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 - 신을 향한 여행자의 29가지 은밀한 시선
이기행 지음 / 이담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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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행자가 라오스를 숨어 있는 보석이라고 하였을 때, 길동무가 될까도 생각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 여행자는 남쪽으로 내려갔고, 나는 북쪽으로 올라갔다. 그는 무더운 아라비아 해변의 열기를 견뎌내며 걸었고, 나는 히말라야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걸었다...중략...그의 말을 확인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흘러버렸다.

'당신은 지금도 걷고 있습니까?' - 본문 중

 

낯선 곳으로의 여행. 장소뿐 아니라, 자신이 알지 못하고, 감히 알 수도 없는 神의 자취를 따라 떠난 여행에서 작가가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정리한 기행문이다. 작가의 이름은 '이기행' 필명일 거라 생각한다. 한때 불교에 몸담았던 그가 오래전 같은 종교를 가진 군대 상관과 부처의 자취를 따라 떠한 인도, 네팔, 태국 등지로의 여행은, 그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 그를 당시 무언가가 가로막아 가지 못하였던 곳, 라오스, 메콩 강으로 떠난 그 여행에서 그의 기억의 잔재 속에 뚜렷이 소환된다.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 '신을 향한 어행자의 29가지 은밀한 시선'이라는 부제 때문에 '당신'은 쉽사리 '신 神'으로 읽힌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작가가 '당신'이라 칭한 대상이 반드시 神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지상의 에덴 고아 안주나 비치를 선물한 그녀. 작가는 인도를 여행하던 중 안주나 비치에서 우연히 만난 일본인 여성에게 신을 찾아 떠난 여행의 상당한 부분을 내어둔다. 그녀의 다음 걸음에는 함께 동행하지 않았어도, 그녀와 헤어진 뒤 작가의 발걸음을 옮길 다음 행선지를 결정하였던 것은, 귀국하게 되는 순간까지도 작가의 머릿 속을 지배한 것은, 다름 아닌 '루까'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런 인간적인 작가의 시선이 오히려 부담스럽지 않게 책을 읽어나갈 수 있는 동인이 된다. 책은 종교와 무관한 사람이 쓴 것 치고는, 종교에 대한 상당히 날카로운 지적들을 담고 있다. 작가는 인도와 네팔 등을 오가며 성지순례를 하는 도중 만나게 된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그리고 여행지마다 볼 수 있는 각종 종교의 신비롭고 아름다운 사진들 속에서, 힌두교,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유교, 도교, 조로아스터교, 무신론 등 神을 만나기 위한 인류의 끊임없는 시도의 결과들에 대해 한번씩 깊숙이 고민한 흔적을 남겨두었다.

 

'그곳에 가면 신을 볼 수 있을까?' 책 표지 뒷면에 적어놓은 글귀가 작가 자신이 쓴 것이 맞을까. 아무리 책을 들추어보아도 진심으로 신을 보고자 하는 마음이 담긴 곳은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과거의 영화 속에 폐허가 된, 신의 형상을 닮은 수많은 종교의 잔재만이 가득하다. 그 속에서 작가는 '신'이 아닌 '사람'을 찾는다. '신'에게 의지해서 이 거대한 세상을 이겨보려는, 아니 견디어보려는 '사람'의 모습을 본다. 그들이 기댈 곳이 '신'밖에 없었던 처절한 모습에서부터, 자기 스스로가 '신'을 닮기 위해, 그렇게 스스로의 '신'이 되어 어떤 환경에서도 부서지지 않게 단단해 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본다.

 

돌이켜보면 여행은 쓸쓸했고, 사람의 삶이란 그리 고단한 것인지 가슴이 아팠다. 삶에 지친 사람은 저마다 신에게 다가가려 노력했지만, 그들의 운명은 신이 이끌어 주지 않았다. 삶들의 발걸음은 사원을 찾을 때보다 집으로 돌아갈 때가 더 가벼운 것을 보았다.

- 본문 중

 

지금 서 있는 삶의 공간, 그리고 이 시간. 바로 이곳,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神이 아니라면 안된다. 산으로 올라가야, 굴로 들어가야, 돌상 앞에서 무릎이 까이도록 절을 해야, 속세와 연을 끊어야 만나는 神은, 인간이 인간을 신답게 꾸며보고자 애쓰는 불필요한 몸부림일 뿐이다.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 당신이 만날 수 있는 신은 멀리에 있지 않다. 다만 당신이, 우리가, 눈이 멀고 귀가 멀어,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가 이 책 속에 담아놓은 삶이 피로감이, 여행의 허탈함이, 진정한 神을 만나지 못한 까닭이라기보다는, 神을 만나기 위한 여정 중에 깨달은, 잘못 택한 방법 때문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작가가 종교에게 던지는 은밀한 시선들. 언젠가는 그 해답을 찾게 될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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