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나와 아레스 - 제17회 '마해송 문학상' 수상작 문지아이들 166
신현 지음, 조원희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말 목장을 배경으로 경주마라는 독특한 소재의 책은 처음 접했다. 음... 낯설고 생소했다. 책을 읽자마자 기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입부터 시작하는 아나운서의 생생한 말경주 해설은 속도감과 함께 높은 몰입도를 선물해 주었다. 

책을 읽어가면서 질문이 생겼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며, 던지고 싶은 질문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단순한 경주마 이야기는 아닐 텐데, 이 이야기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질문이 피어올랐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마음을 가득 채우는 질문을 해결하려는 열정으로 책을 읽었다. 페이지를 넘기고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마음을 쏟으면서 결국 나는 입시에 찌들려 살아가는 중고생이 떠올랐다. 마치 경주마처럼 좋은 성적, 1등이라는 성적을 얻기 위해 좌우를 둘러볼 조금의 여유도 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 학생이 떠올랐다. 우리나라 입시제도, 교육문제는 심각하다. 어제오늘 문제도 아니다. 갈수록 더 무거워지는 것 같다. 이런 제도 속에서 앞만 보고 달려가는 중고등학생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했다. 눈물을 삼켰다.


아테나와 아레스는 기수가 꿈인 새나와 경주마의 교감과 성장을 다룬 이야기다. 전설의 기수인 아빠와 누구보다 말과 경주를 사랑하는 엄마, 쌍둥이 자매 새나와 루나는 말 목장에서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장에 아테나와 아레스가 태어났다. 같은 날 태어난 아테나와 아레스는 훌륭한 경주마가 될 수 있을까? 

새나의 아빠는 2000승을 기록한 전설의 기수 마화랑이다. 그는 오로지 우승만을 향해 달리는 기수이다. 우승에만 목을 매는 마화랑은 기승 정지 처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오직 우승을 놓쳤다는 것만 아쉬워한다. 새나의 거실 진열장에는 아빠의 우승컵이 당당하게 서 있다. 우승을 위해서는 다른 경주마의 진로를 방해하거나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것 역시 아무 문제 될 것 없다는 생각이다. 

반면 새나의 엄마는 기승 정지 처분을 받은 적이 없다. 새나의 엄마는 페어플레이 기수상을 몇 번 받았다. 그것이 전부이자 끝이다. 사람은 페어플레이상을 받은 기수는 기억하지 않는다. 1등만 기억하는 오늘 우리네 세상의 판박이를 보는 기분이다. 엄마의 페어플레이상은 진열장에서도 맨 아래 칸에 다닥다닥 붙어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새나의 엄마는 개의치 않는다. 새나의 엄마는 우승이 아니라 말과 경주를 사랑하는 기수이기 때문이다.


아테나는 경주마 중에서 으뜸으로 인정받는 혈통에 귀하디귀한 백마이다. 말썽을 부린 적도 없고 반항한 적도 한 번도 없다. 아테나는 에이스다. 모범생이다. 시키는 대로 할 뿐 아니라 기대를 충족시킨다. 아레스는 평범한 혈통의 흔한 갈색 마이다. 아무도 마주가 되지 않아 처분되어야 할 위기에 놓였다. 그런 아레스를 새나는 경주마로 만들기 위해 온갖 애를 쓴다. 기승 훈련을 시켜보지만 역부족이다. 아레스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분방하다. 이 둘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아테네는 첫 경주에서 마화랑을 태우고 우승한다. 역시 아테네다. 믿을 '마'이다. 기대를 충족시킨다. 더 높은 기대를 품어도 좋을 것이다. 더 큰 부담을 지워주어도 이겨낼 것이다. 귀한 혈통에 실력으로 응답했으니 그런 기대를 가질만하다. 과연 그럴까? 섣부른 결론은 어디에서 금물이다.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아테나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돌발 행동을 한다. 다음 경기(아테나는 우승할 것이란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에서 아테나는 순식간에 펜스를 뛰어넘어 벽을 향해 질주한다. 

