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기와 거주하기 - 도시를 위한 윤리
리차드 세넷 지음, 김병화 옮김, 임동근 해제 / 김영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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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도시를 물리적 장소인 빌ville과 정신적 장소인 cite로 구분하여 도시 건설의 역사와 의미를 사례 중심으로 풀어나간다. 도시사회학적 방법론을 통해 도시 계획가들의 사상과 실제 도시의 구현, 그리고 도시 건설 윤리까지 뻗어나간다. 설명을 위해 필요한 모든 자료를 수집한 듯, 소설과 철학, 자신의 경험과 사진, 도시 비평가의 의견과 건축가의 사상적 기초, 현대적 스마트 도시와 수백 년에 걸쳐 완성된 도시까지 망라하며 제러드 다이아몬드나 유발 하라리의 책과 견줄만한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다.

저자: 리처드 세넷은 줄리아드 첼리스트로 음악대학을 졸업했지만 손목굴증후군으로 꿈을 포기했다. 이후 학계에 들어가 아렌트의 제자를 자처하며 사회학, 역사, 철학을 공부해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크게 도시와 노동을 중심으로 책을 저술해 왔으며 이 분야에 있어서 세계적 석학 혹은 장인이라 불릴 만한 학술적 위치를 보유했다.

내용: 총 4부로 구분된 이 책은 빌과 시테로 도시를 구분하여 그 둘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도시 계획가들이 의도한 물리적 도시가 실제로 작동하는 도시는 달랐다. 오스만은 파리의 바리케이드를 부수기 위해, 세르다의 바르셀로나는 평등을 위해 옴스테드의 센트럴파크는 사교성을 위해 건축되었지만 성공과 실패, 예상과 예외는 뒤섞였다. 그 이유는 군중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도시 윤리는 두 큰 학자의 입장으로 정리해볼 수 있다. 제인 제이콥스는 신의 관점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마스터 플랜이 아니라 점진적 성장과 거리의 사교로 발전하는 일종의 아나키적 도시 디자인을 주장했다. 루이스 멈퍼드는 제이콥스의 주장이 나이브하며 대형 개발업자와 건설회사를 상대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다. 또한 거리의 폭력과 범죄를 통제마저도 주민의 자발적 시선 권력에 전가하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게 멈퍼드의 주장이다.

세넷은 제이콥스와 멈퍼드의 입장 소개로 1부를 마무리 지으며 도시 윤리의 실제 작동 방식에 관심을 옮긴다. 2부는 도시의 거주민을 예로 도시 거주의 곤혹을 젠트리피케이션, 계급, 향수의 보존과 기술 발전, 난민과 이웃 등을 주제로 풀어낸다. 3부에서는 이 어려움을 타파할 개선 방안으로 도시의 개방을 주장하는데 스마트 도시를 시작으로 도시가 어떤 형태로 열려있는지 예를 들며 연대의 가능성을 가늠해본다. 마지막 4부는 현재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이슈인 환경오염과 도시의 관계를 진단하며 도시의 윤리적 책임감과 미래를 정리한다.

느낀 점: 칸트, 레비나스, 아렌트, 하이데거, 발터 벤야민의 사상부터 사적 경험까지, 파리의 아케이드부터 한국의 송도까지 부드럽게 이어지는 흐름에 감탄했다. 500여 쪽에 이르는 책이 지루하지 않을뿐더러 놀랍게 자세한 자료와 예시는 책이 아니라 세공품을 보는 듯했다. 도시를 짓는 건축가의 입장과 거주자의 입장을 교차 서술하며 도시사회학의 입문서 혹은 큰 그림 그리기에 적합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여전히 중요한 저술가로 남아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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