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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 혹은 없어짐 - 죽음의 철학적 의미 ㅣ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28
유호종 지음 / 책세상 / 200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죽음이란 참으로 묘합니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하더군요. 죽음이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어떠한 관계도 가질 수 없는 절대적인 종말이며, 타인들에 의해 확인될 뿐 그것이 다가왔을 때 우리는 이미 어떠한 것도 체험할 수 없으므로, 그것은 나에게 의미 없는 것이며 결코 나에 의해서 소유될 수 없는 것이라고 말이죠. 반면 하이데거 같은 사람은 죽음은 현재하는 존재가 존재하게 되자마자 떠맡은 하나의 방식이자 넘어설 수 없는 현존재의 가능성이라고 말이죠. 따라서 우리에게 있어서 죽음은 이미 삶에 속해 있는 것이며 매 순간 현존재의 모든 행동을 결정하는 요소가 되는 것이죠.하이데거 입장에서는 죽음이란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타자가 아니라 삶 밖에 있을 뿐 삶 자체를 구성하는 요소 중의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둘 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이지만 죽음이란 것을 우리 삶과 관련지은다면, 죽음이 우리 삶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를 따진다면 전자, 에피쿠로스 학파와 사르트르의 생각은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아 그런데 이 책은 결코 두 의견을 두고 정리한 책은 아닙니다. 작자는 죽음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부터 의미를 정하고자 합니다. 현재까지도 논쟁이 일고 있는..'어디서부터 죽음이라고 판단해야 하나?' 거기서부터 시작합니다. 복잡한 이 세상에선 죽음조차 누가 봐도 딱 알아볼 수준으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로 하여금 판단을 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을 따져보는 거죠. 그러나 저는 거기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없습니다. 그건 살아있는 자들의 생각이지 죽음을 앞두고 있거나 어떤 의미로는 정상적으로 살 수 없게 된 사람의 입장에서는 결국 종말이 아니겠습니까?]
대신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죽음이란 것이 결코 죽는 자신에게조차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란 것을 알게 됩니다. 언제 어디서부터 죽음이라고 해야 하나에 대해 길게 지면을 할애한 것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 책은 적어도 죽음이란 것을 객관적으로 생각하게 합니다. 떠남인지 아니면 없어짐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죠.
본질을 규정하는 의견은 각각일 수 있어도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나의 죽음이 떠남인지 아니면 없어짐인지...는 따져볼 일이지만 제가 죽는다는 사실은 절대불명의 본질입니다. 다만 저는 죽음을 잘 준비하고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준비하냐고 ....따지고 싶은 분들은 ...그렇다면 준비안하시고 언젠가 찾아올 사건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벌써부터 제가 이 죽음이란 사건을 생각하는 것은 제가 살아가는 자세를 바꾸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에피쿠로스 학파처럼 죽음의 순간이란 이미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사건이므로 준비하고 어쩌고 할 필요도 없다는 식으로 생각해야 할지 아니면 하이데거처럼 죽음 자체가 삶이 시작된 그 순간부터 시작된 숙명임을 알고서 받아들여야 할지...아마도 둘 사이를 오가는 것이 제 삶이 아닐까 하네요.
그렇지만...삶에 바쁘겠지만 한번쯤은 그 죽음이란 사건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삶은 너무나 괴로운 것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