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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호랑이
네주 시노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3월
평점 :
가슴이 볼록 튀어나오기 시작했고 새로운 속옷을 입어야한다며 선물을 받았다. 엄마가 입는 것과는 다른, 작고 얅으며 부풀어져 있지 않은 모양새. 순전한 호기심 때문이었는지 속옷을 보고 싶어했던 아빠를 엄마도 이해했었던 것 같다. 부엌에서 밥을 먹다 속옷을 입은 몸을 보여주었다. 그 이전과 그 이후에 어떤 성적인 접촉은 없었다. 그냥 책을 읽다가 그 때가 불쑥 떠올랐을 뿐. 그의 호기심은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되어 나에게 찾아왔을까. 호기심을 해결해주었던 마음에는 의심의 눈초리가 없었을까. 나는 없었다. 엄마가 그 날 보냈던, 내가 알지 못하는 그들의 밤을 나는 알 수 없다. 아마 이 글을 쓴 이후에도 묻지는 않을테다.
언급했던 노랫말의 반복되는 한 구절. "내가 얼마나 널 사랑하는지, 내가 얼마나 널 사랑하는지, 내가 얼마나 널 사랑하는지." 이 달콤하고 아릿하고 미안하고도 복잡한 사랑표현이 그녀의 이야기를 살펴보고 난 이후에 어떤 표정을 불러일으킬지 궁금했다. 상당히 역겹게 다가올 것이라고. 상당히 역겹게. 얼굴을 때리다 눈이 돌아가더니 옷을 끌어내리려던 같은 반 역겨운 개새끼와 그 때 들리던 커다란 목소리. 너희들 지금 뭐하니? 일상적이지 못한 눈, 망설임, 떨리는 목소리, 계속되는 합의, 나에게나 너에게나 나는 널 사랑해. 내 사랑을 너에게도 동의 받고 싶어. 사랑의 이유가 정체성에 있는 것도 우습다. 동의의 표현에 성적인 유희가 있어야 하는 것도 짜친다. 너를 나의 알 수 없는 무거운 힘으로 짜부러드릴 때 내가 얼마나 큰 사람이 되는지 알아차리는 순간을 너도 느끼지? 차라리 솔직해져라. 모든 말들을 던질 때마다 그의 빈틈들을 공략했다.
문학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예술의 시작이 되는 마음, 사상이나 괴물들의 첫 시작이 되는 마음들이 품은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은 더러운 것들을 미화하는 사람들을 생각했었나.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의 시작, 그 기준을 나도 너도 우리 모두가 알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일이 끝났다고 선언하던 사람과 법과 제도 속에서 나뒹굴어진 작가의 눈으로 모든 것들이 끝나지 않는 하루하루를 체험한다. 글이 쓰여진다는 건, 어떤 표현이든 시작하게 되는 건 내가 이미 어디든 뛰어 넘었다는 거야. 그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지. 살아서도 죽어 있는 것.
나는 그런 경험이 없어. 너무 적나라한 시작이잖아. 생각하는 당신에게는 무심한 삶의 태도를 지켜보는 과정에서 상처를 받은 적은 없었는지, 당신이 아는 도덕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묻고 싶다. 가까이에서도 멀리 떠나야 살 수 있었다는 작가에게서 나는 무엇에 고마움과 위로를 느꼈기에 여기 이러고 있을까. 선물해주고 싶은 사람이 생긴다면 그의 어떤 모습에서 마음이 생겼을까.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음을 알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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