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무게 - 당신의 말의 무게는 얼마인가
박경남 지음 / 북씽크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당신의 말의 무게는 얼마인가?

책 표지부터 주눅이 든다. 나의 말의 무게는 얼마일까. 가벼울래야 그보다 가볍기가 쉽지 않을 정도다. 다행스러운 일이라면, 요즘 육아휴직 중인데다 코로나19로 만나는 사람이 거의 없다보니, 그나마도 말의 무게가 예전보다 더 가벼워지는 참사는 이래저래 피하고 있는 참이다. 그렇다고 가족에 대한 말에 失言이 없다고도 하기는 어렵고, 주희의 <중용장구> 중 '계구신독 戒懼愼獨'이라 하여 혼자 있는 시간에 삼가야 하는 것 역시 말의 근원인 마음이라고 할 것이니, 결국 어려운 처지인 것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말의 무게>는 주로 중국과 우리나라의 先人들이 남겨놓은 말에 대한 경계와 말의 올바른 사용법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다. <고전이 전하는 말의 무게> 운 좋게도(?) 학창시절 '한문' 과목이 교과목에서 제외되었고, 때문에 교과서에 실릴 법한 기본적인 고사도 제대로 익혀볼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청소년 시기를 지났다. 그러다 대학에서 필수과목 외 선택과목은 거의 다 철학과목을 수강하면서 난데없이 古事와의 어색한 同行이 시작되었는데, 그때 읽은 오래전 선인들의 지혜가 얼마나 꿀맛이던지, 얼마 뒤 사둔 고전전집은 여전히 이 글을 쓰는 컴퓨터 옆에 나란히 꽂혀있다.

소인들의 학문은 귀로 들어와서 입으로 나간다. 귀와 입 사이는 네 치밖에 안 된다. 어떻게 그것으로 일곱 자 몸을 아름답게 할 수 있겠는가?

본문 중, <순자> '권학편'

<말의 무게>에 실린 여러 고사에 얽힌 선인들의 지혜는 절반 이상이 禁言 혹은 謹言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대학시절 함께 한 동양철학서에도, <말의 무게>에도, 함부로 입을 놀려 처하게 되는 상황들에 대한 경고가 가득하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나니 그런즉 네 말 수를 적게 할지니라.'는 전도서의 기록(5장 2절)이나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는 비트겐슈타인의 글, 결국 '말에 대한 경계'는 동서고금의 진리인가 보다. 그러나 위정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참된 '말'이지 침묵이 아니다. 자신의 안위와 지위만을 전전긍긍 지키기 위해 필요한 '말'조차 내지 못하는 부하들 또는 백성들만 있는 곳이라면, 참담한 결말만 낳게 될 것이다. 천하를 호령한 칭기즈칸이, "배운 게 없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이름도 쓸 줄 몰랐지만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고 할 수 있었던 것도, 누군가의 '말' 덕분아니겠는가.

함께 말할 만 한데 함께 말하지 않으면 그것은 사람을 잃는 것이다. 함께 말할 말 하지 못한데 함께 말을 하면 그것을 말을 잃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을 잃지도 않고, 또 말을 잃지도 않는다.

본문 중, 孔子의 <論語> '위령공편'

결국 '말의 존부'보다는 '말의 내용'에 무게를 두는 것이 옳다. 나랏일처럼 거한 경우뿐 아니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말을 너무 조심하기만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공자는 <논어>에서 '함께 말할 만 한데 함께 말하지 않으면 그것은 사람을 잃는 것'이라했다. 실제로 사람들은 너무 조심스러운 나머지 대화에 잘 참여하지 않는 사람보다는 자신의 흠을 조금 드러내보이더라도 함께 웃고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을 훨씬 선호한다. 사회생활 중이라면 더욱 그렇다. 上司에게 조금이라도 밉보일 말을 하게 될 것이 두려워, 모두들 어려워하는 자리임에도 나 아닌 누군가가 먼저 말을 꺼내주기만을 기다리며 입을 닫고 있는 동료는 당연히 좋아보일리 없다. 어려운 자리임에도 용기를 내어 어수룩한 말이라도 먼저 꺼내 모두의 긴장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사람이 오히려 빛난다. 말의 자리는 그처럼 어렵다.

쓸만한 말을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하루에 한번쯤 되새겨보라고 권하는 작가의 체크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내 말의 무게는 얼마일까?

나는 하루에 얼마나 많은 말을 했을까?

나는 다른 사람의 말을 제대로 들었을까?

나는 떠도는 말에 휩쓸리지는 않았나?

나는 내가 한 말을 실천했을까?

나는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말을 했는가?

시간이 지날수록 말, 특히 온라인에서 떠도는 말에 대한 고찰은 한번쯤 깊이 다루어질만하다. 작가도 이 책에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다루고는 있다. 상대가 눈 앞에 있지 않기에,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기에, 더욱 가볍고, 흥청망청 쏟아지며, 무수한 오해의 소지를 담고도 진실은 끄나풀조차 분별해내기 어려운, 어느 때보다도 위험한 '말'들이 날선 공격의 수단이 되어 여전히 힘을 받고 있는 시대. '말'로 인해 죽고 살았다던 오래 전 이야기를 쉽게 넘기기에는 상처가 가득한 시대. '말'에 대한 오래 전 선인들의 지혜가 어느 때보다도 간절한 이 시대를 살고 있기에, 작가의 고찰이 적지않은 울림을 남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