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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광이 여행자 - 그는 왜 미친 듯이 세상을 돌아다녔는가?
이언 해킹 지음, 최보문 옮김 / 바다출판사 / 2021년 12월
평점 :
품절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유행병처럼 번졌던 '둔주'라는 현상. 이 현상은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대부분 남자들)이 갑자기 의식을 놓아버린 채 일터와 가정을 떠나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현상을 가리킨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특정 시간대, 특정 공간에서만 일시적으로 나타난 뒤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 둔주와 같은 '시대적 정신질환transient mental illness'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과연 실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인가?
이에 대한 저자의 답. 이 한 문단이 사실상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요약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는 개념은 정신질환을 번성하게 하는 환경인 ‘생태학적 틈새’라는 은유다. 이 틈새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몇 가지 벡터가 필요하다. 나는 네 가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첫 번째는 당연히 의학이다. 정신적 ‘질환’이 되기 위해서는 질병분류법이라는 진단명 체계 안에 들어와야 한다. 가장 흥미로운 두 번째 벡터는 문화의 양극성으로, 정신질환은 동시대 문화의 두 가지 요소의 중간에 위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극의 한쪽 끝에는 당대에 낭만이자 도덕이라고 불리는 요소들이 있고, 다른 한쪽 끝에는 범죄이자 패덕의 요소들이 있다. 무엇을 미덕 아니면 패덕으로 볼지는 그 사회의 특성에 따라 달라진다. 미덕이 항상 고정된 것은 아니어서, 검소함은 근대 초기 유럽의 청교도들에게는 부르주아적 미덕이었지만 봉건시대의 시각에서는 그저 결점에 불과했다. 세 번째로 필요한 벡터는 식별 가능성이다. 고통이 뚜렷이 보여야 하고, 환자는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애써야 한다. 즉 ‘질환’으로서의 가시성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 벡터는 지금 우리에게도 익숙한 현상인데, 질환으로 인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문화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했던 어떤 해방구로의 기능도 해야 한다는 점이다.” (16-17)
다시 정리하면, 어떤 사람이 별안간 사라져서 아무런 이유나 목적 없이 생판 가보지 않은 낯선 곳을 방황하고 난 뒤 나중에서야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를 깨닫게 되는 이런 독특한 현상에 '둔주'라는 정신질환명이 붙여지게 되는 데에는 그 사회만의 독특한 맥락이 있다는 얘기다. (1) 일단 이런 현상이 정신과 의사 및 학자들에게 자신의 학설에 부합하는 주요 사례로 포착되어야 한다. 당시 프랑스 의학계에서는 둔주의 원인이 히스테리냐, 간질이냐 논쟁이 있었는데, 무엇이 근본 원인인지는 차치하더라도 일단 이 현상이 기존 질병분류법 안에서 설명이 되어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는 게 중요하다. 심리적이든 신체적이든 어떤 것이 원인이 되어서 발생한 '질환'이라는 인식이 일단 자연스럽게 정립이 되었다는 얘기다. (2) 당시 19세기 유럽사회는 대중적 관광여행이 유행이었고, 낯선 곳으로의 낭만적 여행을 예찬하는 담론이 많은 사람들의 여행 욕구를 자극했다. 다른 한쪽에는 일정한 거주지 없이 떠돌아다니는 부랑자들이 사회질서를 무너트리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이처럼 당시 여행의 의미는 상류층의 낭만적 여행과 하층계급의 부랑 범죄 사이에서 '문화적 양극성'을 띠고 있었고, 한편으로는 이런 성격이 둔주 행위에 대한 일탈적 매혹을 불러일으키는 것이기도 했다. (3) 당시 프랑스는 징집제로 군 탈영을 막기 위해 감시와 검열체계가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탈영병이나 징병기피자들은 먼곳으로 떠나기 위해 정밀한 검열체계를 통과해야 했고 반드시 서류를 구비해야 했다. 이때 둔주 환자들에 대한 정신병 진단서는 이들이 단순한 떠돌이가 아니라 특정한 병을 앓고 있는 환자임을 명시해주는 기능을 했다. (4) 안정적인 직업이 있지만 평범한 일상에서 도피하고 싶었던 남자들에게 둔주는 해방구로 작용했다. “일상에 매인 삶과 자유 사이의 경계선, 규범과 일탈 사이를 가르는 좁은 담장 위에서 경험할 수 있던 도피처가 둔주였던 셈이다(178).” 일상의 삶에 적응하지 못한 무력한 남자들은 “정신질환으로 낙인찍힘으로써 오히려 자유로워졌고, 그렇게 정신질환자가 됨으로써 책임으로부터도 자유로워졌다(115).”
'생태학적 틈새'라는 은유를 사용하는 것이 정신질환은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얘기를 확고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가도, 이들이 의식을 잃고 방랑하는 현상 자체는 실제로 일어난 것이니 마냥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다'라고만 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싶은가 싶어서 정리가 잘 안 됐다. 이에 대한 해킹의 답. “왜 시대적 정신질환은 사회적 구성물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 나는 의도적으로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이 나태한 용어 사용을 기피했다. 여기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정신질환의 생태학적 틈새에 사회적 벡터가 있음은 분명하지만, 거기에 더해서 사회적 구성물보다 더 생생하고 더 구체적인 묘사와 분석이 요구되는 무언가가 더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209-210) “진단명과 환자 사례를 차곡차곡 축적하는 것만으로 무언가가 구성되는 것이 아니고, 구성을 촉진시킬 생태학적 틈새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210)
'구성을 촉진시킬 생태학적 틈새', 다시 말해서 둔주 환자들이 그런 식으로 행동하게 되는 만드는 여러 맥락들을 고려했을 때 '둔주'라는 행위가 정말 독립적으로 실재한다고 말할 수는 없게 될 것이다. (그런 욕망을 만들어내고, 그런 행위를 가능하게 만드는 사회구조적인 맥락이 선행하는 것)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들의 여행 욕구나 일탈에 대한 갈망, 둔주로 나타난 정신이상 상태가 결코 '구성되었다'고만 할 수는 없을테다. 그 증상 자체는 '실재'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해킹은 실제 환자를 진료한 기록들을 보여주고 그 당시의 보르도 사회를 묘사하면서 '실제하는 인물'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실재에 대한 해킹의 입장은 약간 절충주의적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정신질환에는 무언가 고정불변의 아주 특별한 것이 있어서 진짜 질환에는 가짜와 구별되는 실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질환의 실재성이라는 개념은 퍼트넘이 말한 대로 현 시점에서 재조정될 수밖에 없다고 나는 믿는다. 그 이유는 생물학적·생화학적 정신의학이 급격하게 변화되고 있기 때문이다(200).” '사회적 구성주의'로 귀결되기 쉬운 결말에도 불구하고, 해킹은 이 책에서 시도한 것처럼 정신질환을 둘러싼 다양한 '생태학적 틈새'들을 보여주면서 '질환의 실재성'에 더 정확하게 도달하려고 한다. 사회적 구성주의는 우연성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 허무주의로 귀결되기 쉬운 것 같은데(실제로 설명되어야 할 '본질'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해?) 그런 면에서는 '실재' 개념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과학적으로 이를 설명해내려고 하는 해킹의 실재론이 꽤나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