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 그리고 가정 - 평등을 향한 여성들의 기나긴 여정, 2023 노벨경제학상
클라우디아 골딘 지음, 김승진 옮김 / 생각의힘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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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미국 대졸 여성을 중심으로, 약 120년 동안 여성들이 커리어와 가정의 양립을 향해 나아갔던 역사를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기술하고 있다. 데이터에 기초해서 성별 임금 격차의 장기적인 추이 및 주요 요인에 대한 실증적인 주장과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의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자녀가 있는 대졸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에 변화가 생기는 변곡점에 따라 여성 집단을 다섯 집단으로 구분한다. 대학을 졸업해서 본격적으로 커리어를 밟거나 또는 결혼생활에 진입하게 되는 20대 시기를 기준으로, 집단1(1900-1919년)은 가정 또는 커리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집단, 집단2(1920-1945년)은 젊은 나이에 일자리를 얻었으나 아이가 생기면 가정으로 돌아가야 하는 집단, 집단3(1946-1965년)은 결혼하고 출산하여 가정을 이룬 후 늦은 나이에 일자리를 얻는 집단, 집단4(1966-1979년)은 어느 정도 커리어를 쌓은 후에야 가정을 갖게 되는 집단, 집단5(1980-2000년)은 커리어와 가정 모두를 성취할 수 있는 집단으로 구분된다. 시기적으로 모든 여성이 각 집단에 해당한다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추이에 따라 경향적으로 다섯 집단을 구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커리어와 일자리는 커리어에서 단절이 생기는 지점이 있는지, 즉 대학을 졸업한 후에 일관되게 자신의 커리어만을 추구할 수 있는지의 관점에서 구별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많은 수의 미국 대졸 여성들은 80년대가 되어서야(집단4부터) 자신의 커리어를 그려볼 수 있는 삶을 선택할 수 있었고, 그전까지는 둘 중에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거나(집단1) 일을 하더라도 커리어상의 단절을 겪어야만 했다(집단2, 집단3). 


각 시기마다 여러 가지 요인들이 맞물리면서 여성들은 자신의 삶을 각자 다른 방식으로 그려보고 선택할 수 있었다. 가령 고등교육에 여성의 참여가 증대되고 여성이 일자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감에도 대공황이나 가부장적인 문화로 유자녀 기혼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를 제한하는 차별을 감내해야 하는 여성 집단이 있었던 반면(집단2), 피임약의 개발(이를 저자는 1960년대 페미니즘 운동 같은 '시끄러운 혁명'과 대비하여 '조용한 혁명'이라고 표현한다)이나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아이를 낳는 것을 늦추고 커리어를 먼저 추구할 수 있었던 여성 집단도 있었다(집단4, 집단5). 저자는 페미니즘 같은 문화적 요인의 중요성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보다는 출산을 늦춰줄 수 있는 기술적 요인의 중요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데, 바로 그런 점이 실증적 데이터에 기반을 두고 인과관계를 설명하려고 하는 경제학자의 태도에서 비롯되나 싶기도 했다.


집단5, 그러니까 비교적 최근 단계에서는 커리어와 가정을 양립하는 여성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데, 그럼에도 성별 격차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통 성별 격차라고 하면 직종 간의 격차, 가령 남성들이 많이 진출하는 제조업 및 이공계 일자리와 여성들이 많이 진출하는 서비스 및 교육계 일자리의 임금 격차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분석에 따르면 직종 간 성별격차는 전체 성별 격차의 1/3만 설명할 뿐이다. 성별격차의 2/3가 같은 직종 내에서 발생한다는 것, 그리고 전반적으로 성별 격차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대졸 남녀의 성별 격차는 80년대 이후로 줄어들지 않고 정체 상태라는 점에서 저자는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탐욕스러운 일자리'에 있다고 본다. 경쟁적인 직업 환경과 장시간의 노동시간을 감내하고 그에 대한 부산물로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전문직 일자리는 주로 남성들이 맡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비슷한 환경에서 여성이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게 되면 완전히 고강도의 일에만 전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면 육아 및 돌봄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남성들은 경력 단절에 대한 공포 없이도 '탐욕스러운 일자리'에 몰두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 남성 배우자가 돈을 더 많이 번다면 여성은 커리어상의 승진 및 높은 임금을 포기하는 대가로 그보다는 좀더 유연한 일자리에 종사하는 것을 '선택'하는데, 이런 차이가 대졸 남녀의 성별 격차의 요인을 상당 부분 설명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끌어낼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은 '탐욕스러운 일자리'를 더욱 유연하게 만드는 것이다. 남성들이 보다 자유롭게 육아휴직을 쓸 수 있도록 하는 것 등의 다양한 제도적 대책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기업 내부적으로도 성차별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가령 기업들도 유능한 여성 인력이 출산으로 인해 빠져나가는 것에 따른 손해를 지고 싶지 않을 것이며, 남성 노동자들 또한 워라밸을 유지하고 가정을 돌보려는 욕구가 있을 것이다. 여성의 커리어 단절이 비단 여성에만 손해인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이롭지 않다는 것, 이러한 인식에 기초해서 여성과 남성이 육아와 돌봄에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도입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그럼으로써 노동시장에서 '탐욕스러운 일자리'를 점차 줄여나가는 것이 대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흐름상 이 책의 자연스러운 결말이기도 하다.


