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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5
아리카와 히로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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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목이 가슴을 푹 찌르는군요 ㅠㅠ 아리카와 히로 팬이라.. 빨리 나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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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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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미스터리란 무엇일까. 

사전을 찾아보면 ‘설명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일’ ‘추리 소설, 탐정 소설’을 미스터리라고 한다고 되어 있다. 즉, 미스터리 소설이란 작품 내에서 다루어지는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평범한 사고로는 추론하기 어렵게끔 쓰인 소설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자신의 이성으로 추론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고, 그것을 분석하고 체험하려 하는 본능을 갖고 있다. 그것이 문학적 가치에 대해서는 논란이 끊이지 않지만, 또 미학적 관점에서 보기엔 어떨지 모르겠지만, 미스터리 소설이 대중적 인기와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된다.
 

재미있는 미스터리 소설이란 초반에 독자들에게 던진 의문의 낚싯줄을 마지막에 낚싯대를 튕겨 올리는 순간까지 팽팽하게 유지되는, 그리고 그 낚시에 걸려든 독자들이 수면 위로 끌어올려질 때의 충격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그런 작품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물고기도 한 번 물었던 미끼에는 좀처럼 낚이지 않는다고 하듯이, 미스터리 소설 독자들 역시 작가가 던진 미끼가 이전에 물었던 것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 나면, 더 이상 그 작품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결국 미스터리 작가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소재를 찾는 것은 물론, 이미 수많은 미끼에 익숙해져 날카로운 안목을 갖게 된 독자들을 감쪽같이 낚을 수 있는 새로운 장치, 새로운 트릭, 새로운 반전을 개발해야 하는 것이다.
 

2007년, 그야말로 혜상과 같이 나타나 2008년 일본 문단을 충격과 감탄의 소용돌이에 빠뜨린 신예 작가 미나토 가나에의 데뷔작 [고백]은 실로 오랜만에 재미있는 미스터리의 정수를 맛보게 해준 작품이다.
 

총 여섯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본래 제1장 <성직자> 만으로 완결된 단편 소설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성직자>가 제29회 소설 추리 신인상을 수상하며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자 이 작품에 연관된 다섯 편의 이야기를 추가하여 하나의 장편 소설로 엮어내게 되었고, 그것이 이번에 내가 읽은 이 작품 [고백]이다.
 

고백이란 무엇일까.
 

사전을 찾아보면 ‘숨김없이 사실대로 말함’이라고 되어 있다.
 

[고백]에는 다섯 사람의 여섯 가지 고백이 등장한다. 독자는 그 고백들을 읽으면서 작품의 축이 되는 하나의 사건에 얽혀 있는 관계자들-혹은 관계자가 아니었으나 불가피하게 관계자로 끌려 들어온 사람들-의 입장을 차례차례 알아가게 된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무엇보다도, 어떤 한 주인공의 입장을 위주로 하여 전개되기 쉬운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작가가 철저히 객관적 입장에서, 완벽하게 모든 등장인물 각각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고백을 써내려갔다는 사실에 전율을 느꼈다. (아마도 작가는 이 작품을 쓰기 전에 각 인물에 대해 치밀한 프로파일링 작업을 했을 것 같다.)
 

그리고 작품을 읽어가면서 두 번째로 전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등장인물 각자에게 선과 악의 입장을 부여하는 작가의 스토리텔링이 예상 가능한 범주를 완전히 뛰어넘었기 때문이었다.
 

하나의 살인사건이 있었다. 그것도 그 피해자는 순수하고 무력한 어린아이였다. 이쯤 되면 독자의 머릿속에서는 당연히 살인자가 악, 피해자와 그 어머니가 선이라는 이분법적 선입견이 생기게 된다. 작가 역시도 그런 개념을 굳이 꼬거나 뒤집지는 않는다. 하지만 독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고백을 읽어가면서 점점 혼란에 빠져들게 된다.
 

[고백]의 피해자는 아무런 이유 없이 범죄의 희생양이 된다. 굳이 따진다면 소소한 이유가 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너무나 소소하기 때문에 이유라고 하기조차 어렵다.
 

