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함의 숭배 - 엘리트주의는 어떻게 사회를 실패로 이끄는가
크리스토퍼 헤이즈 지음, 한진영 옮김 / 갈라파고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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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정하지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를 운용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식은 당연히 엘리트주의라고 생각한다. 우리 대신 결정해줄 적임자들이 있을 것이고, 그 적임자들만 찾으면 사회가 매끄럽게 굴러갈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39) 우리는 엘리트에 대해 다소 이중적인 태도를 갖는데 하나는 엘리트는 부패하고 비도덕적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태도는 엘리트를 동경하며, 가능하다면 엘리트가 되어 그 특권을 향유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헤이즈는 똑똑함의 숭배(Christoper Hayes, Twilight of the Elite, 크리스토퍼 헤이즈 지음, 한진영 옮김, 갈라파고스, 2017)에서 엘리트주의의 실패를 고발하고, 엘리트주의 저변에 있는 능력주의를 비판한다.

자동차에서 수상한 잡음이 들리면 우리는 정비로소 간다. 그 이유는 정비사가 차에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지 알아낼 지식이 있고 우리에게 바가지를 씌우지 않을 정도로 정직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차에 관한 한 정비사는 권위자다. 대중의 삶에서 주요 기관과 그 기관을 운영하는 엘리트는 정비사 역할을 한다. 그들이 맡은 임무는 국정을 운영하고, 시장이나 사회에 생기는 문제점을 진단해 해결하는 것이다. 정비사건 자금관리사건 상원의원이건 우리가 권위자에게 바라는 것은 능력이 있을 것 똑똑하고, 지식이 풍부하고, 수완이 있을 것 과 권위를 이용해 다른 속샘을 관철시키거나 사익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다.(34) 하지만 우리는 권위자들의 능력도 윤리의식도 믿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게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나라를 망쳤는데도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능력주의는 인종, , 성적 취향에 따른 부당한 차별을 철폐하겠다는 약속이지만, 그 대신 인간은 능력과 진취성에서 근본적으로 평등하지 않다는 인식하에 새로운 계급을 인정하는 신념이다. 능력주의를 적극 변호하는 상황이라면 그것을 정당화하는데는 두 가지 근거가 있다. 그것은 도덕적 근거와 실용적 근거이다. 능력주의의 도덕적 정당성은 간단한다. 그것은 능력주의가 모든 사람을 그의 가치에 맞게 대접한다는 것, 즉 재능이 있고 열심히 하는 사람은 보상을 받고, 무지하고 나태한 사람은 그 대가를 받게 한다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원칙대로라면 차별의 근거는 피부색, 종교, 성 같은 우연적이고 비본질적인 특징이 아니라, 지적 능력이나 자기 단련 같은 본질적인 특징이다. 즉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피부색이 아니라 내면의 요소에 의해 평가받는 것이다.(88) 능력주의를 정당화하는 두 번째 근거는 능력주의가 꼭 공정하다고 할 수는 없어도 효율적이기는 하다는 것이다. 이론상으로 볼 때 이 주장은 반박의 여지가 거의 없다.

하지만, 이것이 능력주의를 지지하는 세력의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 해도 이론상의 주장일 뿐 현장에서 적용되는 능력주의는 이론과 전혀 다르다. 부자 집안의 머리 나쁜 자제들이 시험 성적이 낮은 아이들과 함께 하층계급에 내던져진 것을 깨닫게 되자, 그들은 억울함과 박탈감에서 온 분노를 못 이겨 결국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능력주의가 실패한 것은 능력주의가 잘 작동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작동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91)

능력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능력주의 사회는 두 가지 원칙을 받아들여야 한다. 첫 번째는 차이의 원칙이다. 이는 인간의 능력은 천차만별이므로 이러한 선천적 차이를 받아들이고, 가장 열정적이고 가장 능력 있는 이들에게 가장 힘들고 중요하며 보상도 많은 일을 배정하자는 것이다. 두 번째 원칙은 이동의 원칙이다. 이는 실적을 올리면 보상을 받고 실패를 하면 응당한 대가를 받는 모종의 경쟁과정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동의 원칙이 무시되면 능력주의는 곧 소수의 독재가 된다.(97) 능력주의의 치열한 경쟁의 압박 속에서도 부정행위를 막는 요소가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사회적 또는 개인적 차원의 도덕성이고, 다른 하나는 부정행위가 발각되면 처벌을 감수해야 할 처벌의 두려움이다.(147)

능력주의에는 두 가지 핵심적인 문제가 있다. 그것은 첫째 능력주의 철칙으로 엘리트가 된 사람은 도전받을 거라는 불안감에 자신이 타고 올라온 사다리를 치워버리게 되고, 엘리트의 자격은 점점 능력이 아니라, 다른 요인 , 집안, 권력 같이 능력과는 관계없는 것 으로 결정된다. 이 같이 능력주의 시스템이 초래한 불평등이 점점 심해지다 결국 사회 이동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된다. 즉 차이의 원칙에 의해 이동의 원칙이 작동하지 못하는 것이다.

