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아나키즘
숀 쉬한 지음, 조준상 옮김 / 필맥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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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안전과 복지를 보장받는 대가로 정부의 지배를 받아들인다. 기본적으로 이런 방식으로 우리 대부분은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형태의 정부라는 존재를 정당화한다. 우리는 기꺼이 정부와 더불어 살아나가고자 한다.(105) 이런 일반적인 생각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을 우리는 아나키스트라고 부른다. 그런데 아나키스트에 대한 인식은 왜곡되어 있다. ‘구레나룻을 기른, 미친 살인자라는 아나키스트의 이미지가 뿌리 내린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여론은 아나키즘, 사회주의, 그리고 테러리스트의 폭행을 하나로 연결해 보도했고, 많은 대중 소설과 영화는 비합리적이고 파괴적인 충동이라는 아나키즘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줄 몰랐다.(27)

하지만 지금 우리시대에 온갖 권위와 위계가 평등을 제한 할 수록 아니키즘에 대한 탐구는 의미 있을 것이다. 스타벅스와 빅맥을 언제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는 세계는 기대할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이 다 좋은 레스토랑에 가고 최고 수준의 축구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세계를 기대할 수는 없다. 평등주의는 언제나 그래왔던 것만큼이나 지구촌에서 엄격히 통제된다.(228) 우리에게는 우리 시대의 아니키즘이 요구된다.

아나키즘적 사고에 깔린 근본적인 신념은 무엇일까? 아나키즘은 혁명적이고, 위계적 권위를 거부한다. 아나키즘은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 이념에 바탕을 둔 새로운 사회질서를 열망한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다. 아나키즘은 강요되거나 집중화하거나 위계적인 권위에 대해서는 그 어떤 형태를 막론하고 비판과 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그런 형태의 권위가 구현된 제도와 조직, 사상과 예술은 사람들의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능력을 통제하거나 억압하기 때문이다. 아나키즘은 아담과 이브가 타락하기 이전과 같은 비현실적인 상상의 시대를 불러오자는 게 아니라, 일상의 삶에 책임을 지는 가운데 복잡한 현대 사회에 맞는 참여적이고 민주적인 형태의 정부를 만들어가는 과제를 짊어지는 것이다.(30) 즉 아나키즘적 사고의 핵심에는 사람들이 각자 스스로의 자유, 존엄성, 창조성에 근거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해야 하며, 자신의 운명을 가능한 한 스스로 통제할 수 있게 하는 경제체제 속에서 살면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 자리잡고 있다.(34)

아나키라는 말은 고대그리스어 아나르코스에서 유래했다. ‘지도자가 없음또는 정부가 없음을 뜻하는 이 단어의 어원은 아나키즘의 특징을 암시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 대부분이 경험해 온 유일한 정부 형태, 다시 말해 단일 국가의 중앙집중화한 권위의 필요성에 대한 거부다.(45) 아나키즘이 국가권력의 결과들에 반대하는 데는 하나의 근본적인 자유지상적 원칙, 곧 권위와 복종에 관한 수많은 관념에 도전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자유지상적 원칙이 바탕에 깔려 있다.(55)

아나키즘이 정부 형태로서의 국가를 거부하는 데는 구체적인 이유들이 있다. 아나키스트들은 권력은 부패하며,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격언을 가슴에 새겨두고 있다.(50) 권력이 집중되고 무책임하다면 어떤 체제의 정부가 들어서든 반드시 결함을 갖는다는 전제에서 아니키즘은 출발한다. 독재가 강요되는 경우에는 굳이 아나키스트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이런 아나키즘적 전제에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아니키스트들은 민주적인 사회에 대해서도 이러한 전제를 견지한다.(51)

이런 아나키즘에는 역설적인 상황이 존재한다. 전통적 아나키즘의 파괴적 측면은 혁명적 행동을 통해 정치권력을 장악한다는, 역시 전통적인 사고와 결부된 것이다. 그런 파괴적인 접근방식은 이제 거꾸로, 이데올로기적 지배를 확대하고 강화하려는 오늘날 지구적 자본주의의 특징이 됐다.(234) 그리고 1923년 말라테스타가 죽기 하루전에 마지막으로 공책에 써넣은 구절을 보면, “폭탄을 던져 한 행인을 숨지게 한 그가 선언한다. 자신은 사회의 한 희생자로서 사회에 반기를 든 것이라고. 그러나 그 가엾은 희생자는 이렇게 항변하고 싶어도 항변할 수 없다. ‘그럼 내가 사회인가?’(161) 마지막으로 아나키즘적인 것으로 통하는 것들을,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적인 방식으로 실천한 사람들은 5년 정도 지난 뒤에는 오히려 자신이 전복하겠다고 했던 조직에 들어가 열심히 일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214)

아나키스트들은 일부 사람들이 다른 사보다 좀 더 권위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경우가 있다고 보며, 그런 경우의 권위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아이 양육이나 의약 분야, 그리고 과학의 특정 분야에서는 아나키스트들도 권위를 행사하거나 수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본다. (56) 아니키즘이 거부하는 것은 삶을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경제적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게임으로 보는 부르주아적 사고방식이다. 아나키즘은 자본주의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소외의 원인은 사람들의 수요 충족에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적용하는 것에 있다는 확신을 마르크스와 공유한다. (230)

아니키스트들은 삶을 조직하는 더 나은 방식을 지향하는 열정을 갖고 있고, 사람들이 너무나도 쉽게 상상력을 버리고 현실과 저열한 타협을 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그렇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확신하는 데 대해 분노한다.(234) 아나키스트들은 너무나 견고해 보이는 현실을 찢어내고, 바로 지금 여기서 대안을 실행하고자 한다.(234) 아나키즘은 신념과 원칙들의 조합을 넘어서는 그 이상의 것이다. 자유롭게 스스로 창출되는 비위계적이고 탈중앙화한 조직, 연대, 행동양식들이 바로 아나키즘이며, 이런 것들이 바로 아나키즘을 혁명적으로 만든다.(237) 아나키즘이란 미래에 대한 이론이 아니라 우리 삶의 일상 사건들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조건들을 창조하는 살아있는 힘 · · · 인간의 성장을 가로막는 모든 것에 대항하는 모든 형태의 반란정신이다.(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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