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의 사색 - 재독 철학자 송두율의 분단시대 세상읽기
송두율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10월
평점 :
절판


송두율 교수를 알게 된 것은 대학에 막 입학한 때였다. 그의 저서 <역사는 끝났는가.>는 한 번쯤 통독해 볼만한 책이었다. 그 후 몇 년동안 후배들에게 권해주기도 했다. 그가 던진 화두가 무척 신선하고 내게는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그로 인해 우리 사회가 시끄럽다. 개인적으로 이런 소란은 건강함의 증거라 생각한다. 거물 간첩으로 몰락한 그의 책에 대해 서평을 쓴다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의 죄와 학문은 별개의 문제가 아닐지...

송두율 교수의 입국이 계속 무산되면서 서글프기까지 했다. 그럴 때마다 그의 신간으로 애면글면 위안을 삼았다. 기다린 만큼 필요한 때 그의 글을 접했으면서도 역시 글과 책으로써는 한계가 있어 아쉬웠다. 그 아쉬움은 독자의 미흡한 독해능력 탓도 있겠지만, 송두율의 글쓰기를 제한하는 경계인의 현실이리라.

한겨레신문사에서 펴낸 <경계인의 사색>은 그의 민족애와 철학의 깊이가 느껴지는 책이다. 비단 남·북 간의 통일문제 뿐 아니라, 디지털시대의 미학과 종교 동양사상 등 그의 폭넓은 지적탐험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그가 '독자의 직관적 이해를 도우려'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인정하듯 '압축적이고 난해'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역시 경계인으로서 불립문자의 마음을 전하기란 어려운가보다.

다양한 글들 중에서 시선을 끄는 것은 역시 '내재적 방법'에 의해 북한의 '개건(改建)'을 평가하는 부분이다.(3부 또 다시 '내재적'으로 본 북한.) 이 부분에서 '엄격한 자기 비판'을 전제로 할 때만 진정 추구해야 하는 '보편적 가치'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그가 주장했던 내재적 방법에 근거해 북한의 개건을 바라보고 있다.

송두율은 북한이 '평균주의에 따른, 낮은 수준의 국가에 의한 분배보다는 일정 정도 차등화를 유도하는 물질적 자극'을 선택했다고 인정하며,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경제 운영의 개선책보다는 '인민들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동고동락한다는 일체감'이라고 주장한다.

덧붙여 북한 스스로가 사회주의적 소유형식을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하는 점을 들어 중국의 '개혁'과 북한의 개건은 다른 것이라 전제한다. 그렇지만 저자는 북한의 개건수준이 기대에 못 미치는 이유로 '천안문사태' 등 중국의 개혁과정에서 드러난 부작용들을 제시함으로써 중국과 북한의 연관성에 대해서 완전한 부정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북한 개건 성공의 관건은 '제국주의 련합세력의 포위'라는 '힘든 조건'을 헤쳐나가는 데 있으며 이것이 중국의 사례와 근본적으로 다른 북한의 현실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북한의 개건 성공의 또 하나의 중요한 관건은 남한이며 북한을 지원하는 것은 '통일의 물질적 기반을 닦는' 과제임을 각인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이 한발 앞선 것은 그러한 지원이전에 북한이 '어떠한 사회를 꾸리려 하느냐'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책을 덮고 나서도 앞서 언급했듯이, 글이 갖고 있는 아쉬움이 떠나지 않는다. 6·15공동선언에서 나타난 '자주'에 대한 논의, 남북 통일방안의 공통성에 대한 그의 내재적 방법이 객관성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검토하였으나, 명확히 결론까지 도달하지 않는 것은 경계인으로서 현실이 제한한 탓이 크다. 그에게 '오컴의 면도날'은 애초에 그 스스로 거부했거나, 아직까지는 부담스러운 도구라 생각된다.

내면의 외침과 외부의 메아리가 다를 때 육신은 그 경계에 서게 된다. 그곳은 서로 다른 주파수의 음파들이 어지럽게 충돌하는 혼란과 부담의 공간이다. 그는 글쓰기와 몸을 지치게 했던 그 경계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그만하면 이제 내면의 외침과 외부의 메아리가 공명하는 것을 느낄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적어도 우리 사회의 지성계는 '송두율'이라는 공명장치에서 울려나오는 음악으로 인해 혜택을 볼 것이다.

송두율 교수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걷는 곳은 경계의 날 위다. 실존의 한계상황이다. 물론 누군가는 무당의 '작두타기'처럼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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