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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마을
신나군 지음 / 월천상회 / 2023년 7월
평점 :
상당히 독특한 그림책을 발견했어요.
일단 색감이 너무 좋아서 눈에 띄고요. 물체나 배경의 질감 표현도 아주 독특해서 맘에 들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표지로 선정된 내지 장면이 저는 제일 별로인 것 같고, 오히려 다른 장면들이 다채로운 표현 기법과 아이디어들이 돋보이고, 구도나 채색들이 재미나서 다 좋아 보입니다. 꼴라주 기법에 수채, 색연필, 아크릴을 쓴 등 다양한 채색 기법들이 보이고 어떤 건 유화 느낌도 있고요.
그렇게 독자의 눈을 잡아끄는 그림에 끌려 그림책을 집어 들고 한 장 한 장 넘기면 스토리도 참 기발합니다. 사람들이 다 ‘나만의 방’이라 할 컵 속에서 혼자서만 살고 있습니다. 아무도 밖으로 나오지 않고 그 안에서만 지내는, 히키코모리들이 모여 있는 마을인 거죠. 그렇게 각자의 공간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 가득한 현대의 대도시에 사는 개개인의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공동체의 개념은 사라지고, 같은 동에 사는 사람들은 고사하고 앞집 사는 사람과도 전혀 교류 없이 지내는 우리네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 마을에 한 소녀만은 달랐습니다. 소녀는 산책을 나왔고, 오랜 시간 거리를 떠돈 것 같은 강아지 한 마리를 만납니다. 강아지가 소녀를 졸졸 따라옵니다. 그런 강아지에게 소녀는 조그마한 꼬마 같다고 ‘쪼꼬’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드디어 관계가 생겼습니다. 혼자만 있던 공간에 강아지를 데려왔으니 나 아닌 다른 생명과 공유하는 공간도 생겼습니다. 그런데 밖에서 낑낑 소리가 들립니다. 버려진 강아지들이었죠. 소녀와 강아지는 그 녀석들도 집으로 들입니다. 갑자기 강아지들로 북적이는 소녀의 집, 다들 밖으로 나와 마을을 돌아다니자 소란스러운 소리에 너도나도 고개를 내밀어 내다보았죠. 고구마를 던져주는 할머니도 있고, 공을 던지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러다 컵 속으로 공이 빠졌고, 공을 찾으러 달려드는 강아지들 때문에 그 컵이 쿵 하고 옆으로 쓰러집니다. 강아지와 마주하게 된 컵 주인… 그리고 사람들.
한바탕 신나는 웃음. 사람들이 달라졌어요. 컵들도 달라졌어요. 사람들은 이제 컵을 세워 놓지 않게 됐어요. 안이 훤히 보이게 옆으로 넘어져 있는 집들에서 쏙 얼굴을 내밀기만 하면 서로 이야기 나눌 수 있게 된 거지요. 그리고 서로 다른 컵 안에서 얼굴을 내민 강아지가 있는 걸 보니 혼자가 아닌 동거인이 생긴 집들이 소녀네만은 아닌가 봅니다.
생명은 생명에 반응하게 되어 있지요. 꼭 사람만이 아니어도, 강아지든 고양이든 상관없지요. 마음을 나눌 수만 있다면, 함께 웃을 수 있다면 혼자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모두 함께하는 게 좋지요.
시골살이를 처음 하는 사람들이 참 괴롭고 난감할 때가 아무 때나 불쑥불쑥 문을 열고 들어오는 마을 사람들이라더군요. 그만큼 서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게 편한 세상이지요. 하지만 내 집 안에 나와 함께하는 가족이 있을 때 얘기지, 아무도 없으면 그런 주책맞은 이웃도 그립지 않을까요?
너무 기발하고 따뜻한 이야기, 멋진 그림이 눈에 쏙 들어오는 그림책 <컵마을>, 보고 나니 어느새 제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피어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