이 장면에서 숨이 턱 막혔다. 가슴이 미어졌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우리 아이들이,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아이들, 믿을 맨이란 기대를 받던 아이들, 누구보다 뛰어난 성적을 거둘 것이라 의심하지 않았던 아이들, 시키는 것보다 더 많은 것으로 보답할 것이라 의심하지 않았던 아이들이 어느 날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진다. 

언젠가 들은 뉴스가 있다. 전교 1등 한 아이가 투신자살한 사건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더 이상 2등으로 내려가기 싫기 때문이었다. 전교 1등일 때 생을 마감해야 내려가는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자유로운 존재로 생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1등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누가 아이를 떠민 것일까? 사회일까? 부모일까? 이 나라의 교육 제도일까? 

아레스는 경주마 주행 심사에서 도무지 출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아레나는 태생부터 경주마가 아니라고 보아야 할지 모른다. 새나는 아레스가 경주마가 되어 우승하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더 노력하면 경주마가 될 수 있고, 더 애를 쓰면 조금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 운 좋게 뛰어난 기수를 만나면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새나는 다른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아레스는 무조건 경주마가 되어야 한다는 것 외에는... 아레스는 결국 경주마가 되지 못한다. 그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아테나와 아레스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자녀들의 삶과 그들의 마음을 엿보게 한 소설이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의 고유한 가치를 애써 외면한다. 어른들이 정해놓은 대로, 어른들이 기대하고 요구하는 대로, 사회가 규정한 대로의 길을 가야 성공이라고 말한다. 그 길만이 유일한 성공의 길이라고 강요한다. 말 잘 듣는 아이가 좋은 아이다. 시키는 대로 하는 아이가 모범적이라고만 말한다. 무조건 틀린 말이라고 하긴 어렵다. 어른의 말에 대놓고 반항하고, 반기를 들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을 무조건 옳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옳은 말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고, 기대하는 대로 살아내야 좋은 삶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가슴을 찢어놓은 세월호 사건만 보아도 얼마든지 증명할 수 있다. 말 잘 듣는 아이들, 어른들의 말에 아무 생각 없이 순종한 아이들은 사지로 내몰렸다. 말 잘 듣는 아이, 어른이 시키는 대로 사는 아이가 무조건 옳다고 말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다. 

우리는 경주마가 아니다. 경주를 위해 태어나지도 않았고, 존재하지도 않는다. 경주만이 삶의 유일한 목표로 삼을 수 없다. 1등만을 강요하는 세상은 감옥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모두 다르게 태어났다. 다른 재능을 가지고, 다른 관심을 가지고, 다른 열정을 가지고, 다른 개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다양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다. 자신이 살아가야 할 삶을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누군가의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 미래를 선택하고, 개척하고, 열어가야 할 책임과 자유를 가지고 태어났다. 먼저 살아간 어른은 강요가 아니라 존중을 보여주어야 한다. 답답할 때가 있다. 아쉬울 때도 있다. 진심을 담은 조언과 충고를 아끼지 말아야 할 때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의 인생을 사는 것도, 그가 나의 기대를 살아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많은 청소년이 아테나와 아레스를 읽으며 자신의 고유한 개성과 관심과 재능을 발견하기 위해 조금 더 관심과 열정과 에너지를 쏟으면 좋겠다. 어른들이 아테나와 아레스를 읽으며 자신도 자신의 삶을 살아내면 좋겠다. 무엇보다 자라는 청소년과 아이들에게 기대라는 대의명분, 성공이라는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을 응원하고, 그들의 관심사를 함께 탐색하고, 그들이 자기 인생을 살아가도록 격려하고 응원하면 좋겠다. 

아테나와 아레스를 읽으며 오늘의 우리의 모습, 나의 모습을 돌이켜 보면 어떨까? 저자의 말처럼 꿈과 목표를 이룬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고, 꿈과 목표를 이루지 못한 평범한 수많은 사람에게도 박수를 보내면 어떨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