반면, 가해자에게는 가해의 분명한 이유가 존재한다. ‘묻지마 범죄’ 같은 예외가 있기는 해도, 대부분의 악행에는 납득할 만한 이유나 동기가 있다. 전통적인 드라마트루기를 가진 이야기 속의 범인이라면 특히 그렇다. 범인은 그런 것을 통해 스스로를 설득하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한다. [고백]의 가해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고백]의 가해자들이 일반적인 이야기의 그것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그들이 살인자이지만 살인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살인 계획을 세웠으나 결국 사람을 죽이는 데에는 실패한 자, 사람을 죽일 의도는 없었으나 결국 자신의 의지로 사람을 죽인 자, 살 수 있는 길을 열어두긴 했으나 결국 가장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 했던 자 등…… [고백]에 등장하는 가해자들에게서는 작위적인 단순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마지막에 장치되어 있는 대반전을 보고 나면, 책을 덮으면서도 과연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였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
 

철저히 자신의 입장에서 ‘고백’이라는 형식을 통해 자신의 정의를 피력하고자 했던 다섯 사람.
 

그리고 그들과 대비되는, 철저히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았던 ‘세상을 바꾸는 철부지 선생님’. (이것은 실존 인물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캐릭터인 듯하다.)
 

[고백]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정의를 알아줄 거라고 생각하고 행동했고, 자신의 정의가 옳다는 데에 추호의 의문조차 품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모든 결말은 비극, 비극, 또 비극으로 이어졌다.
 

