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아침에는 정말 괜찮을 거예요 시요일
시요일 엮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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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 상자에 포장된 장미꽃 같은 요즘의 우리 생활에 위로가 되는 시들을 골라 엮은 책이다. 
4부로 나눠 편집했는데 묘하게도 제목들이 지금 나의 심정과 비슷하다.

1부 밤의 수영장에 혼자 있었다
2부 나는 내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3부 반복이 우리를 자라게 할 수 있을까
4부 몸을 지나가도 상처가 되지 않는 바람

바이러스가 사라지던지
백신으로 내 몸이 방어가 되던지
어쩔수 없이 틀어막은 입이 빨리 자유로워 지는 그날이 오길 바랄뿐이다.



요즘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심야 식당 <박소란>

술잔을 부딪히면서 왁자지껄 떠들다 출출해진 배를 채우던 국수 한그릇이 그리운 때다


시간은 우리가 갖고 노는 조약돌이래

아니, 시간이 우리를 조약돌처럼 가지고 놀지

흐린 날에 나의 침대는 <주민현>

아무래도 시간이 우리를 가지고 노는것 같다


꿈을 꾸었어요

달아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달아나며 생각했어요

돌아온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비행운 <임경섭>


깁스에 적어주는 낙서들처럼

아픔은 문장에게 인기가 좋았다

임솔아 <모래>

너무 마음에 든다

이런 표현을 할 수 있는 시인이 부럽다


햇빛이란 뭘까

일자를 떠올려도 빛나는 건 없었어

존재란 잘 구워진 빵과 같아서

신체가 주어지면

영혼은 곧 부드럽게 스며들 텐데

버터가 녹아들듯이

지구촌 <신두호>

맞다
잘 구워져 따끈한 식빵에 버터를 올려놓으면 사르르 녹아 들어간다 내 영혼도 내 몸에 그렇게 녹아 들어가 있을것 같다


잘 지내냐는 안부는 안 듣고 싶어요

안부가 슬픔을 깨울 테니까요

슬픔은 또 다시 나를 살아 있게 할 테니까요

그래서 <김소연>

그래도 안부가 그리운 팬데믹세상이다


땅이 나를 받아주네

내일 아침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그녀가 나를 지그시 잡아주네

양애경 <바닥이 나를 받아주네>

내가 바닥에 몸을 던지면 바닥은 내 몸의 둥근 선을 감싸며 받아준다 내일 아침 일어날때까지 잡아준다



내가 멍하니 있으면 

누군가 묻는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느냐고


내가 생각에 빠져 있으면

누군가 묻는다

왜 그리 멍하니 있느냐고


거미줄처럼 얽힌 복도를 헤매다 보니

바다,

바닷가를 헤매다 보니

내 좁은 방.

알 수 없어요 <황인숙>

정말 알 수 없는게 너무 많다

삼십년을 같이 산 사람도 알 수 없다

물론 그이도 같은 생각일것이다



불이 붙여질 생일 초처럼 고독하다

케이크 옆에 붙어온 플라스틱 칼처럼

한 나무에 생겨난 잎들만 아는 시차처럼

고독하다

우리는 지구에서 고독하다 <이원>

각자도생이라는 말을 절감하는 시대이다
고독을 친구 삼아 지내는 수밖에 없다


귀 너머로 성근 머리칼 몇 올 매만져두고

천천히 점방 앞을

천천히 놀이터 시소 옆을

쓰레기통 고양이 곁을

지난다 약간 굽은 등

순한 등

그 등에서는 어린 새도 다치지 않는다

감도 떨어져

터지지 않고 도르르 구른다

남모르게 따뜻한 등

업혀 가만히 자부럽고 싶은 등

쓸쓸한 마음은 안으로 품고

세상 쪽으로는 순한 언덕을 내어놓고

천천히 걸어 조금씩 잦아든다

이윽고

둥근 봉분 하나


철 이른 눈도 내려서 가끔 쉬어가는

둥근 등 <김사인>

그래도 철 이른 눈에게도 쉴 자리를 제공하는 둥근 봉분도 있다



목표를 세우지 않기로 해요

앞날에 대해 침묵해요

작은 약속도 하지 말아요

아무 다짐도 하지 않기로 해요 <유병록>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살자고 손가락 걸고 맹세한다

하지만 세상 일이 다 잘될때만 있는게 아니다

앞날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차라리 닥치는데로 서로 의지하며 사는거다


하루가 긴 날이 있고 

짧은 날이 있다

사는 것이 잠깐이다

사는 일들이 헛짓이다 생각하면,

사는 일들이 하나하나 손꼽아 재미있다.

삶 <김용택>

마음을 비우자
오래 살고 싶다고 오래 살 수 있는게 아니다


지난 겨울의 노인들은 살아남아

하늘을 올려다본다

단단히 감고 있던 꽃눈을

조금씩 떠보는 나무들의 눈시울

봄의 정치 <고영민>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봄은 온다
아무것도 없던 나무가지에 달려 있는 저 꽃들을 보라




세상에서 트램펄린이 모두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아쉽다

날아오르는 몇 초가 달콤했기 때문에

트램펄린 <허연>

떨어질걸 알면서도 
바깥으로 튀어나갈걸 알면서도
허공에 멈춰 있는 그 찰나의 달콤함에 또 날아오른다



오랜만에 시들을 읽었다.
난해한 시도 있고 그렇지 않은 시도 있었다.
인터넷을 뒤져 찾아보기도 했다.
그냥 내 나름대로 해석하고 반복해서 읽었다.
세상에 나쁜 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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