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괜찮냐고 묻지 않았다
고혜진 지음 / 꿈공장 플러스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둠을 몰아내는 것은 빛도, 새벽도 아니다.

나의 어둠은 그것을 끝내야겠다고 결심하면서부터 끝나기 시작했다.

- 본문 중

 

 

가장 돌이켜보고 싶지 않은 순간들을 오롯이 기록한다. 작가는 <아무도 괜찮냐고 묻지 않았다>를 쓴 이유는 같은 어둠 속을 헤매는 독자들에게, 그 끝이 반드시 온다는 점을 일러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쓰고 있다.

 

어떤 일을 두고 하는 말인지 책 속에서 찾아보려 했지만, 구체적인 상황이나 인물에 대한 설명은 기록하고 있지 않다. 에세이인 만큼, 지켜야할 것들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존인물인 만큼, 지금도 어딘가에 있을 누군가의 일상을 건드리는 일은 삼가야하므로. 추측컨대, 회사생활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한 스트레스와 그에 대한 이해를 구했던 지인들의 예상과 다른 반응이 겹겹이 쌓이면서 마음의 순환을 막는 둑을 내었던 듯 하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 그럼에도 별다른 예고도 없이. 저온화상처럼 서서히 옭아매는 심적 상태의 불균형이 그 둑을 넘어 가야할 순환의 길을 결국 넘어설 수 없는 상태로 몰고간다. 혈액순환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순환되어야 할 기쁨과 슬픔, 분노와 환희, 좌절과 희망, 안정과 無心이라는 心的 순환체계의 분열이다. 물론 단순히 사회생활 중 맞닥뜨린,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을 일삼는 존재들만이 작가의 심적 고통의 원인이 된 것은 아니다. 어머니의 生死를 오간 투병, 그리고 온몸의 골절상을 가져온 교통사고, 그 후 법원에서의 형사소송과정 등 한번에 하나씩 감당하기도 어려운 사건들이, 그렇지 않아도 틈이 없는 마음공간을 줄기차게 점령해버렸기에, 그만 제기능을 못할 정도로 망가져버린 거다.

 

긍정의 꽃을 피우고자 안달한다고 행복이 피어나진 않는다. 그러나 작은 기쁨을 누릴 줄 알아야 더 큰 행복이 찾아왔을 때 기쁘게 만끽할 수 있다고 믿는다...중략...나는 지금 더 크고 짜릿한 행복을 기다리며 소소한 즐거움으로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다. 숨을 고르며 달릴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 본문 중

 

 

작가는 어머니의 폐혈증이라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 병으로 인한 상당한 기간 동안의 투병을 시작으로 이야기를 엮어간다. 유사한 경험이 있기에 남일 같지 않았다. 아니, 시작부터 너무 쉽게 작가의 감정에 몰입되었다.

 

마음 둑이 쌓여, 마음 한켠을 잃어버리게 되면, 생체리듬까지도 고스란히 흐름을 잃는다. 듣고 싶은 이야기들은 들리지 않고, 듣기 싫었던 말들만 되뇌이곤 한다. 그러는 동안에도 소중한 사람들의 소리없는 응원은, 기도는 계속되고 있을텐데 말이다. 작가가 울퉁불퉁한 바닥으로 머뭇거리며 발을 내딛고, 무너져내릴 듯한 벽을 양손을 더듬으면서, 그 긴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온 뒤 써내려간 詩들이 책의 말미에 가득하다. 작가를 일으켜세운 건, 정신상담을 받기 위해 길을 나선 용기이고, 미련없이 자신을 괴롭히던 휴대전화를 없앤 결단이며, 마지막으로 가장 큰 위로가 되어줄 '글', 글을 읽고 쓴 덕분이리라.

 

 

 

 

책의 표지를 넘기니 작가의 필체가 보인다. 어린 시절 누구보다도 의욕이 넘치고, 완벽할 때까지 자신을 다스리고, 주위에 도움을 주어도 끄떡없을 만큼 남는 에너지를 나누기에도 충분했던, 밴드의 메인 드러머가 되기도 주저하지 않던 열정이, 다시금 느껴지는 필체이다. 작가의 다음 책은 더 없이 가득, 삶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담겨있기를 기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