능력주의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완벽하다. 가장 자격 있는 사람들, 가장 실력 있는 사람들이 가장 책임이 무겁고 중요한 자리에 앉아야 한다는 원칙에 어떻게 이의를 제기하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능력주의의 장점을 과대평가하고 그 대가는 과소평가한다. 능력주의가 허약한 이유는 이 원칙이 안고 있는 모순 때문이다. 즉 시간이 지나면서 능력주의 신봉자들이 장점으로 생각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불평등이 오히려 그 체제를 와해시키기 때문이다. 이것이 능력주의의 철칙이다.(333)

둘째 능력은 무엇인가에 대한 합의 불가능 이다. 사회의 엘리트가 되어 엘리트로서의 일을 잘 시행하는 것에는 어떤 능력이 필요할까? 이 능력에 대한 합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회는 똑똑함이 곧 능력이라고 잘못 생각하게 되었다. 사회의 엘리트들을 사로잡고 있는 수많은 집착 중에서 똑똑함에 대한 집착만큼 두드러지는 것도 없다. 능력주의에서 핵심을 차지하는 가치는 지능이다. 엘리트에 속한 사람들에게 명석하다는 말은 최고의 찬사다. 높은 지능은 권력층에게 빠져서는 안 될 필수적인 덕목이지만, 능력주의 사회의 특징은 똑똑함의 칭송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 더 치명적인 단계, 즉 똑똑함을 숭배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명석함은 순위를 매길 수 있고, 그래서 부에 순위를 매기듯 지능에도 순위를 매길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회에서 지능은 가장 소중한 가치가 된다.(253) 능력 있는 엘리트가 되려면 똑똑함은 필수 덕목이지만, 그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혜와 판단력, 공감능력, 윤리적인 엄격함도 똑같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특성들은 거의 대접을 받지 못한다 이런 다양한 덕목이 없이 두뇌만 비상한 사람은 굉장히 위험하다. 하지만 공감능력은 명석함보다 깊은 인상을 남기지 않는다. 반면 명석함은 보는 사람을 압도하고 매료시키며,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겁먹게 한다. 그래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모이면 갈등과 언쟁이 일어나지만, 결국은 가장 똑똑한 사람이 강하게 밀어붙인 방향으로 결정나는 경우가 많다.(259)

권력과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타인에게 의존하는 정도가 낮고, 그래서 타인의 감정과 욕구를 추론하는 능력이 발달하지 않는다. 혹은 권력이 강해지고 지위가 높아지면서 그러한 능력이 쇠퇴한다. 이 말은 우리 사회의 주요 기관과 조직의 고위직 엘리트들은 타인의 관점에 신경 쓰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관점을 고위직이 내리는 결정에 반영시키고 싶어도 그런 일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할 체제가 자리 잡아야 한다.(291)

능력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결과의 평등을 추구해야 한다. 결과의 평등에 대해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사회는 시간이 지나면 기회도 불평등한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매우 평등한 조건에서 시작해야 진정한 능력주의가 꽃핀다는 것, 이것이 능력주의의 역설이다. 그러므로 능력주의를 원한다면 평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능력주의는 결과의 실질적 평등을 중요시 하는 사회, 사회복지와 사회적 연대 의식을 고취하는 사회, 평등한 기회와 노력을 통한 계층 이동이 활발한 사회에서만 제 기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333)

결과의 완전한 평등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게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소중히 지켜야 할 민주주의 사회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재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한다. ‘기회의 평등을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우리 할 일이 끝났다고 뒷짐 지고 있을 수는 없다.(335)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의 과제는 모두가 느끼는 좌절감과 분노, 소외감을 모아 이념을 초월한 연합세력을 구축하는 것이다. 현재의 위기에서 벗어날 길을 찾으려면 정치적 상상력을 더 적극적으로 발휘해야 한다. 다양한 사회질서를 구상해야 하고, 어떻게 하면 더 평등한 조직을 만들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러려면 현 체제에 맞서 싸울 뿐 아니라 더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는 연합, 기관, 그리고 지지층을 구축해야 한다. 이런 현실에서는 물러날 수도 없고, 회피할 수도 없다. 가장 토대가 되는 기관들과 정면으로 맞서 직접 개혁해야 한다. 이빨과 발톱과 칼을 무기 삼아 터무니없는 이득을 얻는 세력에 맞서 권력을 분산시켜야 한다. 시민들의 유기적인 풀뿌리식 협동은 이런 목적을 이루기 위해 꼭 필요한 수단이지만 그것으로 끝나면 안된다.(359)

평등사회는 절대 최종적인 단계가 아니며, 민주주의는 절대 안정적인 균형 상태를 유지하지 못한다. 그것들은 과정일 뿐, 변화는 다시 일어나게 마련이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 변화를 가져올 주체가 바로 우리임을 인식하는 것이다.(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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