자신의 진심을 ‘숨김없이 사실대로’ 말한다 해도, 그것이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좀처럼 그런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의 진심이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좀 더 깊이, 여러 번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고백]이 일본에서 그처럼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단순한 흥미 본위의 미스터리가 아닌, 인간 심리에 대한 놀라운 성찰과 캐릭터에 대한 치밀한 프로파일링을 바탕으로 쓰인 작품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정말 오랜만에 읽은, 정말 잘 만들어진 심리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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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의 피 - 상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1
사사키 조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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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일본 경찰 소설의 1인자’라고 불리는 사사키 조(佐佐木 讓)는 경찰의 조직이나 업무 등에 박식한 것은 물론, 경찰관들의 생활이나 심리의 리얼한 묘사에 탁월한 작가로 정평이 나 있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에서는 만 30년 동안 추리, 미스터리, 역사, 청춘소설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많은 팬 층을 보유한 유명 작가로서, 특히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발표하기 시작한 경찰 소설 시리즈는 방대한 자료 조사와 탁월한 심리 묘사, 치밀한 미스터리 구조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최근작인 <경관의 피>는 독자들이 선정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에 등극하는 한편, 일본의 대형 TV 방송사인 아사히TV의 개국 50주년 기념 스페셜 드라마로 제작되는 등 그 작품성과 흥행력을 널리 인정받고 있다.
<경관의 피>에는 가족 3대에 걸쳐 경찰관의 길을 걷는 일가가 등장한다. 경찰관을 아버지로 둔 아들과 손자는 아버지의 뒤를 좇아, 아버지를 죽게 만든 그림자를 좇아 경찰관이 되어 60년이라는 유장한 세월을 헤쳐 나간다. 작가는 이 세 명의 경찰관과 그들의 가족, 친구, 이웃 사람 등 수십 여 명에 이르는 인물들을 일본의 근현대사 속에 절묘하게 배치하고, 그중에 역사 속에 실제로 존재했던 사람들을 중간 중간 섞어 넣어 박진감을 더하고 있다.
미스터리 소설로서의 <경관의 피>는 좀 독특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감이 좋은 독자라면 초반, 혹은 중반쯤에서 이미 범인이 누구인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3대에 걸친 이야기’라는 작중의 구조는 주인공이 범인의 윤곽을 알아차릴 즈음에서 이야기를 다시 원점으로 되돌린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범인에게 드디어 다가섰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결국 그 의문은 손자 대에 가서야 풀리게 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경관의 피>가 가진 미스터리로서의 독특한 재미가 있다. 독자는 이미 범인을 짐작하고 있는 상태에서(물론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읽어가는 사람도 있겠으나) 아들이, 손자가 그 범인에게 어떻게 다가서게 되는지에 흥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한 인물관계 구성과 사건 배열의 높은 완성도를 느끼며, 나는 단순한 ‘범인 맞추기’보다 훨씬 고급스러운 재미를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미스터리라는 틀만으로 바라보기에는, <경관의 피>는 갖고 있는 것이 너무나 많은 소설이다. 이 작품은 경찰 소설이자 미스터리 소설인 동시에 2차 대전 직후부터 최근에 이르는 일본 사회의 주요한 변화를 두루 훑고 있는 역사 소설이며, 또한 진한 가족애를 담은 휴먼 드라마이기도 하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경관의 피>가 국내 독자들에게 가장 강하게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은 다름 아닌 이 가족애에 대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역사의식이나 사회 변천상, 경찰 조직이나 사람들의 심리 동선 같은 것은 나라마다 다를 수 있어도 가족애, 특히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특별한 관계에서 형성되는 심상이라는 것은 의외로 공통되는 점이 많기 때문이다.
주재소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아버지의 등을 바라보며 성장한 아들들. 그 아버지가 자랑스러운 모습이었든(1대) 혐오스러운 모습이었든(2대), 어쨌든 아들은 아버지의 강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 아버지의 죽음에 한 점이라도 의혹이 발견되었을 때에는 주저 없이 아버지가 걸었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는 스토리...... 멋있지 않은가?
어쩌면 남자들만의 로망일지 모르겠지만, 이 작품에서 보이는 아버지의 모습, 아들의 모습에 순간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던 것은 나 역시 아버지의 영향력을 실감하고 있는 나이가 되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감상을 곱씹다 보니 잠깐 다른 데에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온 사회가 경찰 관련 뉴스로 떠들썩한 요즘이다. 좋은 뉴스는 별로 없고, 온통 심란한 뉴스들이 연일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경찰은 사회의 질서와 안녕을 유지하고, 선량한 국민들의 안위를 지킨다. 범죄, 탈법 등의 사회악을 엄단하고, 법질서를 수호한다. 그렇다. 경찰이 본래 가져야 할 대민 이미지는 정의와 신뢰일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세태를 보면 경찰이라는 조직에 대해 일반 국민들이 갖고 있는 의식은 불의, 불신, 무능, 정권의 하수인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 일색이 아닌가 싶다.
얼마 전, 사상최악의 연쇄살인마라는 강호순이 체포되었다.
전 국민이 그가 저지른 끔찍한 범죄에 전율하고 있었을 때, 일부 누리꾼들은 자신들의 뛰어난 검색력을 과시하듯 강호순의 가족력을 파헤쳐 그 아들의 신상을 인터넷 상에 공개해버렸다. 엄연한 범죄행위이다. 이에 불법적인 개인정보 공개와 인권 침해 행위를 질타하며 타인의 불의를 응징하는 행위라면 불법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는 누리꾼들을 비난하는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흉악한 살인마의 아이라고 해도, 그 아버지로 인해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는 인권 보호 원칙에 따른 당연한 반향이었을 것이다. 그처럼 사회가 그 아이를 보호해주어야 아이는 자신의 아버지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받아들이고, 아버지와는 다른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나는 한 가지 의문을 떠올렸다.
범죄자들에게 조롱당하고, 얻어맞고, 심지어 칼에 찔리기까지 하는 경찰관들의 아이들은 자신들의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할까?
가족들과 제대로 교류할 틈도 없이 격무에 시달리는 아버지, 집안보다 바깥이 항상 우선인 아버지, 그러고도 결국 폭력 경찰관이니 권력의 하수인이니 하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살아가는 아버지를 둔 아이들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이 사회를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을까?
그 아이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사람들이, 과연 있기는 한 것일까?
<경관의 피>를 읽은 후, 그 아이들이 혹시 이 책을 접하게 된다면 자신들의 아버지에 대해 조금 다른 시각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되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이 너무 길어진 것 같다. 오랜만에 참으로 멋진 작품을 만난 후라 이런저런 생각도 많아졌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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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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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살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가뜩이나 되는 일도 없는데 겨우 기운 내어 하는 일마다 더 꼬이기 일쑤이니 살맛이라곤 마당에서 뛰노는 강아지의 터럭만큼도 나질 않는다. 한때는 인생에 대한 파릇파릇한 꿈을 꾸며 서른 넘어서는 귀여운 마누라에 토끼 같은 딸자식 얻어 평범한 인생을 꾸려가려 했으나 마흔이 가까워진 지금의 모습을 돌이켜보면 사랑, 행복, 금전, 건강 등 인생의 만족도를 측정하는 바로미터는 바닥을 뚫은 지 오래, 이미 마리아나해구만큼이나 지구 중심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외로움에 쥐어뜯던 허벅지는 이미 더 뜯어낼 것도 없을 만큼 앙상해졌고, 한때는 주변으로부터 천사 같다고 칭송 받던 미소는 실망감과 허탈함에 찌들대로 찌들어 사진이라도 한 장 찍혔다 하면 정신 놓은 고흐 말년의 자화상을 보는 듯하여 심히 괴롭다.

