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일대의 거래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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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모가 되어 본 적이 없어서, 솔직히 말하면 잘은 모르겠다.

앞으로 내가 자식을 낳을지도, 인생에서 그만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를 포기하고 살리고 싶을 만큼 가치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모든 부모는 가끔 집 앞에 차를 세워놓고 5분쯤 그 안에 가만히 앉아 있을 거다. 그저 숨을 쉬고, 온갖 책임이 기다리고 있는 집 안으로 다시 들어갈 용기를 그러모으면서. 스멀스멀 고개를 드는, 좋은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숨막히는 부담감을 달래며. 모든 부모는 가끔 열쇠를 들고 열쇠 구멍에 넣지 않은 채 계단에 15초쯤 서 있을 거다.

<일생일대의 거래>, p34

이 책의 도입부는 요즘 읽은 책 중에 가장 충격적이었다. 첫 페이지를 읽고 이런 표지를 한 책이면서 내용은 스릴러인건가? 생각했다. (물론 스릴러가 아니다!) 한가로운 토요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이 책을 펼친 이후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단 한번도 쉬지 않았다.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기 때문에 책을 읽는 시간 자체는 길지 않았지만 그 후의 여운이 오래오래 남았다.

책을 다 읽고 엄마와 함께 아침을 먹으며 부모에 대해 생각했다. 부모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엄마한테 나는 대체 무슨 존재길래 <일생일대의 거래> 속 주인공과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기 위해 이 세상에서 나의 존재 자체가 지워진대도 받아들일 수 있는, 그 근원은 대체 무엇일까?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다. 죽는 것 자체는 무섭지 않다고 자주 말한다. 대신, 잊혀지기가 너무 무섭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나를 소중히 여겨줬으면 하고 생각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모두가 그렇지 않을까. 그래서 소중한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람과의 사이에서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을 안게 되고, 그 사람들이 내가 죽어서도 나를 그리워해주길 바라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죽음이라는 것은 다름아닌, 이 세상의 누구도 나와 함께한 순간을 기억하지 못할때 맞이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세상에 어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있어서 인터넷에 내 얼굴과 목소리와 표정을 기록할 수 있기를. 그래서 나의 죽음 후에도 나로 인해서 세상이 조금 달라졌구나,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게 된다.

네가 열네 살이었을 때 떠난 마지막 페리 여행에서는 내가 헬싱외르의 지하에 있는 바에서 네게 포커 치는 법을 가리쳤고, 돈을 잃고 있는 사람들을 분간하는 방법을 알려주었지. 독한 증류수 슈납스를 앞에 두고 힘없이 앉아 있는 사람이라고. 게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 사람들을 이용하는 법도 가르쳐주었지. 너는 6백 크로나를 땄다. 나는 계속하고 싶었지만 너는 애원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6백 크로나면 충분해요, 아빠."

너는 페리를 타러 가는 길에 보석 가게에 들어가서 그 돈으로 귀걸이를 샀다. 나는 1년이 지난 다음에서야 네가 마음을 얻고 싶은 여자아이에게 주려고 귀걸이를 산 게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 네 엄마에게 주려고 산거였지.

너는 두 번 다시 포커를 치지 않았다.

나는 자식 농사에 실패했다. 너를 강하게 키우려고 했는데. 너는 다정한 아이로 자랐으니.

그런 의미에서 이 세상에 살아온 흔적 자체와 누군가의 목숨을 맞바꾸는 이 '일생일대의 거래'는 말그대로 일생일대의 거래가 아닐 수가 없다. 더군다나 이 주인공은 사회에서 꽤나 많은 것을 이뤄낸 사람이다. 가족에게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그런 사람이 자신이 이 세상에 남긴 발자취를 전부 지워가며 잘 알지도 못하는 어린 여자아이를 위해 희생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그건... 자신이 아들에게 해주지 못한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잘 성장한 다정한 아들에 대한 부채감 때문일 것이다.

그 아들이 자신에 대해 전부 잊어버린다는 것. 이 세상에서 내가 그의 아버지였음을 포기하는 것은 그 어떤 재물과 명예보다 큰 포기가 아니였을까. 그 심정에 대해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 속 회색 스웨터를 입은 여자가 아들을 보여준 게 아닐까.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또는 한 생명을 희생하기 위해서 무엇을 포기하는 건지. 그것이 얼마나 큰 포기인지.

이 글을 마무리 지으며, 부모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한다.

그들이 나를 사랑하는 만큼, 아니 그 반만큼이라도 그들이 사랑받는다고 느끼게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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