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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메로스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욱송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3년 9월
평점 :
이번에 이 단편집으로 다자이 오사무를 처음 접해봤다.
짧은 생을 영화처럼 살다간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단편마다 빛나고 있었고, 우리가 전설이나 성경에서 접해본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감각적인 작품도 있었다. 이 단편집은 일본문학에 관심이 있는 내가 아직도 이 작가의 소설을 안 보고 있었는지에 대해 잠깐 회의를 느끼게 해 줄 정도로 뛰어났다.
달려라 메로스는 일본의 중고등학생 국어교과서에 가장 많이 나오는 작품이라고 알고있다. 사람들을 불신하는 왕에게 ‘믿음’의 가치를 일깨워 주는 이야기이다. 사형선고를 받은 메로스는 친구를 보증인으로 두고 3일간의 기간을 받아 자신이 죽기 전에 꼭 해야 하는 일을 처리하고 돌아오겠다고 간청한다. 사람들의 불신을 널리 알릴 기회라고 생각한 왕은 이 제안을 허락한다. 주인공 메로스는 하나밖에 없는 피붙이 여동생을 시집보내러 간 것이다. 일을 무사히 끝마치고 돌아오는 도중 폭풍우를 만나게 되었지만, 소용돌이치는 불신의 강을 건너 죽기위해 달린다. 마침내 돌아온 메로스는 왕에게 자신을 처형하라고 말한다. 왕은 감동하여 친구와 메로스를 풀어주었다. 원래의 이야기에 다자이 오사무만의 색을 입혀서 새로운 느낌으로 이야기가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후지산 백경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 중 하나이다. 나는 일본여행을 하면서 후지산을 시부야의 선샤인 시티 전망대에서 먼발치에서 봤던 적이 있다. 일본인이 산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산이다. 다자이 오사무는 후지산에 대하여 많은 애증을 표현한다. 어쩔 때는 저속하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다 바라보게 되는 후지산의 모습에 반하기도 한다고 고백했다. 처음에 일본여행 갔을 때는 ‘아, 후지산이다.’라는 생각만 들었다. 다시 일본에 가게 되면 나도 다자이 오사무가 표현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까 기대를 하게 될 정도이다.
굴곡 많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는 아직 인생의 쓴 맛을 보지 못한 갓 스무살의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일단 처음에 봤을 때는 다자이 오사무는 세상을 싫어하는 것 같았고, 자신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인생한탄을 늘어놓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왜 세상을 이다지 부정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덮을 때, 그의 자전적 이야기가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줄이야...
작가의 단편 소설들을 보면 작가가 꿈 꿔왔던, 작가가 생각해온 세계를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었다. 단편 소설의 아름다움을 창작해 낸 계기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것 같아서, 자전적 이야기가 이 단편집을 전체적으로 아름답게 해준다는 것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살아오면서 느껴온 고통을 승화하여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냈으니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마저 아름답게 느껴진 것이다.
가끔씩 이야기가 그리워 져서 다시 이 책을 잡게 만드는 소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은 이게 매력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 단편집은 다자이 오사무에 대해서 많이 알고 싶게 한 소설이었고, 그래서 내게는 소장할 가치가 있다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