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관들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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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북부의 작은 마을.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지에서 마주한 뜻밖의 광경. 그것은 그 마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법 집행 방식이었다. 도둑질한 자는 손목이 잘리고, 강간한 자는 거세를 당하는. 중세 시대의 형벌이 고스란히 살아남아 어느 누구에게도 차별없이 적용되고 있는 곳. 누군가는 수십억원 횡령에도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누군가는 살길이 막막해 겨우겨우 사업체를 운영하다 납품받은 대금을 갚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기로 엮여 유치장에 들어가야 하는 곳. 대한민국에서 집행되는 법이 과연 정당한가? 작가는 다소 잔혹한 집행방식에 눈살을 찌푸리고 있을 독자들에게 위와 같은 물음을 던지며, 더욱 거세게 집행 대상자들의 생명줄을 졸라간다. <집행자들> 국가가 나서주지 않는 이들의 눈뜨고 볼 수 없는 거만과 누림을 송수리째 들어낼 정의구현단이 조직된다.

 

살아가는 것 자체의 의미를 잃은 자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자들, 그럼에도 그 원인을 제공한 자들은 편안한 일상으로 돌아가버리는 잔인한 지금只今! 그들의 초점 잃은 눈과 갈 곳을 놓아버린 심정을 바라보던 이가 움직인다. <심판관> 그는 자신의 심판을 실행에 옮겨줄 깊이 상처받은 이들의 끓는 심장을 찾고 있다. "반드시 집행관들의 열정과 신념을 담아내야 해. 그래서 그들의 심장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해. 그게 네가 진짜 해야 할 일이야." 수십 년간 만나지 못했던 고등학교 동창 한 명이 대학교수를 찾아온다. 고등학교 동창의 갑작스런 부탁을 이내 거절하기 어려웠던 대학교수는 그의 바람대로 대강 분량을 맞추어 자료를 모아보낸다. 마지막 생존자인 친일파 노창룔의 자료. 친일 행각, 해방 후 행적, 특히 노창룡이 사용하던 고문자료. 그것들이 왜 필요한지는 묻는 질문에 동창은 대답한다. "너도 곧 알게 되......"

 

며칠 후 대학교수는 신문에서 노창룡이 살해되었다는 기사를 보게 된다. 정확하게, 본인이 모아다 준 자료에 나와있는 노창룡의 고문방식 그대로, 노창룡은 살해되었다! 사회 미스터리 소설의 기본을 충실히 이어가고 있는 소설 <집행관들>에서 '집행관들'은 누군가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던 이들을 물색해 다소 잔혹한 방식, 다만 실제 그들이 타인에게 직접 사용하던 방식 그대로를 사용해 처형을 이어간다. 대한민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연쇄살인사건, 범인들에 대한 수사지시를 받은 유능한 검사들과 수사관들의 집행관을 찾아들어가는 길과, 돌이킬 수 없는 길에 들어서자 더욱 처형의 속도를 내고 있는 8명의 집행관들의 처형의 길, 그리고 그들의 '뜨거운 심장'을 가감없이 기록하기 위하여 그들의 전모를 알기 위해 동분서주 하던 대학교수의 길은 모두 한 곳에서 만난다. '심판관'의 집.

 

법의 집행이 피해자들의 마음에 족할 만큼의 대가를 가해자에게 치르게 하는 일은 드물다. 그렇다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집행은 그들의 마음에 족할까. 단정하기 어렵지만, 그러한 방식의 집행 역시 피해자의 마음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들의 마음은 스스로의 힘이 아닌 무엇에 의지해 극복할 수 없는 깊은 구렁에 이미 잠겨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런 까닭에 중세시대적 법집행 방식은 조금씩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 아닐까. 인도의 어느 외진 마을. 그들은 가해자를 같은 방식으로 처단한 후 마음의 평온을 얻고 과거의 비극에서 벗어난 채 살고 있을까. 아니면 가해자와 관련된 다른 사람들의 가슴에 또다른 비극을 양산해내며 그 구렁의 깊이를 커가게 하는 중일까. 멈추지 않을 예정이다. <집행관들>에서 나온 심판관의 '선정자'. 그는 또다른 심판관을, 또다른 집행관들을 찾기 위해 상처입은 이들의 끓는 심장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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