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펜의 시간 - 제2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유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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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임은 누구처럼 살고 싶어? 라는 부장의 질문에 돌멩이처럼 살고싶다라는 말을 하고 싶지만 차마 못학 엉겹결에 TV에 비친 야구선수 권혁오가 되고싶다는 엉뚱한 대답을 하는것을 소설은 시작한다.
권혁오는 준삼의 중학교 동창으로 같이 야구를 했던 친구다. 뛰어난 실력과 동료 선수를 이끄는 훌륭한 리더쉽으로 프로 입단시 최고의 선수가 될것으로 기대가 대단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은 중간계투로 1,2이닝만 던지고 물러나는 불펜투수로 전락했다. 중간계투로 등판하는 날은 완벽한 폼으로 타자를 압도하다가 9회만 되면 귀신같이 볼넷을 남발하다가 강판 당한다.
스포츠 담당 기자인 기현은 야구선수 출신인 오빠의 고기집 일을 돕던중 오빠 친구들의 대화중 프로야구 선수들의 승부조작 이야기를 우연히 엿듣고 취재하기 시작한다. 타이푼 팀의 선수가 연루되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예전 경기를 복기 하다 9회만 되면 볼넷을 남발하는 권혁오가 승부조작에 연루되었음을 확신하고 추적 취재 한다.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한다고 배웠다. 그래서 어떤 기회도 놓치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살았다.하지만 이번 기회는 놓쳐보기로 했다. 비열해질 기회까지 잡을 필요는 없다고, 놓쳐도 되는 기회도 있다고 일부러 볼넷을 던지는 사람이 알려주었다. (P.210)
입사후 정규직 공채가 없어 투자금융회사 사무실에서 주임이지만 6년째 막내인 준삼은 부장의 지시로 회사 구조조정 대상자 투표에 본인의 이름을 적어낸다. 혁오는 학창시절 자신을 라이벌로 여긴 친구의 죽음이 트라우마로 작용해 결정적인 순간에 볼넷을 남발하여 승부조작으로까지 오해받지만 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극복해 선수 생활을 이어간다. 어릴때 야구를 했던 기현은 뛰어난 실력에도 여자라는 이유로 야구를 그만둔 뒤 기자가 되었지만 역시 여자라는 이유로 동료들에게 인정 받지 못하고 억측의 대상이 되어 더욱 특종에 목말라 한다.
준삼이 궁금한 건 딱 한 가지였다. 그 모든 일, 믿었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속한 집단에서 내팽겨쳐지고, 평생 해온 일을 그만둔 후에도 혁오의 투구폼이 아름다운지가 궁금했다.(P.248)
온갖 오해속에 승부조작 은폐의 희생양이 되어 야구계에서 제명까지 당한 혁오는 독립구단의 코치겸 선수가 되어서도 승부에 연연하지 않고 여전히 우아한 폼으로 투구를 하고 승리한뒤 동료들과 함께 즐거워한다.
준삼, 혁오, 기현은 지금 우리 시대의 청년이다. 일하는 분야는 달라도 온갖 악취가 풍기는 부조리한 집단 속에서 살고자 발버둥 치는 우리의 아들이고 딸이다. 각자 모두 상처받고 좌절하고 아파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혁오가 헤쳐나간것처럼 각자의 방식으로 준삼도 기현도 다시 일어설것임을 믿는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입바른 소리가 아니라 정말 훌륭한 한편의 소설을 읽었다. 불펜투수는 선발투수나 마무리 투수와 달리 팬들의 관심을 많이 받지 못하는 보직이다. 승자 독식의 무한경쟁사회에서 각광 받는 주인공이 되지 못하더라도 슬기롭게 난관을 헤쳐 나가는 많은 젊은이들이 같이 읽었으면 좋겠다.

한겨례문학상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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