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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느끼기, 자연을 이해하기 - 자연과 함께하기 위한 첫걸음
김종성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9월
평점 :
자연과 함께하기 위한 첫걸음
요세미티의 밤하늘을 기억한다. 조금은 쌀쌀해지던 요즘 같은 환절기의 밤이었다. 벌써 3년이나 지났는데도, '별이 쏟아진다'는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게 된 그 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 너무나 고요해서, 발걸음 소리도, 숨소리 마저 자연의 휴식을 방해할까 미안해지던 밤. 하룻밤 빌린 캠핑카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땅에 꽂힌 듯 무겁게 자리를 지키고 서서, 그 거대한 자연의 존재에 넋을 잃은 채, 작아진 마음을, 작아진 눈앞의 문제들을 내려놓고 자연의 신비에 감사하던 기억.
물로 꽉 채워져 있는 응축된 눈처럼, 차얀색을 띠는 물줄기의 상단은 마치 혜성과도 같이 공중에서 쏟아져 내려왔다. 꼬리에 꼬리를 문 채 사그라지던 물줄기의 일부가 새하얀 빛을 발하면 마치 공중에서 하늘거리나 가느다란 연필심으로 그어 놓은 회색빛 선처럼 가늘게 보이기도 했다.
존 뮤어, <자연과 함께 한 인생: 국립공원의 아버지 존 뮤어 단편집> 중, 본문에서 재인용
그 기억을 가만히 불러온 것은, 요세미티의 폭포를 멋스럽게 묘사하던 '존 뮤어'의 글을 인용한 부분이다. <자연을 느끼지 자연을 이해하기>에는 수많은 문학작품의 인용문이 등장한다. 자연을 지극히도 사랑하던 대문호 大文豪들의 수려한 문체와 순수한 마음, 그리고 자연에 대한 깊은 경외감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는 보기힘든 경험이었다.
<자연을 느끼기 자연을 이해하기>는 자연와 어울어진 인간의 삶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소로우처럼 자연과 직접 부딪히며 살아낸 삶의 기록이거나 제인 구달처럼 자연과 친해지기 위해 적극적으로 다가간 경험담을 담고있지는 않다. 자연을 누리고, 만끽하며, 감사했던 순간을 수필처럼 써내려간 글도 아니다. 자연을 벗 삼은 문학적이고, 사색적인 접근을 바라고 책을 펼쳤다면, 절반 이상은 낭패일 수 있다. 오히려 자연에 대한 자연과학적, 생태적 접근에 기초한 서술이 책의 중심을 차지한다. 저자의 연구경력이나 관심분야와의 관련성을 놓고 생각해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저자는 자연을 느끼고, 이해하는 과정을 논문의 명제를 설명하듯이 풀어나간다. 인간이 자연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인간의 감각은 파생적인 것일뿐 근원이 될 수 없고, 자연 그 자체만이 실체이고 원천적인 것이므로 인간이 자연으로 회귀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그럼에도 <제1장 자연을 느끼기>에서는 그래도 조금 더 문학적, 사색적 접근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윌리엄 워즈워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아르튀르 랭보, 헤르만 헤세, 알랭 드 보통, 랄프 에머슨 등 이름만으로도 가슴을 설레게 할만한 작가들, 그리고 장자크 루소나 프리드리히 니체 등 걷기를 예찬했던 많은 철학자들의 글이 저자의 실증적 분석에 묘한 힘을 실어준다.
나는 걸었을 때만 사색할 수 있다. 내 걸음이 멈추면 내 생각도 몸춘다. 내 두 발이 움직여야 내 머리가 움직인다.
장자크 루소의 <고백록> 중, 본문에서 재인용
반드시 일정한 시간을 내어 홀로, 고요히 자연 속을 걸을 것. 작가의 처방이다. 자연과 함께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시작되어야 할 '자연 속 걷기'는, 산적한 현실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풀어낼 방법이 될 수는 없을지라도, 그 문제들로부터 자유로운 심장을 선물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대자연 大自然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끼고 경외하는 동안, 그에 비하면 티끌 정도의 가치도 찾기 힘든 '나'라는 존재의, 더구나 그 존재의 生 가운데에 어떠한 가치를 부여받기도 어려운 '현실의 문제'가 마냥 초라해 보일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