허탈한 무위함으로 일관하며 이런 날 따위, 빨리 지나가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내일이 오는 것은 두렵다. 올해에는 정신 차리고 인생을 바꿔보자 결심했었는데 어느새 8월이 되어 있다는 사실은 더더욱 무섭다. 누군가가 내 인생 시계의 시침을 갖고 장난을 치고 있다. 내 인생을 지배하고 있는 이 끈적끈적한 어둠의 배후 세력은 누구냐. 혹시 인간이 아닌 신이라면 제발 공평함을 발휘하여 이제는 슬슬 유희의 대상을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다오.

하지만 이 와중에도 4년제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던 사회 재원으로서의 자부심은 망각하지 않고,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여 벌어들인 알량한 수입으로 나름대로 대량의 책을 사서 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자고로 지식의 창고란 밑이 살짝 빠진 독과 같아서 끊임없이 새로운 물줄기를 대주지 않으면 찰랑댈 정도로 가득 차 있던 지식의 수위가 어느새 시커먼 바닥을 드러내기 마련이라, 당장 쓸 데가 없는 지식이라 해도 뭔가를 계속해서 부어줘야 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 그 지식의 대다수가 만화나 소설 같은 현실세계와는 거리가 있는 쪽에 편중되어 있기는 해도 크게 괘념치는 않으련다. 차별이라는 것을 심히 증오해 마지않는 나는 세상에 쓸모없는 지식이란 없다는 지식평등주의를 본위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하해와 같이 드넓은 아량으로 집어든 만화 같은 표지의 책 한 권에서, 나는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듯한 충격을 받았으니 그것이 ‘21세기 일본의 새로운 재능, 모리미 도미히코!’라는 거창한 소개 문구로 포장되어 있는 이 책,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이다.

핑크빛 캠퍼스 라이프를 꿈꾸며 싱그러운 표정으로 대학 캠퍼스에 발을 내디뎠던 주인공 ‘나’는 대학 초년생부터 3학년 봄까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무런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성취는 이루지 못한 채 무단한 불평불만에 싸여 남의 사랑이나 훼방 놓는 등 무의미한 나날을 보낸다. 주제에 고고한 자부심은 턱없이 높아 스스로의 자아와 생활을 완벽히 다스리는 연 하며 주변인들을 마음껏 품평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두 평 남짓한 다다미 넉 장 반짜리 방구석에 처박혀 자신의 벽조차 깨뜨리지 못하는, 그 벽을 깨뜨려봐야 어차피 똑같은 인생이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지지리 못난 인생이다...라고 생각하고 보니, 이것은 지금의 나와 별 다를 것 없는 모습이 아닌가. 순간 심장이 뜨끔 찔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위험하다, 이 책은. 바다 건너 일본 교토의 작업실에서 작가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는 듯한 오싹함을 느낀다.

총 네 개의 장으로 구분된 이 이야기는 돌고, 돌고, 또 도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나’의 이야기도 돌고, 그 주변인들도 돌고, 다다미 넉 장 반도 돈다. 그러나 만연히 같은 자리만을 맴도는 것이 아니라 아주 조금씩은 다른 이야기들이 이어져 간다. ‘나’는 스스로의 인생이 불합리할 정도로 왜소하게 찌그러진 이유를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서 찾는다. ‘본래 나는 이렇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모두 OO과 XX 때문이다. 마음만 먹으면 나도 남들 못지않게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OO과 XX 때문에 이러고 있을 뿐이다’라는 식이다. 그런 망상 속에 찌들어 살면서 ‘나’는 핑크빛 캠퍼스 라이프를 영위해가며 순금 미래를 꿈꾸는 동료들에게 심술궂게 재를 뿌리고 다니며 그 안에서 유열을 느낀다. 게다가 그 곁에는 ‘나’조차도 겸손한 마음으로 한 수를 접어주며 거리낌 없이 ‘요괴’니 ‘극악인’이라고 부르는 유일한 벗이자 악행의 화신 같은 동료 ‘오즈’가 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지금의 인생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호기가 다가온다. 일견 막연하게만 느껴지는 ‘콜로세움’이라는 단어가 그 열쇠라고 한다. 그리고 ‘나’는 각 이야기마다 서로 다른 어떤 기로에서 비로소 ‘콜로세움’을 발견하고, 모종의 선택을 하게 된다.

