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수수께끼
존 던 지음, 강철웅 외 옮김 / 후마니타스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민주주의의 수수께끼

서휘양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헌법 제11항에서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은 서로 다른 정치체제를 가지고 똑같이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몇 명이 됐든 인간이 함께 모여 있는 지구상 거의 모든 곳에 도달해 있다.(33) 민주주의가 도처에 있는 만큼이나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라는 물음은 더 큰 수수께끼가 되어간다.

민주주의는 아테네에서 시작했다.(34) 아테네 민주주의는 소수가 아닌 다수의 이익을 위해 운영되고 시민들이 사적 분쟁을 벌일 때 법 앞에서 평등하게 해주었고 개인의 업적과 노력을 통해 공적인 명예를 얻는 경쟁을 하거나 자신들의 부 또는 사회적 배경과 상관없이 도시의 지도자가 되려는 시도를 할 수 있도록 동등한 자유를 누리게 해주었다.(39) 아테네 민주주의가 뜻하는 것은 인민이 권력을 갖고 지배를 행한다는 것이다.(88) 인민의 지배는 공직의 추첨 등 여러 방식으로 아테네 민주주의가 모종의 극심한 직접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개인의 권력과 책임이 시민 집단 전체에 방대하게 확산되어 있다는 점(61)을 말해준다.

고대 아테네에서 시작된 민주주의는 우여곡절 끝에 빛나는 승리를 획득했고 민주주의에 대항하는 체제들은 거의 패망했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이 지금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적용하는 통치 형태는 윤곽이 상당히 흐릿해져 있다. 그것이 어떤 특정한 무대에서 어떤 특정한 시간에 그처럼 작동하도록 해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대단히 불분명한 채로 남아 있다.(290) 그렇지만, 현존하는 민주주의 통치형태는 대부분 인민의 지배가 아닌 대의제다. 대의제는 아테네의 민주주의와 큰 차이를 보인다.

아테네에서 아테네인들 위에 군림하는 최종적 권위를 보유한 자는 데모스 즉 인민 자체라기보다 법률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법률은 시민들의 민회와 법정의 끊임없는 해석 및 적극적인 선택을 통해서만 궁극적인 우월적 지위를 행사할 수 있었다.(292) 민주주의 하에서 아테네 시민들은, 꽤 합당하고도 정확하게, 스스로를 다스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보다 엄청나게 덜 배타적인 근대 민주주의 체제들에서 시민 집단은 그런 유의 어떤 일도(입법 행정 사법적인 모든 국가의 중대 사안을 민회에서든 법정에서든 다수결로 결정함) 하지 않는다는 것이 명백하다.(293) 아테네 시민으로 태어나는 행운을 가진 완전한 성인 남자라면 누구든 민회에서, 마침 그 자리에 참석해 있으면서 그러고자 할 경우 무엇을 할 것인지에 관해 인민들에게 연설할 수 있는 평등한 권리를 갖고 있었다. 근대민주주의가 법을 만드는 결정을 할 때(전쟁에 있어 더더욱)그와 조금이나마 유사한 어떤 일도 지금은 전혀 일어나고 있지 않다. 평범한 시민들이 입법회의에 개인 자격으로 참석하는 일은 결코 없다.(309) 고대민주주의가 시민들이 자신을 위해 자유롭게 그리고 직접적으로 선택을 하는 것이었다면, 근대 민주주의는 주로 시민들이 향후 자기들을 위해 선택을 하게 될 상대적으로 소수의 동료들을 대단히 제한된 상황에서 아주 가끔씩만 선택하는 것으로 보인다.(312)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왜 대의민주주의로 변질되었을까? 물음의 답은 근대 미국의 탄생과정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미국의 헌법제정회의에 버지니아 대표로 참석했던 매디슨(James Madison)은 인민의 정부가 갖는 핵심적인 약점을 파벌이라고 했다. 매디슨은 파벌의 원인이 제거될 수 없다고 확신했고 나아가 순수한 민주주의는 파벌의 해악에 대해 아무런 치유책도 허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139) 또 미주연합은 거대한 영토를 포괄하고 있었으며 매우 많은 수의 인구를 수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민주주의적인 정부가 할 수 없는 방식으로 거대한 영토와 많은 인구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정부 기획을 필요로 했다.(141) 즉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파벌과 거대공동체에 적용할 수 없다는 문제로 대의민주주의로 변형되었다.

