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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좁은 길 - 구원받은 성도의 분명한 증거
폴 워셔 지음, 황영광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19년 3월
평점 :
“좁은 문, 좁은 길” 서평
폴 워셔를 뭐라 부르면 좋을까? 목사, 선교사, 작가? 그를 지칭하는 가장 적합한 이름은 “복음전도자”가 아닐까 한다. 그는 청중에 대한 두려움을 일찌감치 버린 듯하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그분을 향한 경외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책에서도 시인하는 바, 이 책은 현장 설교를 책으로 엮어 낸 것이다. 그래서 생생한 필체가 인상적이다. 글이 직접 내게 말을 거는 듯하다. 동영상으로 접했던 폴 워셔를 상상하며 책을 읽으면, 같은 공간에서 그의 음성을 들리는 것 같다. 절박한 목소리로 때론 호소하고, 때론 진지하게 설명하는 한 사람의 설교자를 머릿속에 그리며 독서하시길 권해본다.
이 책은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이 책이 본문으로 삼고 있는 마태복음 7장은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는 구절을 담고 있지 않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예수님은 마냥 친절하기만 하신 분이 아니다. 예수님의 미소를 대할 수 있는 사람은 회개와 믿음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다. 워셔는 가짜 회심자들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당신은 계속 죄를 회개하십니까?”
한 번의 극적인 회개. 눈물과 콧물을 쏟아내며 생애적으로 주님을 만났던 시간. “그 이후 나의 삶은 180도 바뀌었습니다!” 나는, 우리는 이러한 간증과 가르침을 얼마나 많이 접했던가! 그러한 간증과 가르침의 배후에는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대한 압박이 있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어서, 신앙과 상관없이 이런 회심을 경험한 척 할 수 있다. 그래야 무리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단 한 번의 위대한 회개”에 대한 강조는 그 이후의 지속적 회개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워셔가 지적한 그대로이다. 성화를 위한 몸부림을 강조하면 율법주의자 낙인이 찍혔던 시절은 오래 전이 아니다. 계속하여 회개하고, 지속적으로 믿음 안에 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선한 일을 끝까지 이루실 것이라는 폴 워셔의 메시지가 복되다. 이게 복음이다. 이게 기쁜 소식이다. 회개와 믿음, 성화에의 간절함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기에.
폴 워셔에게 감사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제자도의 기준을 제대로 잡아 주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길은 적당히 좁은 것이 아니라 매우 좁다는 것을 타협하지 않고 전달해 준 것이 고맙다. 나 역시 워셔처럼 가르치는 사람이다. 설교하는 사람이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전하려면 청중의 눈을 어떻게 피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15도 위 전방을 쳐다보면 훨씬 쉽다. 하지만 사람들은 가슴으로 이 메시지를 받지 못하겠지. 난 워셔의 심장이 부럽다.
책을 읽는 중 심각한 어려움에 처했었다. 모든 것이 끝나버릴 수도 있을 찰나였다. 그러나 우셔의 글이 나를 살렸다. “당신이 정말 거듭났다는 최고의 증거 중 하나는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육신이 걷기 원하는 길을 걷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그리스도인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불순종하면 성령님께서 오셔서 그를 질책하십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질책하시거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가 자매를 통해 그렇게 하십니다.” 시험에서 건지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워셔는 박스터의 글을 인용하며 책을 연다. 죽어가는 자로서 죽어 있는 자에게 설교하는 사람 폴 워셔. 내가 하나님을 안다고 자부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아시는가”임을 두려움 없이 선포하는 폴 워셔. 세속주의가 한국교회를 뒤흔들고 있다. 이러한 때 모든 성도들의 일독을 권한다. 쉽게 읽을 수 있었고, 읽는 내내 도전의식을 느꼈다. 다른 이들에게도 그러할 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