사람에게는 주어진 깜냥이라는 것이 있어서, 제아무리 노력을 해도 인생의 결착은 그 깜냥의 한계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길을 스스로의 의지로 걷는가, 남의 손에 이끌려서 걷는가, 또는 시대의 흐름 따위에 떠밀려서 걷는가 하는 것에는 만족도 면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을 것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이 소설은 굉장히 재미있다. 사람 많은 길거리나 지하철에 앉아 읽기에는 조금은 위험할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그 재기발랄한 상상력을 영감님 말투 같은 단어와 문장으로 술술 풀어나가는 글쓰기에서는 <공중그네>로 나오키 상을 수상했던 오쿠다 히데오 이상의 문학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재담 속에 날카로운 바늘을 숨겨두고, 한편으로는 발바닥을 간질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발가락 끝을 콕콕 찔러대는 듯한 식은땀 나는 주제의식 역시도 오쿠다 히데오의 그것과 닮아 있지만, 문장마다 터질 듯이 넘쳐나는 힘과 재치에서는 역시 30대의 젊은 작가다운 에너지가 느껴진다. 모리미 도미히코가 서술하는 문장은 일견 가벼워 보이면서도 그 안에 내재된 문학적 깊이와 구조에서는 향후 일본 문단의 한 축을 이끌어나갈 만한 힘을 갖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옮긴 번역자에게도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런 문체의 작품을 이처럼 자연스럽게 우리말로 옮겨내기란 결코 녹녹한 일은 아니었을 터인데, 실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아무런 이질감 없이 작가의 새로운 문체와 작품세계에 하염없이 빠져들 수 있었다. 이런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전적으로 번역자의 힘이라 할 수 있으리라.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나는 아주 약간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이야기가 너무 우스워서 웃다가 눈물이 나왔고, 나의 지난날과 현재를 돌아보면서 스스로의 만연함에 가슴 아파 눈물이 나왔으며, ‘나’와 ‘오즈’의 엉망진창 2인조의 이야기가 여기에서 마무리되었음에 아쉬워서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나’와 ‘오즈’는 만연히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고 있는 내 등을 화끈하게 떠밀어주고 퇴장했으니 마냥 엉망진창인 녀석들인 것만은 아니었던 게 확실하다. 요즘처럼 푹푹한 무더위와 답답한 뉴스, 갑갑한 삶 속에서 짜증과 무력감이 솟구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그에게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를 한번 떠나보기를 감히 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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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는 언제까지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
가와카미 겐이치 지음, 한희선 옮김 / 비채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어린 아이가 주인공인 소설을 성인 작가가, 그것도 1인칭으로 집필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를 가끔 생각해 본다.

아무리 맑은 영혼과 선명한 기억을 가진 사람이라 해도 이미 인생의 더께가 쌓여 있는 눈으로 자신의, 또는 가상의 어린 시절을 바라볼 때, 그런 것으로 과연 보편 타당하고 타인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그것은 어린 아이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어쩌면 절묘한 글재주에 의해 독자의 마음이 현혹되었을 뿐인 데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예전에 이시다 이라의 대표작 중 하나인 <4teen>을 읽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네 명의 어린 아이들, 철없던 유년기를 지나 이제 막 자신의 머리로 주변을 이해하고 사고하기 시작한 아이들의 성장기를 이시다 이라는 자신의 마음으로 돌이키고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고 아이들의 손길로 풀어 놓았다.

