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영화 [7개의 봉인]에는 십자군에 참여했던 안토니우스 블로크라는 기사가 자기 고향으로 돌아오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이 나온다. 블로크는 대담하게도 '죽음'을 향해 체스를 두자고 제안하면서 게임이 끝날 때까지 자기 목숨을 유지하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는 '죽음'으로부터 유예 받은 시간 동안 교회당에서, 혹은 화형 당하는 마녀에게서 인간 구원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하지만 결국 어떠한 확신도 얻지 못한 채 '죽음'에 이끌리고 만다. 죽음과 나이듦에 대한 공포를 뛰어넘어 살아가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일까. 어떻게 해서든지 죽음을 피하려는 기사 블로크를 보며 '소멸/낡음'이 인간에게 얼마나 큰 두려움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며칠 전에 후배의 여자친구로부터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란 책을 선물 받았다. 제목은 들어봐서 익숙했지만 정작 내용은 잘 모르고 있었던 책. 차츰 차츰 읽어가는 동안 이 책이 죽음에 관한 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사뭇 놀랍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아는 죽음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까뮈의 [페스트]에서 느꼈던 누구도 예외 없는 죽음이랄지, 유태인 학살처럼 폭력에 의한 어처구니없는 죽음이랄지 그것도 아니면 또 테러와 같이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죽음 등 예기치 않은 죽음의 모습들이 순간순간 지나쳤다. 그중 기억에 남는 죽음이란 몇 달 전 읽은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에서 볼 수 있었던 스콧 니어링의 '스스로 곡기를 끊고 맞이하는 죽음'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 모리 교수는 루게릭 병을 앓는 사람이다.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도 걸렸다는 이 병은 근육을 마비시켜서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으로 매우 희귀하다고 알려져 있다. 일흔살의 고령인 모리 교수는 회복이 불가능한 상황에 빠지게 되고 자신이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죽음이나 늙음 자체를 타자화해서 자신만은 비껴갈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런 까닭일까, 예정된 일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하는 데에 당황스러워 한다. 중세의 '메멘토 모리, 곧 죽음을 기억하라'는 어구는 아마도 죽음을 잊고 사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낯익은 것으로 만들어 태연하게 받아들이라는 교훈일 것이다. 모리 교수는 자신이 죽어갈 것임을 깨달은 뒤에 고민하기 시작한다. 더욱 더 살고자 하는 의지를 불태워야 할 것인지, 아니면 곁에 놓인 죽음과 더불어 삶의 의미를 탐구할 것인지.

젊어서 30년대의 경제공황을 몸소 체험하고 난 모리 교수는 착취당하는 노동자를 보며 '다른 사람을 착취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으리라, 또 다른 사람의 땀으로 돈을 받지 않으리라'는 원칙을 세운다.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멸망하리'라는 오든의 시구절을 가장 좋아하던 이 노 교수는 역설적이게도 죽어 가는 동안 삶에 대한 성찰을 아포리즘 형식으로 발표하게 된다. 그의 제자인 미치 엘봄은 우연히 자신의 옛 스승이 방송사에서 인터뷰하는 내용을 듣고 찾아오는데, 그의 방문은 화요일마다 꾸준히 이어진다. 미치의 옛 스승 모리는 '나이 드는 것은 단순히 쇠락만은 아니다, 그것은 성장이다, 죽게 될 것을 '이해'하고 그 때문에 더 좋은 사람을 살게 될 수도 있다'고 말해준다. 그는 살아가는 것뿐만 아니라 죽어가는 기술을 가르쳐 주고 있었던 것이다.

모리의 생각에는 자연과 인간이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가로놓여 있다. 그의 생각에 의하면 죽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사람들이 죽음을 두고 소란을 떠는 것은 자신을 자연의 일부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연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오류. 아마 기사 블로크가 이 책을 읽었더라면 어떠했을까. 진정한 구원을 찾아 이곳 저곳 헤매는 것이 얼마나 덧없는 행동이었는지 사뭇 깨달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 거리낌없이 받아들이는 것. 죽어가는 동안에도 타인에 대한 끊임없는 배려를 잊지 않는 것. 주위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한 따뜻한 마음을 남기는 것. 그것이 곧 구원이고, 스스로를 남기는 일이라 생각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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