을 보며 봄이 되면 가장 먼저 피고 떨어지는 아파트 화단의 목련을 생각한다.

박완서의 소설 <저문 날의 삽화4>에서 주인공이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대목을 보면 "그는 미루나무처럼 키 크고 씩씩했고 나는 어여쁘고 팽팽했더랬다"라는 문장이 있다. 작품에는 미루나무라고 나와 있지만 "키 크고"라는 표현으로 보아 양버들이 아닌가 싶다.

<꽃으로 박완서를 읽다> p140

이 책이 꽃으로 박완서를 '어떻게' 읽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을 하나 가져왔다. 작가는 이런 식으로 박완서의 소설 속 나무와 꽃들에 대한 나름의 해석과 개인적 기억을 덧붙여 가며 글을 전개한다. 그 과정이 퍽 흥미로워서, 이 책을 마치 서랍에 넣어놓은 사탕처럼 시간이 날 때마다 한 챕터씩 읽게 된다. 소설이나 철학 에세이처럼 엄청난 몰입과 생각을 요하는 책은 아니지만, 읽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꽃이 피는 봄날을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매일 지나다니며 봐온 익숙한 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그리고 앞으로 그 꽃을 볼 때마다 무언가를 떠오르게 하는것.

그것이 문학이 가진 특별한 힘이 아닐까?

박완서 소설을 다시 펼쳐보게 싶게 만들 뿐만 아니라, 다니는 길목에 핀 들꽃들을 들여다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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