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희일비하는 그대에게
이정화 지음 / 달꽃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예가 인중 이정화가 20여년간 서예와 함께해온 인생여정을 솔직하게 적어놓는 수필이다. 수십년간 활동을 해온 서예가라고 하니 중년 이상의 여성을 떠올리게 될 지 모르지만, 그녀는 이제 막 서른을 넘긴 젊은 예술가이다. 서예가이신 아버지의 권유로 일곱살 때 처음 붓을 잡았다는 인중 이전화, 자신의 시간을 다른 곳에 두지 않고 오직 한 길에만 집중하며 살아온 사람의 열정과 진심이 담겨있는 글이다. 그렇게 인적이 드믄 외길 위에서, 그늘에서 불어오는 사뭇 쌀쌀한 바람을 맞고 서서 그늘 밖 햇살의 눈부심은 피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며 다시 붓을 들어 마음의 고요를 그려온 한지 위의 삶은, 그녀의 표현대로 '발 닿고 있는 지금'과 '손 닿고 싶은 내일' 사이의 끝없는 힘겨루기가 평온히 제길을 찾고 내려앉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작가가 먹의 빛깔이나 그 깊은 내음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나도 모르게 오래 전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되돌아가곤 한다. 필자 역시 여덟살 때부터 수년간 서예를 배워왔고, 그 시간이 올곧게 쌓인 까닭에 몇번쯤은 괜찮은 대회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다. 예전에는 '휘호대회'라는 이름의 서예대회가 곧잘 열렸고, 동네에서도 피아노학원 만큼은 아니더라도 심심찮게 서예학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린시절부터 붓을 들어온 경험이, 추억이 너무나 짙어 지금도 묵향을 맡으면 가슴이 설렌다. 작가의 글 속에는 우주의 빛깔을 닮은 먹향이 가득하다. 오래 전 그날로 데려가 종일 서너시간은 족히 먹을 갈고 붓을 다듬고 글을 써내려가던 어린 나를 기억해낼 수 있던 곳, 작가의 책 속에는, 한때 서예를 쉽사리 배울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을 보내었던 많은 이들의 추억을 소환하는 글들이 가득하다.

 

누군가 봐주어야 가치를 찾게 되는 예술이라면, 이 세상에 예술을 위해 존재한다고 스스로를 규정짓고 있는 모든 이들은 불행의 굴레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대중은 예술을 자신의 생의 한 지점에, 스스로를 빛나게 할 용도로 잠시 달았다 떼었다를 반복할 수 있는 장식품쯤으로 생각하니 말이다. 때론 유행을 타고, 때론 시간이나 상황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스스로의 기호에 따라 마음에 들때 한번씩 기분전환을 시켜줄 도구로 여기는 대중의 손길과 관심이 가치척도가 되는 예술이라면, 그렇게 '일희일비하는 예술인이라면', 누군가의 진심을 제대로 흔들어 놓을, 혼을 담아낸 작품을 만들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작가의 젊음이, 대중과 끊임 없이 소통하고 싶은 바람이, 서예 역시 볕으로 나가야한다는 당위가 작가에게 심적 갈등의 큰 요인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색을 합한 우주의 색, 현 玄 색을 닮은 작가의 바람은, 그러한 욕망조차도 스스로를 기꺼이 바친 '서예'라는 예술의 편에 선 그를 향한 깊은 애정의 발현이기에, 작가가 써내려간 작품이나 글처럼, 작가가 드라마 속 여배우의 한 손이 되어 세상에 내보인 기예의 일부처럼, 바람의 빛깔을 담고 소망을 그려낸 작품의 일부로 꾸밈없이 번져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