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아메리카나 1~2 - 전2권 - 개정판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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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히비스커스>가 나이지리아라는 낯선 곳에서 펼쳐지는 어딘가 익숙한 이야기였다면, <아메리카나>는 내가 완전히 모르는,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오랜 시간 동안 몰랐을 이야기를 펼쳐낸다.

나중에 그 자리를 떠나며 이페멜루는 디케를 생각했다. 디케가 대학에 가면 ASA에 참석할까, BSU에 참석할까, 남들은 그를 미국계 아프리카인으로 생각할까,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생각할까 궁금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되레 남들이 그가 누구인지를 선택해 줄지도 모른다.

<아메리카나1>, p239

대한민국은 단일 민족 국가(였)다. 나는 20년 평생의 대부분을 한국에서 살아왔다. 내 친구들은 전부 부모님이 모두 한국인인 아이들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통틀어서 한번도 혼혈 혹은 외국인과 같은 반이 되어 본 적 없다. 부모님이 모두 서울에서 근무하는 경기도의 배드 타운이라는 지역적 특성도 있겠지만, 어쨌든 나는 이런 환경 속에서 살아왔다. 때문에 <아메리카나>가 이야기하는, 미국에서 흑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내게 매우 낯선 이야기였다. 단 한번도 '이질적인 존재'가 되어 본 적 없을 뿐만 아니라, 나의 인종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은 단연코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그랬을 뿐만 아니라, 주변에 (인종적으로) 그런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도 없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메리카나>가 내게 미국에서 타인종으로 살아가는 것은 무엇인가-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고 고민하게 되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타인종으로서 미국이라는, 거대한 용광로에서 자리를 잡아야 할때는 내가 온전히 나로서 평가받기 어렵다. 아마 나는 '한국인' '여성'이라는 인종으로 먼저 평가받게 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남들이 내가 누구인지를 선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온통 낯선 이들로 가득한 곳에서 나는 어떻게 나의 주체성을 획득할 수 있는가?

형광 분홍색 재킷을 입은 자그마한 여자가 말했다. "나는 가나 자선 단체의 이사장이에요. 우리는 시골 여성들과 일하고 항상 아프리카인 직원을 찾고 있어요. 현지 인력을 쓰지 않는 NGO가 되고 싶지는 않거든요. 그러니까 졸업 후에 일자리가 필요하고 아프리카로 돌아가서 일하고 싶거든 나한테 전화해요."

"감사합니다." 이페멜루는 문득 미친 듯이 강한 열망을 느꼈다. 받는 사람들의 나라가 아니라 주는 사람들의 나라 출신이고 싶었고, 가진 것이 많아서 남한테 베푸는 축복을 누려 온 사람 중 한 명이고 싶었고, 넘치는 연민과 동정심을 가질 만큼 여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고 싶었다 그녀는 신선한 바람을 쐬러 베란다로 나갔다.

<아메리카나1>, p287

이 책을 읽으며, 나 역시 아프리카를 고정관념 속에서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나? 생각하게 되었다. 이페멜루는 소설 속에서 꽤 많이, 미국에서 자신은 나이지리아 사람이라기보다는 비미국인 흑인, 아프리카 사람이라고 말한다. 나 역시도 아프리카 사람들이 하루 1달러로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나? 아프리카 사람들이 무슨 언어로 말하고 무슨 음식을 먹는지 알고는 있었나?

그런 의미에서 아디치에가 페미니스트로서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사람으로서 얼마나 큰 영향을 지닌 사람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아프리카 사람'이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것이 미디어를 통해 많이 노출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우리가 가진, '아프리카에 대한 막연한 고정 관념' 또한 미디어를 통해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검은 피부를 가지고 성공한 사람이 버락 오바마뿐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캡틴 마블이 여자도 히어로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듯, 검은 피부를 가진 아프리카인 여성 또한 성공할 수 있고, 그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책을 통해 알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유니세프나 초록 우산 등의 자선 단체에 매달 돈을 기부하고 아프리카 어린이의 편지를 받는 것은 '착한 일'이며, 못살다가 잘 살게 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세계의 빈민들을 돕는 것은 자랑스러운 것처럼 여겨졌다. 물론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의 입장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은 있었나? 유명한 연예인들이 아프리카에 가서 학교를 짓고 밥을 먹여주는 모습 말고, 그 아이들이 파업으로 대학 공부를 제대로 마치지 못해 미국으로 떠날 수도 있다고, 그 타국에서 가난을 이기지 못해 성매매의 길목까지 들어갔다가 나올수도 있다고 생각해 본 적 있나?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해 본 적 있었나?

솔직히, 나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페멜루가 말하는 이야기의 이 지점에 새삼스러운 충격을 받았다. 이는 어쩌면 안온한 모국에서 온실 속 화초처럼 살아온 나의 경험 부족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살면서 느끼지 못할 인종적 경험이기도 하다. 내가 같은 상황에 처해있어도, 황인종으로서 느끼는 경험과 나이지리아에서 온 비미국인 흑인이 느끼는 경험은 분명히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에식스로 가는 기차에서 그는 자기 주위에 앉은 모든 사람이 나이지리아인임을 깨달았다. 요루바어와 피진 잉글리시로 떠들어 대는 시끄러운 대화가 객차 안을 가득 채웠다. 순간 그는 유색인들이 자신의 이국성을 마음껏 드러내고 있는 이 장면을 아까 지하철에서 만났던 백인 여자의 의심스러운 시선을 통해 보았다. 그리고 서점 커피숍에서 만났던 스리랑카 혹은 방글라데시 출신의 여자와 그녀가 막 벗어나고 있던 슬픔의 그림자를 다시 한번 생각했고, 어머니와 이페멜루를 생각했으며, 자신이 갖게 되리라 상상했던 삶, 그리고 노동과 독서, 공포와 희망으로 덧칠된 지금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그토록 외롭다고 느꼈던 적이 없었다.

