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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세요, 당신? 2
이종호 지음 / 황금가지 / 2012년 3월
평점 :
살면서 말하지 못 한 이야기, 드러내지 못한 진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답답하겠지만 ‘언젠가 뜻을 전할 날이 오겠지.’하고 답답한 마음을 묻어두기도 합니다. 그건 우리가 내일도 살 수 있고 언제든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기회가 항상 주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엄마에게 드리지 못 한 선물을 언젠가는 드릴 수 있겠지, 사랑한다는 말 혹은 헤어지자는 말을 굳이 지금 하지 않더라도 조만간 하면 되겠지. 사소하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살아있는 지금이라면, 금방 다시 올 거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뜻하지 않게 죽는다면, 그래서 가슴 속에 응어리 진 채 당연하다고 생각한 일상을 지내지 못 한다면 얼마나 목이 멜까요. 이종호 작가의 <누구세요, 당신?>은 이런 물음에서 출발하여 사람의 운명, 인연을 이야기 합니다.
<누구세요, 당신?>은 기본적으로 희진이라는 여주인공과 그녀를 돕는 정옥 이모라는 귀신, 선일과 진만 퇴마사 콤비 그리고 그녀가 빌린 몸의 주인 지영의 가족, 영수와 지호, 가수 성우와 매니저 태진 등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며 전개됩니다. 다들 한 명이라도 빼먹으면 안 될 정도로 개성 있고 중요한 캐릭터들이죠. 그 중에 제가 보기에 가장 이야기를 중심적으로 이끄는 캐릭터를 간단히 소개해드립니다.
희진. 남부러울 것도 거칠 것도 없던 양희진의 인생은 임신을 하면서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됩니다. 가수인 남자 친구 성우에게 고민을 털어놓지만 별 도움을 얻지 못 하고 고민만 하다가 교통사고로 처녀귀신이 되어 버립니다. 한을 풀지 못 하고 이승을 떠돌던 그녀는 무슨 일인지 식물인간으로 가까스로 살아가고 있는 지영의 몸으로 들어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지영은 영수라는 남편과 지호라는 아이를 둔 유부녀란 말이죠. 희진은 살았을 때 무녀였던 정옥 이모의 도움을 받으며 영수와 지호라는 낯선 가족을 알아갑니다.
선일과 진만. 온갖 한량 짓을 하던 선일은 나름대로 마음잡고 퇴마사 일을 시작합니다. 그는 어찌 보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에 가장 솔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입담 좋고 가식 없는 인물이지만 언행이 가벼워 주위 사람이 언짢아하기도 하죠. 그런 선일에게 퇴마사의 피를 이은 진만이 나타납니다. 성심이 고운 진만은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주는 -혹은 이용해 먹는- 선일을 스승으로 여기며 원혼을 달래기도 하고 퇴마활동을 하기도 합니다. 얼핏 이 콤비가 천방지축으로 활동하는 것 같지만 우연한 인연으로 희진과 정옥 이모와 만나게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역할을 도맡습니다.
책에는 이 밖에도 소개해드리지 못 한 여러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있고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서로 인연을 맺어갑니다. 그리고 죽고 나서 차마 하지 못한 말을, 아니면 이루지 못 한 일을 이루기 위해 고심하기도 하죠. 믿었던 사람이 자기를 배신했다는 사실을 죽고 나서 알게 된 허탈함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이 책을 읽고 가장 깊이 느낀 건 우여곡절 끝에 깨달은 사랑입니다. 겉모습에 반하지 않고 차츰차츰 상대방을 알아가고 그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 깨달은 뒤 얻게 된 사랑 말입니다. 조만간 할 수 있겠지, 언젠가 내 마음에 똑 드는 사람이 나타나겠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지금 하지 않아도 되겠지.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산다는 건 이런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번 생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