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서양건축사 - 스톤헨지에서 해체주의 건축까지 클릭 시리즈
캐롤 스트릭랜드 지음, 서민영.조난주.김마리.양상현 옮김 / 예경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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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 서양미술사]를 요긴하게 보고 있던 지라 같은 저자라는 사실만으로 방심하고 이 책을 구입했다가 또 한번 자지러질 뻔 했다. 도대체 이 역자들은 번역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도리아 양식을 도릭 오더(36쪽), 이오니아 양식을 이오닉 오더(40쪽), 코린트 양식을 코린티안 오더(41쪽)으로 옮기고 원통형 궁륭을 배럴 볼트, 교차 궁륭을 그로인 볼트(48쪽) 라고 옮길 것이라면 차라리 영어로 쓸 것이지...영어를 못 읽는 ('이해못하는'이 아닌) 독자를 위한 배려인가? 아니면 미쿡에서 유학하고 오신 것 티내는 중이신가? (역자들 중 미국에서 공부하신 분은 1분으로 나오는데...다른 3분은 뭐하신 건가...)

이 정도는 애교로 넘어간다고 치자. 하지만 서양에 미국만 있는 것은 아닐 텐데 이태리건 독일이건 프랑스건 고유명사는 죄다 영어식으로 읽어놓는 것은 또 뭔가? 이태리의 피렌체대성당을 플로렌스 성당(98쪽)으로, 독일 바로크 건축가 발트하자르(또는 발타자르) 노이만(Balthasar Neumann)을 발타자어 노이만으로(130쪽), 루이 14세 시대 프랑스 재무장관 니콜라 푸케(Nicolas Fouquet)를 니콜라스 푸케(126쪽)으로 옮긴다는 것은 기본적인 미술사책 한권 참조하지 않았다는 것이며 번역의 기본적인 관례조차도 모른다는 것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장 자크 상페 전시회도 열리고 있는데 그 유명한 꼬마 니콜라도 못 들어 본 걸까? 그렇다면 피어첸하일리겐 (vierzehnheiligen)을 ‘14성인 성당’으로 옮기거나 주를 달아주었으면 하는 것은 아마도 지나친 요구이겠지....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내용은 읽어보기도 싫었지만 깊이 들어가지 않아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글들이 수두룩하다. 가령 “푸케는 이곳(보르비콩트 성)에 그의 좌우명 ‘얼마나 높아야 그가 오르지 않을까’를 새겨놓았다”(126쪽)라는 문장은 무슨 뜻인가? 물론 이 문장 앞뒤로 독자의 이해를 돕는 단서는 전혀 없다. 너무 궁금해서 야후에 찾아보니 푸케 집안 가문의 문장이 앞발을 들고 일어선 붉은 색 다람쥐인데 그 문장과 함께 ‘quo non ascendet (jusqu'ou ne montera-t-il pas?/ to which(what) heights will he not scale?)’ 즉 ‘어디까지 오르지 못할까’ 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고 나온다. 이런 설명 없이 독자가 위의 문장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결론적으로 역자들은 무지한데다 게으르고 독자에 대한 배려도 전혀 없다. 그렇다면 출판사는 왜 아무런 압력도 가하지 않을 것일까? 더구나 캐롤 스트릭랜드의 [클릭 서양미술사]를 이미 출간한 상태에서 왜 같은 저자의 작품의 질적 수준을 이렇게 차이나게 두었는지... 같은 저자의 책을 같은 클릭 시리즈로 출판하면서 중복되는 부분에서 확인 한번 해보지 못할만큼 바쁜 일이 있었던 것일까? 최소한 도판에 대한 설명 순서라도 일치시켜야하는 것 아닐까? [클릭 서양미술사]의 경우 예술가, [작품명], 연도, 소재지 순서이고 작품명을 괄호 안에 두어서 구분이 명확한 반면 [클릭 서양건축사]는 언급했다시피 고유명사도 영어식인데다 작품명, 소재지, 예술가, 연도 순이고 괄호도 없이 쉼표로만 구분해서 정신만 사납다. 이것은 분명 편집자의 문제이고 출판사의 문제이다. 사실 출판사의 동조없이 이런 책이 나올 수가 없겠지만...

소망이 있다면 캐롤 스트릭랜드가 이런 사정을 모르는 채로 조용히 재번역이 나와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역자대표는 ‘건축 아는 만큼 보는 즐거움’이라는 서문에서 “캐롤 스트릭랜드는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건축사를 매우 즐거운 읽을 거리로 탈바꿈시켰다”고 했는데 역자들은 이 즐거운 건축사를 매우 지루한 읽을 거리로 탈바꿈시켰으며 그들의 무지와 무성의만큼의 괴로움으로 독자에게 돌려주었다.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화만 치솟는다. 그러니 일찌감치 접어두고 원문을 구해 보는 편이 정신 건강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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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루치여루 2011-07-21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로 공감이 안되네요. 오히려 저는 역주들의 번역이 책을 질적으로 높여줬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