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네 개의 돌 - 사진이 있는 수필
이대성 지음 / 바른북스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사진이 있는 수필

마흔 네 개의 돌

 

살아온 이야기, 살아갈 이야기, 지금 머릿 속을 떠도는 이야기. 수필은 참 좋은 글이다. 날아가버릴 듯한 시간을 고스란히 잡아두고,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이들과 공감하며, 위로하고, 성장한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 수 없이 이사를 다녔다는 저자, 나 역시 같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다만, 이사와 새로운 환경, 그리고 새로운 학교에 대한 적응은 어린 시절 늘 가장 재미있었던 일 중 하나로 기억하고 있다. 고등학교는, 처음으로 입학과 졸업을 같은 학교에서 해본 것인데, 한번도 옮기지 않아 섭섭한 마음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다른 시대를 살아온 저자임에도 유사한 경험을 하며 자라왔을 것을 생각하니, 저자의 생각이, 글이 더 없이 친숙하게 다가온다.

커피를 마시면서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맛을 내는 존재인지를 생각해 본다. 이기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여 다른 사람이 만남을 주저하는 불량식품 같은 함량 미달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닌지, 타인에게 기쁨을 주기는커녕 걱정과 슬픔과 분노를 주는 욕심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닌지를 되돌아본다.

본문 중

<마흔 네 개의 돌>에는 60년의 강물에 놓인 44개의 돌 징검다리처럼, 작가가 걸어온 생의 곳곳을 멈추어 돌아보게 하는 글 44편이 실려있다. 딸과 아들에 대한 지극한 아버지의 사랑이 느껴지는 글들, 탈북민들이나 결혼이주여성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며 경험한 일들이 적혀있는 따스한 기록들, 코로나19가 만들어놓은 현상황에 대한 안타까운 단상, 그리고 몇몇 글 속에서 발견되는 동물에 대한 저자의 각별한 애정도 마흔 네 개의 돌 중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둘레길을 걸으며>에 내려놓은 단상들이 좋았다. 작가의 그간의 生이, 둘레길 위에 내려놓은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글자 모양이 되어, 오르기 힘든 제법 가파르고 좁은 길도, 평평하고 넓직해 안정된 길도, 그렇게 하나의 큰 둘레길 삼아 동요 없이 걸어왔음을 지켜보게 된다. 그리고 덤으로 아침을 맞이한 자연의 싱그러움을 책 속에 실린 사진으로 즐길 수 있으니 더욱 좋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조심스럽게, 가장 천천히, 그리고 많은 생각을 하며 읽었던 부분은, 뒤늦게 컴퓨터 타자기를 두드리는 작가의 老母의 모습을 적어내려간 글이다. 환갑이 되어서 시작된 글쓰기가 25년 동안 여물어 오면서, 그간 자신의 생을 마음대로 차지하고 있던 他人의 공간을, 그 虛無를 글로 메우고, 자신의 글을 통해 세상과 깊이 소통하면서 다시금 삶의 행복을 적어내려가고 있는 저자의 노모에게서, 깊은 울림을 받는다. 언젠가 저자의 노모가 쓴 글도 꼭 한번 읽고 싶다. 오랜 세월 모든 것을 다 희생하고 살아온 우리 어머니들의 이야기, 그리고 훗날 나 역시 적어내려가게 될, 한 여성으로서 살아온 삶의 진솔한 이야기들을 미리 들어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과거 뇌경색 투병 등으로 여전히 불편한 손과 팔다리를 가지고도, 하루도 글쓰기를 쉬어 본 적이 없다는 어머니의 영향이었을까. 20여년 전 시, 동시, 수필 등 3개 부문의 신인 문학상에 당선되면서 등단 작가가 된 어머니의 뒤를 이어, 작가 역시 약 5년 전 월간 <문학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다. 이제 작가가, 어머니가 짜놓은 글의 씨실과 날실의 기운을 이어받아, 더 편안하고, 더 감각적이고, 더 오래도록 변함없을 한 벌의 옷을 만들어가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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