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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역사산책 : 한국사편 ㅣ 골목길 역사산책
최석호 지음 / 가디언 / 2022년 3월
평점 :

어렸을땐 국사,세계사 과목은 암기과목으로 외워야 하는 부담감에 싫기만 했는데 시대에 흐름을 이해해서 그런지 재미있기도 하고 궁금한게 많아진 것 같다.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한국 역사는 자랑스러운 역사일지 저자는 물음을 가지고 역사를 찾아 나섰다.


역사적인 장소가 많지만 대표적인 명소 4곳의 장소를 설명하고 있다.
남촌 대한민국길

반듯하고 넒은 길에 복잡하게 얽힌 좁은 골목길이 조화를 이룬 북촌에는 고관대작들이 산다. 구불구불하고 좁은 길이 마치 서촌 골목길 같은 남촌에는 천예가 산다. 그래서 오르내리는 언덕이 많다.
광복과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제자리를 찾아가는가 싶더니 70년도에 국가안전기획부 건물이 들어서면서 많은 사람들이 간첩으로 둔갑하고 고문을 받으면서 죽어갔다. 온전히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 것은 95년 민간정부를 세우고 난 이후다.
계획적으로 만들었다기보다는 한 걸음씩 발로 밞아서 다진 동네로 한양은 남촌 사람 동네고 조선은 남촌이다. 독립 전쟁 선봉에 섰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기 때문에 대한민국 길이다.

우당 이회영은 육형제 중 사남으로 일제 강점기 시대에 독립투쟁 기구를 개설하고 재정적인 도움을 아끼지 않았던 독립운동가로 유명하다.
다섯 형제들 모두 우당 이회영과 함께 조국을 위해 재산과 목숨을 아끼지 않은 삶을 살았던 이들의 집터만이 남아 있다.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대한제국 시종원경 윤덕영 가옥, 관훈동 민씨 가옥, 오위장 김춘영 가옥, 도편수 이승업 가옥 등으로 한옥마을을 만들었다.
친일파로 유명한 윤택영의 재실은 순종이 처가 제사에 참석하는 데 불편하지 않도록 지은 건물이다.
합방이후 한양보소 만고역적 윤택영이
부원군 명색되고 인군에 옥새빼사
일본통감 갓다주고 저에비절 벗고나내
가사 문학작품 <한양가>
윤택영이 황제에게 옥새를 빼앗아 일본 통감에게 가져다주고 그 댓가로 자신의 빚을 갚았다는 이야기.
그런데 실제 옥새롤 훔쳐서 한일합방 조약서에 날인하게 한 것은 윤택영의 동생 윤덕영 이었다는 사실.
여러번 한옥마을을 가면서 가옥을 둘러보긴 했지만 이런 내용을 알지 못한채 집구조에만 관심을 가진 나 자신에 깊은 반성을 하게 된다.

지하철1호선 서울역 1번 출구로 나오면서 부터 시작되는 남촌의 명소들을 모두 가볼 수 있도록 코스 설명과 지도를 첨부해주고 있다.
주말 하루 시간을 비워 돌아보고 평래옥 냉면을 맛본후 커피한약방 까지 완벽한 코스가 될 듯 싶다.
운주사 고려길

구름이 머무는 곳일라 불리는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에 '운주사'가 있다.
운주사에는 천불천탑이 있는데 석상과 석탑이 매우 많다는 뜻이라고 한다. 온전한 것과 부분적인 것 모두를 합쳐 130여 개에 달한다.

운주사 은하수 하늘길 석탑들은 대부분 7층인데 7이라는 숫자는 도교에서 매우 중요한 뜻을 지닌다.
해와 달 일월과 화성·금성·수성·목성·토성 등 오성을 합친 칠정이다. 칠정과 북두7성 그리고 음양오행이라는 관점에서 운주사를 조망하면 운주사에는 우주의 기운이 서려 있어 당을 걸어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길을 날아다니는 신성이 된다고 한다.
눈쌓인 석탑길이 아름답고 운치 있게 느껴진다.
시냇물 잔잔하고 돌길 비꼈는데
고요한 모습 도인의 집과 같구나
뜰앞에 누운 나무 봄에도 잎이 없으니
벌들은 온종일 꽃에만 날아드네
빈 창에서 꿈을 깨니 달이 반쯤 비치었는데
숲 속에서 종소리 나자 중의 집인 줄 알았다오
새벽 무렵 부는 바람 느닷없이 험악하더니
아침 되자 남쪽 도랑에 떨어진 꽃 떠내려오네
평지 원구형석탑이 원래 구층이었다고 추정하나 일곱 개가 있었으나 현재는 네 개밖에 없다. 그런데도 아홉개가 있었다고 추정하는 이유는 개경 황궁 북쪽에 있는 구요당을 염두에 둔 것이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또 다른 세계를 땅 위에서 석탑과 석상으로 연출한 것은 스톤헨지나 모아이 거석보다 한 수 위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강릉 조선길

오죽헌,율곡기념관,선교장,신사임당이 그림을 그리고 율곡 선생이 나시고 허균 젊은 시절 기억이 서린 곳이다. 강릉에서 변치 않는 것은 한결같이 역사와 관련된 것 들이다. 모든 조선시대와 관련이 된다.