대의 원리가 미 공화국의 중추를 이루었다. 희랍의 민주적 공동체들과 미국 정부 간의 진정한 차이는 폴리스의 관리에서 인민의 대표들이 포괄적으로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 내의 어떤 역할에서도 집단으로서의 인민이 전면 배제되는 것이었다. (142) 집단으로서 자기들 공동체의 통치에서 전면 배제되는 인민이 공동체를 직접 지배한다고는 도무지 생각될 수 없었다. 최종적으로 공동체를 통제하는 것은 시민 대다수의 의지였지만, 미국이라는 새로운 국가를 제대로 된 용어로 부르자면 민주주의라고는 부를 수 없었다. 이것은 고대 희랍의 민주주의적 도시국가들과 미국이 다르고 미국이 전혀 민주주의가 아님을 입증하는 증거였다. (143)

슘패터는 민주주의는 인민의 투표와 거기서 따라 나오게 될 통치 권력을 얻기 위한 정치인들의 경쟁이며 그것은 인민의 지배가 아닌 정치인들의 지배라고 규정한다.(294) ‘정치인들의 지배는 평등을 파괴한다. 대의민주주의는 국가의 권력을 독점하는 정치 엘리트를 만들어 낸다. 정당한 폭력이라는 수단의 효과적인 독점에 의해 지원받는(125)정치 엘리트와 인민은 절대 평등할 수 없다. 대의민주주의의 선거를 두고 프랑스의 철학자 루소는 선거는 4년이나 5년에 한 번씩 투표할 때만 주인과 자유인이 되고 선거만 끝나면 다시 노예로 돌아가는 제도이다.”라고 까지 표현했다.

아테네의 순수한 민주주의는 파벌과 규모의 제약성을 이유로 대의민주주의로 변형되었다. 발달한 과학기술은 아테네 민주주의의 규모의 제약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직접민주주의를 시행 할 수 있는 기술력과 사회적 시설이 구축되어 있다. 거의 모든 국민은 휴대전화를 소지하고 있고, 인터넷망에 접속하는 일은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는 것 만큼이나 쉽다. 또한 대의민주주의가 파벌의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심화시켰음은 정치 뉴스를 조금만 시청하면 단박에 알 수 있다. 대의민주주의를 유지해야할 이유는 남아있지 않다. 자칭 민주주의자라는 사람들이 직접민주주의를 반대하는 아이러니야 말로 진짜 수수께끼는 아닐까?

직접민주주의 시행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은 다시 고대 아테네에서 찾을 수 있다. 플라톤은 대의제냐 직접민주주의냐가 아니라 민주주의적 지배에 대해, 또 그것을 둘러싸고 형성되며 그것으로부터 생기는 생활 방식에 대해 비난을 제기한다.(76) 플라톤은 평등에 대한 민주주의의 헌신에 부수하고 상응하는 자유를 향한 격정은 반드시 민주주의적 지배를 그 기반에서부터 약화시킬 것이고 그 안에 있는 모든 형태의 권위를 해체할 것이며(77)결국 민주정은 자의적 지배 즉 참주정으로 귀결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자유의 절정인 민주주의로부터 가장 완벽하고 가혹한 노예상태로 급전직하하게 되는 것이다.(80) 매우 민주적인 방식으로 처형당한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은 민주주의는 어리석고 사악하며 언제나 잔인해질 가능성을 갖고 있는 자들의 지배(76)이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비판한다. 그리고 타고난 재능을 바탕으로 철저한 교육으로 만들어진 철인이 통치하는 정치체제를 주장한다.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하는 현자는 존재할 수 없다. 즉 정치적 결정의 결과는 알 수 없는 영역의 것이다. 하지만 그 정치적 결정을 내가 내렷는지 아니면 누군가가 내린 결정을 강제로 따르는지에는 큰 차이가 있다. 자유는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의 결과를 책임지는 것이다. 인민이 권력을 갖고 행사하는 민주주의가 지혜로운 현자가 내린 결정에 복종하는 철인치자정체보다 인간의 자유를 더 실현시키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가진 기술력을 이용해서 직접민주주의를 실현 할 수 있다. 우리가 실현 할 직접민주주의는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보다 훨씬 민주화된 민주주의가 될 것이다. 민회가 열리는 광장에 나가지 않아도 발달한 정보통신은 24시간 어느 장소에서나 공론장으로 입장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아테네에서는 여자와 노예, 외국인을 제외한 오직 폴리스의 시민인 성인 남자만이 민주주의의 인민이었지만, 우리는 모든 인민이 평등하게 참여하는 민주주의를 실현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인간이든 안장에 누인 채 세상에 태어난다거나, 누구든 말에 탈 부츠 신고 박차 붙인 채 태어난다는 주장을 거부한다.(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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