하지만 그 절묘한 균형의 작품 속에 - 물론 작가의 의도 자체가 그런 것이었지만 - 종종 어른이 된 주인공이 자신의 유년기를 돌아보고 있는 시점의 서술이 섞여 있어 순간적으로 작중 몰입도가 떨어지는 부분이 있었던 것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이번에 읽은 가와카미 켄이치의 <날개는 언제까지나> 역시 <4teen>과 비슷한 연령대의 어린 아이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청춘 성장소설이다.

2001년도 ‘책의 잡지’가 선정한 최고의 소설, 제17회 쓰보다 조지 문학상 수상작인 이 소설은 본래 청춘소설로 명성을 날렸던 작가가 급작스런 병으로 펜을 꺾고 낙향한지 11년 만에 문단에 복귀하여 발표한 작품으로서, 그 눈부시게 순수하고 맑은 작품의 내용과 더불어 다시는 펜을 잡을 수 없을 것으로 여겨졌던 작가가 병고를 이겨내고 화려하게 문단에 복귀했다는 사실로 인하여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었던 걸작이다.

<날개는 언제까지나>의 주인공 가미야마는 중학교 2학년생으로, 지역에서는 제법 실력이 있는 야구부의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이제 막 사춘기에 들어선 가미야마와 그 또래들은 이성과 성행위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 툭 건드리면 좌르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뜨거운 감성, 어렵고 까다로운 단체와 어른들과의 규칙 등에 대해 고민하고, 반항하고, 나름의 방법을 찾아간다.

그 과정에서 가미야마에게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 바로 비틀즈의 ‘플리즈 플리즈 미’이다. 비록 영어를 할 줄 몰라 가사를 제멋대로 해석해가며 듣고, 외우고, 따라 불렀다지만, 가슴으로 직접 받아들인 로큰롤의 영혼만큼은 1백 퍼센트 진짜였을 것이다. ‘부디 부디 나’라는 엉터리 번역으로 가슴 속에 저장된 비틀즈의 노래는 이후로 가미야마에게 용기가 필요할 때, 결단이 필요할 때마다 커다란 힘과 의지가 되어 준다.

그리고 그 ‘부디 부디 나’가 단초가 되어 친해지게 된 것이 가미야마의 첫사랑 사이토 다에였다. 평소 말수가 거의 없고, 그래서 친한 친구도 거의 없던 전학생 사이토의 인생도 가미야마가 멋대로 불러대는 ‘부디 부디 나’를 들은 뒤로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다. 불행했던 어린 시절과 가정환경 때문에 마냥 소극적이기만 했던 사이토의 맑은 영혼도 가미야마와 비틀즈로 인해 자신이 가고 싶었던, 가야 할 길을 찾아 꿈틀대기 시작하는 것이다.

또한 가미야마의 같은 반, 야구부 친구들도 그런 가미야마를 통해 자신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마음을 품게 된다. 아무리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이라고 해도 어른들에게는 맞서 이길 수 없고, 선생님의 말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던 아이들은 뜨거운 가슴으로 어른들에게 궁금한 것을 묻고, 억울한 것을 토로하고, 한 사람 몫의 인격을 가진 인간으로서 성숙해져 간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단초를 가미야마가 제공했다 해서 작가가 그리고 있는 가미야마의 모습이 특별한 소영웅의 모습인 것은 전혀 아니다. 이 작품의 진정한 탁월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작가는 스토리 전개와 마무리를 쉽게 할 수 있는 ‘소영웅 이야기’를 택하지 않고 가장 어렵고 까다로운 방식인 ‘평범한 인물의 이야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야기는 한창 전개되어 가는 도중에 조용히 대단원을 맞이한다. 극적이지 않아 실망스럽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이제 막 시작일 뿐인 아이들의 인생에 사실 무슨 대단한 극적인 대단원이 있겠는가? 가미야마와 아이들은 작중에서 이미 극적인 한 걸음을 내디뎠고, 그들은 더욱 극적인 대단원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 작품의 끝에는 짤막한 에필로그가 붙어 있다. 이 에필로그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있을 소지가 있는 바, 나로서는 에필로그가 있는 편이 더 좋았다. 개인적으로 오픈 엔딩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가와카미 겐이치에게는 이와 같은 결말을 맺어낼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초등학교 야구부 때 썼던 야구공과 글러브를 꺼내보고 비틀즈의 ‘플리즈 플리즈 미’를 듣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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