21세 율곡은 한성시에 급제를 했고 퇴계는 율곡의 사람됨과 똑똑함에 놀랐다고 한다. 58세 대학자가 20대의 청년에게 이런말을 했다는게 더욱 놀랍다.
차후 병조판서가 된 율곡은 '육조계'를 올린다.
1.어질고 유능한 사람을 임용하시라.
2. 군사와 백성을 양성하시라.
3. 국고를 풍족히 하시라.
4. 국경을 튼튼히 하시라.
5. 전쟁에 쓸 말을 준비하시라.
6. 백성을 인과 의로 교화하시라.
이처럼 율곡은 왜곡된 정치를 바로 잡고, 개혁을 통해 백성을 편안케 하고, 변방을 튼튼히 지켜 오랑캐가 넘볼 수 없는 나라 조선을 반듯하게 세우고자 했다.
많은 사람은 더불어 살았으면서도 율곡 선생을 제대로 몰랐던게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사임당과 율곡의 집, 오죽헌은 단순하지만 가장 오래된 건축형태로 청렴하고 강직하게 살고자 했던 조선 선비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기와집이다.
사임당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또 뛰어난 솜씨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초충도'는 사임당을 상징하는 그림이기도 하다. 테두리선이 없는 몰골법으로 그린 양귀비를 중심으로 나비와 도마뱀,쇠똥구리를 조합해서 그려내었다. 세밀하고 정밀함이 예술이다.
나라의 인재를 훌륭히 키워내고 본인의 학문과 재능을 겸비했던 현명한 여인이었음에 틀림없다.
경주 신라길

경주는 우리나라 역사지와 수학여행지로 이미 유명한 곳이다. 새벽 일찍 일어나 토함산에 올라가고 석굴암에 들어갔으나 많은 관람객과 지친 피로에 별다른 감흥은 일어나지 않는다. 신라는 삼한일통 대업을 달성한 동아시아 최강국으로 세계로 가는 신라길이다.


경주 최부자로 유명한 최씨 고택은 12대 동안 만석꾼 으로 유명하다. 굶주린 사람이라면 누구든 쌀을 퍼갈 수 있도록 곳간 가운데 쌀독을 두었던 사랑채가 있다.
'사방 100리 안에 굶주린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집안의 육훈중의 하나의 가르침을 보아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보여준 것 같다.
월지와 동궁 월지궁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안압지 이다.
연못안에 세 개의 섬이 있는데 블로장생하는 신선들이 살고 있다는 봉래산,영주산,방장산을 월지에 그대로 만든 것으로 도교 신선사상을 형상화 한 것이다.
월지는 일통삼한 대업 달성을 기념할 수 있도록 신라· 백제·고구려 모든 장인이 한마음으로 만든 우리 연못이라고 한다.
이 밖에도 들판 한가운데 우물처럼 보이는 첨성대가있다.
부의 동남쪽 3리에 있다. 선덕왕 때에 돌을
다듬어서 대를 쌓았는데 위는 네모지고
아래는 둥글며 높이는 19척이다.
그 속은 트여서 사람이 속으로부터
오르내리면서 천문을 관측한다.
우리 조상은 첨성대를 천문대라고 알려준 것이다.
별과 별의 움직임은 신라에 영향을 미쳤고 그 하늘과 별을 보고 나라와 임금의 앞날을 가늠했다.
종교와 과학이 결합된 완벽한 첨성대가 있는 것이다.
한국 사람이 한국 역사를 자랑스러워하는 만큼 전 세계인도 한국과 한국 사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한국 사람이 아닌 한국 역사라고 한다.
드라마와 아이돌 그룹의 가수로 인해 한류 열품이 일고 있지만 드라마와 노래는 잊혀지지만 역사는 시간이 지날 수록 값을 매길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자랑스러운 한국 사람으로 나도 한국 역사를 걸어보도록 해야겠다.
개인적으로 역사와 관련된 책들은 수많은 자료와 수집으로 몇배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갈 것으로 생각되어 읽으면서 늘 감사함을 생각하게 된다.
이글은 출판사로 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