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하버드까지 (10만 부 기념 스페셜 에디션) - 나의 생존과 용서, 배움에 관한 기록
리즈 머리 지음, 정해영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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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아무리 지쳤건, 남들이 우리의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건, 나는 매일 아침 태양이 떠오를 때까지 어둠을 피하며, 그저 밤을 깨뜨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나는 다시금 시작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 - 본문 중

<길 위에서 하버드까지> 제목을 그와 같이 적어놓았기에, 그 결과에 대해 미리 알고 책을 펼쳤는데도,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설마 이런 환경 속에 놓였던 자가, 더 이상의 바닥을 설정하기가 어려울 만큼 비참한 생활을 한해, 두해도 아니고, 평생을 해왔던 자가, 하버드의 벽을 넘었다고? 그 의문을 품고자 읽고 읽고 또 읽어도, 책의 70%가 다 되어가도 그녀의 삶은 여전히 칠흙같은 밤이고, 도무지 구원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 <Breaking Night> 영문판 책의 제목이 더 그럴싸하다. 그녀의 기억 속에는 하버드 합격이라는 大業에 이르는 과정보다는, 주린 배를 움켜잡고 어딘가 잘 곳을 찾기위해 하염없이 걷던, 길 위에서 날이 밝아올 때까지 그져 지새워야했던, 견디어내야했던 밤들이 더 강렬한 기억이었을 것이다.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녀는 마약중동자 모임에서 엄마가 받아온 동전에 쓰인 위 기도문을 평생 가지고 다녔지만, 바꿀 수 없는 것과 있는 것을 분별하는 지혜를 얻기까지 십여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녀의 성공신화는, 말 그대로 神話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읽고 싶어하고 도전받고 싶어하지만, 그 일은 신화만큼이나 불가능해보이고, 사실이 그렇다. 리즈 머리 역시,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 만큼 자신의 無知가 컸기에, 그 일의 거대함을 전혀 인식하고 있지 못했기에, 자신에게 그 일이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그 신화 속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현실의 굶주림과 나약함과, 비참함을 싸워 이겨내라고 누군가에게 충고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그 어떤 해석도 사실이 아니었으며, 나의 성공은 기술과는 별로 관계가 없었다. 내 성공의 이유는 단순했다. 나는 굶주렸고, 내게는 이것이 여름방학 아르바이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중략...나는 이 일이 필요했다. 나의 의도는 학교에 들어가면 일할 시간이 없어질 것이므로, 악착같이 돈을 모아 앞으로 몇 달을 보티는 것이었다. 난생처음 나는 일상을 더 큰 목표에 부합하도록 만들고 있었다. 그 목표란 내가 태어난 곳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내가 남들보다 우위에 선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 본문 중 

그녀에게 그것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고, 그녀를 길 위에서 하버드까지 이끈 사람은 다름아닌, 인문예비학교 선생님들이었다. 주류 교육의 틀 안에서 낙제라는 위험에 처한 학생들을 도와줄 새로운 학교. 그곳의 선생님들은 돈을 더 주지 않아도 기꺼이 학교와 학업에서 도태된 나이어린 학생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시간과 열정을 바치는 분들이었다. 언젠가 리즈 머리가 어린시절 다니던 학교 선생님이 머리에 이가 기어다닌다는 이유로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머리에 식초를 뿌린, 그런 종류의 선생님이 아니었다. 교사와 학생이 똑같이 둥글게 앉아서,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능동적이고 참여적인 토론 중심의 수업을 하는 곳, 학생들이 숨을 곳도, 길을 잃고 헤맬 곳도, 잊혀지는 곳도 없는 곳. 몇몇 선생님들이 뜻을 모아 세운 그 초라한 외형의 예비학교는, 미국 사회에, 아니 이 냉정한 세계에, 리즈 머리같은 대스타를 길러냈다.

나는 책을 받자마자 책의 표지는 벗겨내고 읽는 습관이 있다. 때문에 책을 다 읽은 후에야 비로소 책의 표지에 실린 유명인의 추천사나 지은이의 경력 등에 대한 정보를 차근차근 둘러본다. 이번에는 리즈 머리의 사진 앞에서 한동안 시선이 멈추어졌다. 책을 읽으며 여러차례 상상해오던 모습의 그녀과는 사뭇 다르다. 너무나도 건강하고 지적이며 전문가다운 모습이다. 바로 그녀가 벽 너머에 속한 사람들의 전형이라고 그려냈을 법한 모습 그대로다. 그녀의 경력 마지막 줄에는 '집 없는 청소년들을 위한 미국 최초의 학교 브룸 스트리트 아카데미의 창립 멤버'라고 적혀있다. 그녀 역시 인문예비학교 선생님들과 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 훗날 누군가의 책 속에서 자신을 구원해주었던 사람으로서 그녀의 이름이 언급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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