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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 - 거리의 인문학자 최준영 에세이
최준영 지음 / 이지북 / 2013년 7월
평점 :

거리의 인문학자, 거지 교수로 불리는 최준영 인문학 대중 강연가가 새로 낸 책이다. 최준영은 매일 페이스북에 420자 칼럼을 연재하여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 책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는 페이스북에 연재한 글 중 몇 가지를 뽑아 엮어낸 것이다.
1. 최준영 작가가 거리의 인문학자, 거지 교수로 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준영은 인문학 강좌 1순위 초청 강연가지만, 학벌이나 졸업장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다니던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야학에서 공부를 배워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이후 대학교에 들어가지만 그마저도 도중에 그만 두었다. 그래서 강연 때면 자신이 '사'자 와는 거리가 멀다 말한다. 박사, 석사, 심지어는 학사 자격까지 없다 얘기하지만 학벌이 낮은 그가 학벌 사회에서 인문학 강연가로 활동한다고 해서 그를 비난할 자격을 지닌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실제로 오로지 학벌 때문에, 최준영을 비난하거나 그에게 야유를 보내는 이들도 꽤 많다고 들었다. 묻고 싶다. 당신네들의 삶은 과연 이 자를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남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선 나에게는 그럴 자격이 일절 없다.
최준영은 가장 낮은 곳에서 인문학을 몸으로 실천한다. 야학에서, 교도소에서, 미혼모 시설에서, 노숙인 분들이 계신 곳에서, 최준영은 자신을 필요로 하면 그 곳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간다. 최준영은 입만 산 강연가도 아니고, 글발만 내세우며 작가인 척 하는 사람이 아닌 직접 실천하는 인문학자였기에 나는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 씨를 행복하게 해준 건 사람의 온기였습니다. 흔히 인문학을 사람을 알아가기 위한 학문이라고 말합니다. 삶의 의미를 알아가는 것이라고도 하고, 더 구체적으로는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성찰하는 학문이라고도 말하지요. 그러나 김 씨를 만난 뒤 인문학에 대한 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거창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어요. 김 씨처럼 사람으로 인해 사람이 행복할 수 있음을 확인하는 것, 사랑을 통해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것, 그것 이상의 인문학은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
김 씨 덕분에 노숙인에 대한 정의도 달리하게 되었습니다. 노숙인이란 그저 집이 없어 거리의 삶을 사는 사람, 돈이나 경제력이 없는 사람, 빚에 쫓기는 사람, 가족과 헤어진 사람, 직장이 없는 사람쯤으로 생각해왔지만, 김 씨의 사연을 들은 후 노숙인은 돈이나 잠자리, 직장보다 더 소중하고 중요한 것, 즉 사람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34쪽)
노숙인을 대하는 그의 마음과 태도는 정말이지 각별하다. 받는 것 없이 매번 퍼주기만 하면서도, 자신은 노숙인에게 항상 인문학 성찰의 기회를 제공받아 고맙다고 말한다. 책을 읽으며, 강연을 들으며 최준영 그는 정말이지 착하다 못해 바보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그 유쾌하고 호탕하면서도 따뜻한 마음씨에 빠진 모양이었다. 내가 절대 하지 못할 일을 하는 그를 어찌 바보같다 할 수 있을까. 나는 최준영의 책을 지하철에서 내내 읽었다. 주변에 사람이 그렇게 많은 곳인데도 불구하고, 울컥 울컥한 순간이 어찌나 많던지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눈에 힘을 주고는 했다.

(작가님 강연회에도 다녀왔다. 목소리가 어찌나 좋으신지, 계속 듣고 싶은 목소리였다. 팟캐스트 '저렴한 강의'도 시작하셨다고.)
2.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 ?
책의 제목이 참 뜨끔하다. 작가는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라고 말한다. 나는 살면서 부끄러운 일이 있었으면 어떻게든 회피하려 하고 기억에서 지워내려 하는데, 최준영 작가는 바로 다음날 그 앞에 맞선다. 참 용감하다는 생각이 든다.
실은 최준영 작가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그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페이스북에 올리는 칼럼이니 더욱 날것의 그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 점을 감안할지라도 썩 매끄러운 글이다 혹은 참신한 글이다 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문장의 호응 관계가 맞지 않는 경우도 여럿 있고... 그렇지만 작가의 글을 좋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 '진심' 때문이다. 가식없는 글, 진심이 가득 담긴 글은 그것만으로도 사람을 감동시킨다. 게다가 알지 않는가, 그의 활동을. 몸을 낮추고 해온 일들을 모두 부정하고 거짓이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작가의 글이 진심과 진실로 가득차 있다는 점 역시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작가도 말한다. '진심이 아름다움을 만든다'고(63쪽).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 올릴 땐 매양 잘 썼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 다음날 보면 쥐구멍을 찾고 싶은 거다. 삭제해 버릴 수도 없는 게 이미 '좋아요'나 '댓글'을 달아준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부끄러운 글을 밑으로 내리는 방법을 고민했고, 그게 바로 매일같이 글을 쓰는 이유가 된 셈이다." (프롤로그 중)
지하철에서 작가님의 책을 읽고 감동받거나 울컥하거나 그러고 있었으면서도, 생계의 어려움으로 손을 내미는 노숙인의 손은 거부했다.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러면서 내 머릿속은 복잡했다. 아, 나는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구나. 백날 책을 읽고 인문학 강의를 들으면 뭐하니 너. 난 아직 잘 모르겠고, 아직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부끄러움이라도 제대로 밝혀 보려고, 그러면 언젠가 나도 무언가 달라지지 않을까 해서 부끄러움을 드러낸다. 그리고 나도 매일 글을 써볼까, 생각한다. 글쓰기를 좋아하면서도 매일 쓰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이 아님을 안다. 매일 부끄러움을 상기시키고, 매일 무언가 끄적이다 보면 나도 '인문학 실천'까지는 못하더라도 '인문학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사람을 보듬고 쓰다듬어 포용할 줄 아는 사람이 제일 멋진 사람임을 깨달았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