<아메리카나2>, p61

우리나라에서 외국으로 떠나는 사람은 대부분 부유층이다. 대한민국에서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할것 같다, 싶으면 외국으로 보내거나, 외국에서 오래 살다온 사람이 특별 전형으로 쉽게 대학에 입학한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에서 외국 생활의 경험은 일종의 특권처럼 여겨지고, 실제로도 그렇게 작용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 아프리카에서는 외국 생활을 다르게 정의한다. 부유하기 때문에 해외로 나가서 다양한 경험을 누리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들은 나이지리아에서는 학업을 제대로 마칠 수 없어서, 가난해서 미국과 영국으로 떠난다. 그리고 그동안 쌓아왔던 환상과 마주하게 된다.

알렉사와 다른 손님들, 어쩌면 조지나조차도 누군가가 전쟁으로부터, 또는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 가난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이해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져다주는 억압적인 무기력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욕구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오빈제 같은 사람들, 즉 유복하게 자랐지만 불만에 빠져 있고 태어날 때부터 고국이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도록 길들여진, 진정한 삶은 그 다른 곳에 있다고 영구불변하게 확신하는 사람들이 단지 떠나기 위해 - 그중 어느 누구도 굶주리거나 강간당하거나 마을이 불타지 않았지만 그저 선택의 가능성과 확실성에 목말라서- 위험한 일, 불법적인 일을 하기로 결심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아메리카나2> 中

그렇다. 이페멜루와 오빈제는 우리가 알고있는 아프리카의 전형성처럼 굶주리며 성장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오빈제는 영문학 교수의 아들로, 남부럽지 않은 외모와 환경에서 자랐다. 그런 이가 영국에 가서 화장실을 청소하고, 막노동을 하는 삶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만약 몰라서 그랬던 거라면, 그는 어떻게 이 모든 것을 견뎠는가?

그 이유는 책에 나와있다. 외국에서는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보라색 히비스커스>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오빈제에게는 킴벌리의 아버지와 유사한 형태로, 아니 그보다 더 거대한,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억압이 존재했다. 도저히 개선할 수 없을 것처럼 여겨지는 어떠한 악습과 제한이 그를 이렇게 만든 것이다.

그때 디케에게서 문자가 와서 그녀의 전화가 삑삑 댔다. 믿기지가 않아. 우리 나라 대통령이 나와 같은 흑인이라니. 그 문자를 몇 번이나 다시 읽는 동안 그녀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텔레비전에서는 버락 오바마와 미셸 오바마와 어린 두 딸이 무대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들은 쏟아지는 눈부신 빛 속에서 승자다운 미소를 띤 채 바람에 실려 오듯 부드럽게 걸어왔다.

“청년과 노인. 부자와 빈자, 민주당원과 공화당원, 흑인, 백인, 히스패닉, 아시아인, 아메리칸 인디언, 동성애자, 이성애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비롯한 우리 미국인들은 지금 전 세계에 우리가 공화당 파와 민주당 파의 단순한 집합이 아님을 보여 줬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미합중국이라는 하나의 국가일 것입니다."

버락 오바마의 목소리가 오르락내리락하는 동안 그의 표정은 엄숙했고 그 주위에는 희망에 찬, 어마어마한 숫자의 빛나는 군중이 있었다. 이페멜루는 이 장면을 보면서 넋을 잃었다. 그 순간에 만은, 그녀에게 미국보다 아름다운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메리카나2> 中

버락 오바마라는 존재가, (비록 '순수'한 흑인은 아닐지라도) 피부색이 검은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것 자체가 미국 내의 (비미국인, 미국인을 모두 통틀어) 흑인들에게 얼마나 큰 희망이나 기쁨이 되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실제로 작가가 이 순간에 얼마나 벅차올랐는지를 이페멜루를 통해 말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미셸 오바마의 자서전 <비커밍>과 함께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 당선이라는 동일한 순간에 미셸 오바마가 영부인으로서, 흑인으로서 느꼈던 기쁨과 미국의 흑인들이 느꼈던 환희를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미국처럼 다인종이 뒤섞여 살아가는 국가에서는 인종이라는 개념이 미국인들에게 큰 이슈가 된다. 오바마는 혼혈이지만, 피부색이 검은 사람과 결혼해 검은 아이들을 낳은 사람이 미합중국의 대통령 자리에 오른 것은 어떠한 논의를 떠나서 그 자체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이 소설은 미국에서의 인종 이야기, 흑인의 머리 이야기 등 나로서는 만나볼 수 없는 다양한 시각을 열어주기도 했지만 일단 이페멜루의 성장 소설이다. 그리고 이페멜루의 청소년기에서부터 그녀에게 큰 영향을, 지속적으로 미친 사람은 오빈제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사랑을 택한다'는 조금은 진부한 이야기가 이렇게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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