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의 미래
알랭 드 보통 외 지음, 전병근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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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사피엔스, 인간은 지금까지 엄청난 진보를 이루어 왔다. 인간은 자연을 정복해왔고 과학기술을 진보시켰으며, 바다로 우주로 활동영역을 넓혀왔다. 또 미술 음악 문학 등에서 위대한 예술적 진보를 이루었다. 호모 사피엔스가 처음 나타난 약160만년 전부터 인간은 진보해왔고 인간의 진보는 계속될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이 있다. 이런 믿음은 어느 영화의 대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인간은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책 사피엔스의 미래(알랭드보통 외, 전병근 옮김, 사피엔스의 미래, 모던아카이브, 2017)에서는 인류의 앞날에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가?’라는 주제로 토론을 진행한다. ‘인류의 미래는 더 나아진다.’라고 주장하는 토론자는 온갖 통계적인 방법으로 인류가 실제로 진보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졌으며 많은 질병이 사라졌고 빈곤이 줄어들었으며 평화의 시기가 길어졌다 또한 범죄율은 떨어지고 교육이 보편화되었으며 인권이 신장되고 성 평등이이 확산되고 있다. 인간의 지능도 높아졌다. 찬성측 토론자들은 컵에 남아있는 물을 보고 반이나 남아 있다고 말하는 태도를 취한다. 그들은 우리는 과거를 떠올릴 때 행복했던 기억들만 걸러내는 반면 미래에 대해서는 암울한 예측만 추려낸다’(62)며 반대측 토론자들이 취하는 이상한형태의 자아도취를 비판한다.

반면 반대측 토론자들은 일명 결함 있는 호두의 어리석음이 결코 인간을 완벽하게 만들 수 없으며 상대적 빈곤과 전쟁의 위협의 증대 그리고 인간이라면 결코 정복할 수 없는 죽음의 존재 때문에 인간의 진보는 완전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또한 반대측 토론자들은 지금까지 인류가 진보해 왔다고 앞으로의 진보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인류가 어느 면에서 진보한 만큼 다른 면에서 인류가 처하는 위협은 더 커져 간다는 것이다. 그들은 토론에서 진정 문제 삼아야 할 것은 우리가 직면한 위험의 본질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70)이라고 말한다. 반대측 토론자들은 컵에 남아 있는 물을 보고 반밖에 안남아 있다고 말하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새로운 위협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류의 진보는 어떤 문제를 해결했을 때조차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115p)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인류의 미래가 나아질까?’라는 주제에 의문을 제기한다. 첫째 나아짐이란 무엇인가? 둘째 인간 개개인이 아닌 인류의 진보를 이야기 할 필요가 있는가? 위에서 언급했든 인류의 진보를 믿어 의심치 않던 나는 책을 통해 진보는 무엇인가?’ 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수명이 길어지면 인류는 진보하는 것인가? 아니면 수명과 관계없이 쾌락의 증대 혹은 진리에 도달 등 어떤 내적 만족을 갖는 사람이 많아질 때 인류는 진보하는 것인가? 단순히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면 좋은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뇌사 상태로 긴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좋은것인지는 모르겠다. 또한 교육이 보편화 되었다는 것은 지식과 기회가 평등해 졌다는 것인지, 아니면 지혜를 잃어버리고 지식만을 추구하는 사람을 양산하고 지배집단의 사상에 더 많은 사람이 세뇌 되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런 물음을 단순화 해보면 토론에 나타난 입장 차이처럼 진보는 과학의 영역인가 아니면 철학과 인문학의 영역인가에 대한 물음이 될 수도 있다. 토론에 앞서 진보 즉 나아진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1960년대 활동했던 비틀즈의 음악보다 지금 음악이 진보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나는 조선시대에 살았던 어떤 사람과 비교해도 진보한 사람인가? 그렇지 않다. 나보다 건강하게 장수한 조선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고 나보다 물질적 재화가 많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류는 진보하고 있지만 나는 진보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생각은 토론에서 진보하는 탐구 대상을 왜 인류 전체로 잡았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통계적 접근으로 인류의 미래가 더 나아진다고 확신하는 것이 옳을까? 가장자리 상황을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 인간은 각자가 특수한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런 특수한 인간을 인류라는 이름으로 하나로 묶어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인류, 나라 속에 내가 아니라 나 자신을 대상으로 나는 나아질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보는건 어떨까? 인간은 어디에 속해 있을때만 가치있는게 아닐 것이다. 인류의 미래가 통계적으로 또 평균적으로 더 나아지고 있다는 대답은 확률적으로 인류가 진보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줄 뿐 나의 미래가 나아진다는 확신을 줄 수는 없다.

인류는 지금까지 약 2000년동안 진보에 집착해 왔다.(155) 하지만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내재된 결함을 완전히 근절 할 수는 없다.’(157) 어느날 인공지능을 통해서 완벽한 기계인간이 만들어진다면 그것은 더 이상 호모 사피엔스가 아닐 것이다.(158) 진보에 집착하기 전에 인간이 닿을 수 없더라도 끝없이 추구하는 나아짐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물음 없이는 인류의 앞날에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가?’라는 토론은 무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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