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본성에 대하여 사이언스 클래식 23
에드워드 윌슨 지음, 이한음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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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인간의 행동, 특히 사회적 행동과 문화에 대한 윌슨의 설명과 사회생물학적 대안을 더 자세히 살펴보자. 윌슨의 기본 가정은 모든 유기체의 행동은 그 진화 역사의 자연적인 결과라는 것, 즉 수백만 년에 걸친 유전자와 환경 사이에 이루어진 상호작용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사회적, 문화적 행동 또한 유전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은 자명하다.

문제는 '어느 정도까지' 유전자의 지배를 받느냐이다. '어느 정도까지인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간과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사회생물학에 대한 비판하는 이들은 흔히 그것이 인간 행위의 환경적, 문화적 영향을 무시한 유전자 결정론이라고 지적하곤 한다. 그러나 윌슨은 인간의 행동 발달 통로가 하나의 유전자를 출발점으로 하여 죽 하나로 이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명시하고 있다.

인간의 유전자들은 하나의 형질을 규정한다기 보다는 어떤 형질 배열을 발달시키는 능력을 규정하기 때문에 형질에 따라 환경에 의해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달라진다. 어떤 형질---예를 들어 PKU나 정신 분열증 등---을 예정해 놓은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증세가 발현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 형질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이며, 환경 또한 그 발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는 환경의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기도 하다. 어디까지나 유전이 기본이 된다. 유전자에 의해 규정되지 않은 형질이 발현되기는 불가능한 것이므로! 그는 복잡한 현상을 다루기에는 다소 단순한 비유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편의상 유전자와 행동 간의 관계를 '형질 발달은 경사지에서 공을 굴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어떤 형질이냐에 따라 공이 굴러가는 지형은 천차만별이다. 외모 등과 같은 유전적으로 매우 속박된 형질들은 죽 뻗은 대로로 거침없이 나아가겠지만 행동 발달 지형은 훨씬 복잡하다. 물론 초기의 유전자가 지시하는 통로 쪽의 골이 더 깊이 패여 있으므로 보통은 그 쪽으로 굴러갈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압력이 작용한다면 공이 나아가는 방향은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학습이나 문화도 마찬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인간의 행동에 미치는 그것들의 영향이 크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이들도 궁극적으로는 유전자에 의해 프로그램된 것이기에, '준비되어'있다. 윌슨은 인간의 사회적 진화가 문화적 진화와 생물학적 진화의 쌍궤도를 따라 나아간다고 말한다. 생물학적 진화는 그 속도가 보다 느리기 때문에 문화적 진화에 의해 추월당한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한계'가 있다는 것! 그 한계를 넘으면 생물학적 진화는 문화적 진화를 자신의 등뒤로 끌어당기기 시작할 것이다. 사실, 전 세계에 걸쳐 있는 매우 다채로워 보이는 문화 현상들도 '한계' 안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었던 소수의 길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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