2. 이 책의 원제는 Career and Family: Women’s Century-Long Journey Toward Equity이다. 책의 분석 대상은 미국의 대졸 여성인데, '미국' 사례를 대상으로 분석했음에도 책의 원제에는 '미국'이라는 단어가 한 글자도 들어가 있지 않다. 미국에서 책을 냈으니까 굳이 미국을 명시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한국 학자가 미국에서 한국에 대한 책을 내면 필연적으로 부제에서든 South Korea 써야 하는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아무튼 이런 얘기를 적은 건, 미국의 히스토리를 세계 역사의 보편적 내러티브의 핵심 일부로서 제시할 수 있는 문화적 차원의 헤게모니를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가령 페미니즘의 역사 생각하면 1960-70년대 2세대 페미니즘은 중요한 변곡점이고, (내가 과문한 것일수도 있으나) 이 흐름에서 주로 나오는 사례는 죄다 미국 케이스다. 그만큼 그당시 미국에서 벌어진 페미니즘 운동이 급진적이었고 거기서 쏟아져 나온 담론이 세계 전반적으로 큰 파급력을 미칠 수 있었기에 '미국'이라는 한 국가에서 일어난 페미니즘 운동이 그만큼 중요했다고도 할 수도 있을 텐데, 문제는 이러한 도식이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사고방식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미국의 역사적 흐름이 보편으로 설정되면 미국(또는 서유럽) 외 국가의 역사는 특수의 위치를 점하고, 그러면 왜 한국은 이 (미국의) 보편적 흐름과는 다른가? 이런 질문이 설정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케이스에 비춰 보면 한국의 여성들은 집단1에서 집단5로 '진보'해가는 선형적 역사를 그리기는 어려운 것 같고 오히려 집단1로 회귀하는, 다시 말해 커리어 또는 가정 중에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운명에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국 케이스에 비춰서 한국 사례를 봐야하는 데서 오는 모종의 불편함 같은 건 조금 남는다. 게다가 세계가 모두 인정하는 노벨경제학상의 권위를 받은 입장에서야, 미국 위주의 논의가 더더욱 헤게모니를 얻는 것은 아닐까... 싶다. (미국 외 케이스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성별 격차 분석에 대해서는 모두 골딘의 논의를 참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인용횟수가 높아지면 그만큼 저명도는 더 높아질 테고...)


이건 조금 시니컬하게 생각해 본 것이다. 사실 책 읽으면서 제일 궁금했던 것은 어째서 미국은 집단4에서 집단5로 넘어가는 흐름이 자연스러울 수 있었는가, 에 대한 부분이다. 집단4는 대학을 졸업하고 커리어를 가진 후에야(자리를 잡은 후에야) 가정 있는 삶을 꿈꿀 수 있었다면 집단5는 커리어 추구와 동시에 가정을 꾸리는 삶을 그려볼 수 있다는 것인데, 자기 자신의 커리어를 선택할 수 있음에도 '가정을 꾸린다는 당위'가 여전히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어떤 맥락에서 가능할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다르게 말하면 한국은 왜 그런 당위가 없는 것일까, 라고도 쓸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는 가족 중심 문화라서 일정 나이가 되면 결혼해서 아이 낳고 행복한 가정 갖는 것이 당연하다는 문화적 요인이 중요하다는 얘기도 있긴 하다. 그런데 한국은 안 그런가? 싶은 의문이 드는데, 저출생에 관련한 여러 요인들을 다 차치하고 생각해 본다면 한국에는 미국만큼의 바람직한 '선례'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도 싶다. 그러니까 한국에서는 '행복한 가정'에 대한 상이 (미국의 행복한 중산층 가정의 이미지만큼) 잘 그려지지 않는다. 되게 티피컬한 이미지는 남성은 이른바 가장의 무게라고 해서 밖에서 열심히 일하고 돈 벌어주면 자신의 소임을 다한 것이고 여성은 집에서 애를 잘 돌보고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 소임을 다하는 것이다. 모든 가정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경향적으로 많은 가정이 아이를 투자의 관점에서 보고 자식 교육에 올인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교육 투자의 수혜(?)를 입은 젊은 세대의 입장에서는 자신 또한 그렇게 자식투자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자신의 부모가 살았던 삶을 자신도 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반응이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 걸 생각하면 '행복한 가정'의 상은 어떤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하물며 <스카이캐슬> 같은 중산층 가정도 불행한 마당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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