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서바이벌 키트 책담 청소년 문학
엔네 코엔스 지음, 마르티예 쿠이퍼 그림, 고영아 옮김 / 책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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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권의 가슴 먹먹한 청소년문학을 읽었다. 「학교 서바이벌 키트」라는 제목의 아동청소년 문학 소설이다. 성장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주인공 14살 빈센트가 학교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학교 서바이벌 키트]는 네덜란드 학교 폭력예방 추천도서로 선정됐으며, 2020년 독일 아동청소년 문학상 최종 후보작이기도 하다.

학교폭력이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선진국에서도 일어나는 문제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세상 어딘들 문제가 없겠는가만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선진국은 조금은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일종의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네덜란드와 독일에서 이 책이 주목받았다는 점 하나만으로 무언가 못내 아쉽기도 하고 묘한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다.

동시에 질문도 생겼다. 흔히 말하는 후진국, 아프리카나 동남아 여러 나라의 학교 풍경은 어떨까? 그 나라에서 살아가는 학생들 세상에도 학교 폭력이 있을까? 라는 질문이었다.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겠지만 만약 제3세계나 아프리카 학생들의 삶의 만족도가 더 높다면 우리나라뿐 아니라 여러 선진국에서 그 이유를 발견하고 본받고 배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소설은 1인칭 시점이어서 묘사가 사실적이다. 게다가 전개가 빠르다. 전개 속도가 빠르니 속도감이 높아 몰입도 있게 읽을 수 있다. 때때로 위트가 녹아들어 있어 킥킥거리며 읽을 수도 있다. 자연스레 책 속으로 마음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마저 들었다.

섬세하고 관찰력이 뛰어난 14살 빈센트는 초등학교 때부터 집단 괴롭힘을 당한다. 그 고통이 학교에 가야 하는 아침마다 복통으로 나타난다. 아이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다 등교하기 때문에 늘 지각하기 일쑤다. 안타깝게도 담임선생님은 눈치채지 못한다.

딜란이라는 친구가 이사 온 후부터 강도는 점점 더 쎄진다. 딜란이 수학여행 때 제대로 손봐주겠다는 협박을 한다. 기대감과 즐거움으로 가득한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빈센트는 하루하루가 고통의 날이다. 그러던 중 또 한 명의 친구 '재키'라는 여자아이가 전학 온다. 함께 점심을 먹고 재키 집에서 놀기도 하고 재키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희망도 가져본다.

수학여행을 가고 싶지 않아 수학여행 당일 배가 아프다고 거짓 구토까지 하며 연기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엄마 역시 빈센트의 상황을 눈치채지 못하고 수학여행지에 빈센트를 데려다준다. 모두가 잠든 날 밤 딜란의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빈센트는 손목에 깊은 상처를 가진 채 좁은 창문으로 탈출한다.

탈출한 빈센트는 달려서 숲으로 들어간다. 숲에서 그동안 살아남기 위한 서바이벌의 연습 상황이 실제가 된다. 빈센트는 집단 괴롭힘이 없는 숲에서 자유와 평화를 누리게 될까? 서바이벌이 가능할까?

가스라이팅(gaslighting) :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로, <가스등(Gas Light)>(1938)이란 연극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빈센트는 집단 따돌리는 아이들로부터, 심지어 심리치료사로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한다. 조금 다를 뿐인데 다들 빈센트가 이상하다고 한다. 심리 치료사는 빈센트가 아주 예민한 아이라 많은 것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책을 읽으며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빈센트의 부모, 심리치료사, 담임 선생님 등 빈센트 주변의 어른들이 지나칠 정도로 빈센트에게 무관심하다. 아이가 다쳐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매일 지각을 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오죽하면 심리치료사를 만났을까. 그러나 심리치료사마저 빈센트의 내면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다. 조금 심한 표현일 수 있지만 빈센트가 고통받는 데는 어른들의 무관심이 상당 부분 기여한다.

빈센트를 괴롭히는 친구들은 도시락을 공처럼 서로 주고받고, 밟고, 쓰레기통에 던지며 낄낄대고 조롱한다. 빈센트의 신발을 마구 밟아 더럽히고,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코를 틀어막는다. 심지어 빈센트를 공원 나무에 묶어놓고 가버리기도 한다. 빈센트는 어른들의 외면과 또래 아이들의 폭력에 끝없이 고통당한다.

그 누구도 빈센트의 편에 서는 사람이 없다. 누구도 빈센트를 이해하려는 사람이 없다. 결국 빈센트는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내가 이상한 걸까?"

 

한껏 밖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빈센트는 두 눈을 뜬 채 꿈을 꾼다. 또래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빈센트, 마음을 나누고 싶어도 그 누구 하나 마음을 받아주지도 나누어주지도 않는 빈센트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친구와 함께 웃고 떠들고 놀고 싶었을까.

결국 빈센트는 꿈속에서 상상의 동물을 만들어낸다. 상상 속에서 만나는 동물들을 친구로 삼아 마음을 나누고 시간을 보낸다. 다람쥐, 망아지, 지렁이, 딱정벌레와 대화하고 상상의 시간을 보낸다. 과연 누가 정상이고 누가 비정상인 걸까? 아이들이 이렇게 된 까닭은 자신 때문일까? 이런 세상으로 몰아간 어른들 때문일까? 묵직한 질문을 떠올리게 만드는, 한 편으로 마음을 먹먹하게 만드는 아동청소년 소설이다. 청소년기 자녀를 둔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으면 좋을, 청소년을 지도하는 선생님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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