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의 변증법 - 철학사상총서
테오도르 아도르노 외 지음, 김유동 외 옮김 / 문예출판사 / 1995년 9월
평점 :
절판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은 서구의 근대를 상징하는 계몽의 기획에 문제점이 있음을 지적한다. 이 책의 초판본이 쓰여진 것은 1944년. 곧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고 인류 역사상 유래 없는 대규모의 전쟁을 수행하며 유태인을 학살하던 시기이다. 합리적 이성과 인류의 보편적 이상을 추구하는 독일이 어쩌다가 가장 야만적인 전쟁을 일으키게 되었을까. 또 수백만명의 유태인을 학살하게 되었을까. 과학과 이성이 발달한 시기에 어떻게 이런 야만적인 일들이 행해지게 되었을까. 이 책은 아마도 이와 같은 시대적인 맥락 하에서 출현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들은 현실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우선 계몽의 개념을 치밀하게 파헤친다. 우선 계몽은 '미지의 것, 불안한 것, 설명 불가능한 자연, 공포의 자연'을 '합리적인 것, 설명 가능한 것, 과학적인 것'으로 변화시키는 데에 있다고 말한다. 모든 불확실한 것을 '수학적인 공식'으로 명백하게 밝혀서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곧 계몽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근대적 사유는 수학적 사고와 동일시되며, 모든 존재들은 수학의 대상으로서 물화된다. 곧 다음과 같은 명제, '세계에는 과학이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존재란 없지만 과학이 뚫고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존재가 아니다.'가 성립하게 된다. 모든 것이 주체를 중심으로 설명이 가능한 보편적 현상이 되지 않으면 존재로서 인정받을 수조차 없는 나락에 빠지고 마는 셈이다.

저자들은 이와 같은 '계몽' 개념에는 이미 신화적 사고가 자리잡고 있음을 놓치지 않는다. 신화 역시 인류가 '불완전한 자연, 공포의 자연'을 인간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는가. 따라서 20세기는 '계몽의 신화'의 시대다. '계몽'이든 '신화'이든 물론 그 근저에 가로놓여 있는 메커니즘은 스피노자의 말처럼 '자기를 유지하려는 노력이다.' 그것은 유일한, 또는 제 1의 기초가 된다. 저자들의 분석은 오디세우스의 귀환과 쥐스틴느의 줄리엣의 분석을 통해 더 명확한 근거를 드러내준다.

저자에 의하면 계몽에는 이미 파시즘의 징후가 노정되어 있는 듯하다. 계몽은 달리 말한다면 일종의 잘못된 미메시스다. 저자들은 올바른 미메시스는 주체가 객체(자연)에 동화 혹은 조화를 이루기 위해 객체를 존중하며 닮아가려는 노력이지만 잘못된 미메시스는 그 반대다. 주체가 객체를 자기 것으로 끌어들여 주체의 성격을 객체에게 주입하려는 행위가 곧 잘못된 미메시스다. 이 과정에서 주체의 반성적 사고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주체는 옳은 것이며, 객체는 변화해야할 대상이다. 깨달음을 얻고 보편성의 기준을 지닌 주체는 독단적인 보편성의 기준(?)을 타자에게 혹은 자연에게 강요한다. 받아들이든지, 말든지는 자유다. 하지만 오늘 이후 그대는 우리들 사이에서 이방인이 될 것이다.

계몽은 특수하고 개별적이고 그래서 설명 불가능한 자연과 현상을 보편적인 것으로, 보편적인 지식과 학문적 체계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떠맡아왔다. 프랑스의 백과전서파인 달랑베르를 보라. 모든 현상을 백과사전으로 유형화시키고 체계를 세우지 않았던가. 극단적인 보편성의 추구. 그러나 그것은 인류역사상 가장 끔찍하고 잔인한 파시즘의 징후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었다. 또 한 가지 칸트가 말하듯이 계몽은 이성을 공적으로 사용할 때, 곧 공공선을 위해서 활용할 때 성립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공공선이란 무엇일까. 애국일까, 인류의 개량일까, 유태인 학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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