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은 어떻게 여성의 일이 되었나
최시현 지음 / 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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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부동산 투자라고 하면 '계층 상승' 내지 '계급 재생산'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기 마련인데, '젠더'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다시 읽는다는 것이 조금 신선하게 느껴졌다. 저자의 논의에 따르면, 부동산 문제에 있어 젠더 관점이 기입되어야 하는 이유는 노동시장에서 공적인 경제 생활을 수행하는 남성과 가정에서 돌봄 노동을 수행하는 한편 재테크를 통해 가정의 부를 증식하는 사적인 경제 생활을 수행하는 여성의 이분법이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강고히 작용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부동산 투기와 관련해서 '저는 모릅니다, 집사람이 한 일이에요'라며 부인에게 책임을 전가한 모 남성 정치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부동산 투자는 이른바 '투기'라는 '더러운 일'로서 주로 '집사람'인 여성이 수행하는 '사적인 경제행위'로 여겨져 왔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은 부동산 투자가 중산층의 계급 재생산 행위임을 은폐하는 한편, 이른바 '복부인 담론'의 경우처럼 비난의 화살을 여성에게 돌리는 데 일조해 왔다. 그렇기에 부동산 문제를 단순히 계급 관점이 아니라 젠더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는 저자의 지적은 탁월한 부분이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이론적 자원으로 사용하는 논의는 부르디외의 장과 아비투스, 그리고 역사적 관점에서 살펴본 발전주의 국가와 가정주의 이데올로기의 작용이다. 여기서 부르디외의 논의가 갖는 장점은 부동산 투자행위를 단순히 개개인의 '계층 상승의 욕망'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주택장에 진입한 행위자들의 특수한 이해관심이 반영된 결과로 분석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가령 한국의 주택장은 국가가 국민의 자가소유를 촉진함으로써 복지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소유자 사회'라는 조건에서 구성되었으며, 일단 이 장에 진입한 개인은 부동산을 소유하면 미래에 내 자산의 가치가 증대할 것이라는 기대를 자연스럽게 갖게 된다. '자가소유'가 주거 안정 및 계층 상승, 나아가 계급 재생산의 기본 조건으로 설정되어 있는 주택장 안에서 개인은 자연스럽게 '싼 값에 사서 비싼 값에 팔겠다'는 투기 아비투스를 자연스럽게 체화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아비투스는 모두가 동일하게 체화하는 것은 아닌데, 저자는 이러한 체화 또한 '성별화'되어 있다고 분석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흥미롭게도 살림의 많은 부분을 여성들의 주택실천이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37)."

한국의 발전주의 국가는 '산업역군'으로서 남성 노동자의 공적을 치하하는 한편, 여성에게는 '현모양처', '근검절약' 등의 담론을 통해 가정경제를 책임지는 역할을 담당할 것을 주문했다. 다른 한편으로 국가는 대도시의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주택 공급을 확대함으로써 중산층 육성에 주력했다. 1978년에 도입된 '주택청약제도'의 사례처럼 국가는 자가소유를 촉진함으로써 개개인들로 하여금 복지를 스스로 책임지도록 하였으며, 금융제도를 활용하여 주택을 사고 파는 '가정경제'의 문제는 주로 여성들에게 맡겨졌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주택시장 활성화를 위해 도입된 주택담보대출은 주택시장의 금융화를 심화시켜 '상품'으로서 주택의 불안정성을 한층 심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여기서 여성들은 단순히 '가정경제의 관리자'를 넘어 주부CEO 담론의 경우처럼 '주택시장의 투자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되는데, 저자가 보기에는 이러한 담론은 "여전히 여성의 경제적·문화적 능력을 가족 단위로 귀속하며 젠더화된 생애기획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99)."

책에는 이 리뷰에서 다루지 않은 다양하고 풍부한 논의와 사례들이 있지만, 우선 '왜 여성들이 부동산 투자의 주요 행위자가 되는지'에 대해 다뤄보고자 했다. '공적인' 노동시장에서 밀려나 '사적인' 가정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지위에 머물러야 했던 여성들은, 나날이 변화하는 주택정책과 금융제도에 적응해 가면서 '투자자'로서의 감각을 획득하여 가정의 부를 증대시키기 위해 기민하게 움직이는 '능동적 주체'로서 자신의 주체성을 발휘한다. 그러나 "여성이 계급적 자원을 이용해 투기적 주택실천을 해도 그것이 온전히 자기 역량의 성장이나 개별적 자율성의 획득으로 이어지기는 불가능에 가깝"고, "오히려 가족주의와 가부장적 계급구조에 종속되는 부조리한 현실에 놓이는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292). 공사분리가 여전히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 여성이 자율성과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는 부동산 투자와 같은 가정의 부의 증대일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결과가 결국 "사회적 불평등을 고착시키는 아주 단단한 경로(292)"가 된다는 점은 아이러니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여성에게 주어진 사회적 맥락 속에서 '강요된 실천'이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계급 불평등과 젠더 불평등이 착종된 '주택장'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는 여전히 답이 보이지 않지만, 문제의 원인을 '개인화'해서는 안 되며 항상 사회적 맥락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던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본 리뷰는 창비 출판사의 서평 이벤트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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