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페어 컬처 - 쓰고 버리는 시대,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하는 삶
볼프강 M. 헤클 지음, 조연주 옮김 / 양철북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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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페어 컬처 / 볼프강 M. 헤클

쓰고 버리는 시대,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하는 삶



수리와 수선은 자연스럽다

나는 책의 초반에 자연의 플랜(자연은 오류를 범하며, 그 오류를 자연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라도 다시 고친다. 27쪽)을 설명한 부분을 특히나 흥미롭게 읽었는데 수리와 수선의 개념을 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은 어딘가 불완전하고 완벽하지 않을 때, 어딘가 고장 났을 때 그것을 고쳐나간다. 하지만 절대적인 무결함이나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더는 발전할 수 없는 어떤 체계가 될 테니 말이다. 32쪽


생명은 자가 치유력으로 스스로를 고쳐나가는 능력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보았을 때, 물건은 이에 해당하지 않지만 그 물건을 사용하는 인간에게 수리와 수선이 결코 먼 개념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자연은 오류가 있을 때 그것을 쉽게 버리지 않는다. 그게 완벽한 모습으로 대체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떻게든 살아남는 쪽으로 방향을 튼다.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계속해서 생명이 유지된다는 점이 자연스럽다. 그러니 우리가 물건을 너무 쉽게 쓰고 버리는 것,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쓰임의 흐름을 단칼에 끊어버리는 행위는 부자연스러움에 가깝지 않을까. 




잃어버린 문제 해결능력

보통 내가 사용하다 망가뜨리는 물건은 대부분이 업사이클링이 가능한 카테고리에 속한다. 하지만 약간의 도전을 요하는 일들 예컨대 화장실 세면대의 배관에 문제가 생겼다거나 부엌 수전을 교체해야 하는 일 앞에서 나는 쭈뼛거린다. 관심 있는 것들은 들여다보며 시선을 주지만 흥미가 없는 것들, 내가 손대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규정한 것은 요리조리 살펴보며 구조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고쳐줄 누군가의 손을 기다리거나 그들의 능력을 빌려야만 해결할 수 있었다. 


주위에 주방 수전쯤은 뚝딱 분리해내고 새것으로 교체를 시도하는 친구가 있다. 이런 것도 할 줄 알아?라고 물었을 때 ‘안되면 해보는 거지’하며 유쾌하게 몽키스패너를 집어 드는 친구의 삶에는 다시 쓰고 고쳐 쓰는 것들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주워온 나뭇가지로 집을 장식하거나 자투리 천을 가리개로 활용하거나 오래되어 닳았지만 버리지 않고 사용하는 주방도구 같은 것들이. 아마도 그녀는 스스로 고치고 창조해내는 일의 즐거움을 일찍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쓴 헤클 교수 역시 물건을 고쳐서 쓸모를 연장시켜주었던 작은 기쁨을 평생 누적해 온 사람으로 이런 태도가 기반이 되어 근본적으로 무슨 일이건 직접 끝까지 파헤치려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한다.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뭔가를 고치며 다른 이를 도와주는 경험은, 우리에게 그 어떤 것보다 큰 해방감을 안겨준다. 무슨 물건이든 직접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은 자기 확신을 강화시켜준다.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의욕이 커지고, 더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지 호기심을 가지고 주변을 살피게 된다. 17쪽


리페어 컬처는 지식과 능력, 분석적 사고를 바탕으로 하지만 또한 삶의 지혜와 가치관 그리고 무엇보다 세심함에 기초하고 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물질적인 것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곧 인간으로서의 나에 대해서도 뭔가를 말해준다. 100쪽.


미국 작가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에는 불에 탄 집을 철거하고 다시 짓거나 자동차를 수리하는 사람들의 묘사가 나온다. <스토너>를 읽으면서 옛날 사람들은 다 고칠 줄 아는구나 하고 생각했던 게 기억이 났다. 현대인들은 직접 차를 수리하지 않는다. 전문가가 따로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스스로 차를 수리하는 데 쓸 시간과 여유가 없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한때는 기술자가 아닌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도 이런 걸 할 줄 알았다. 마치 문제 해결능력이 생존의 조건인 것처럼. 




당신은 어떤 소비자인가?

일부 환경 도서들은 대부분 ‘어떻게’에 집중해 노하우를 전하려고 하는 반면 이 책은 ‘왜’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하나의 부품 교체를 위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본인의 이야기를 예로 삼아 자신처럼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되려 합당한 비용으로 제품을 고쳐 쓰는 것이 가능하도록 기업에 요구할 수 있는 소비자가 될 수 있는지를 물어본다. 


우리는 수명이 짧은 제품들에 이미 너무 많이 익숙해져 있다. 79쪽


제품을 디자인할 때부터 수리가 유효한 일정 시점까지 합당한 비용으로 제품을 고쳐 쓰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어떤 제품을 만들든 우리는 기술의 진부가 가져다주는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동시에, 재활용 가능성과 지구의 자원 상황 및 생태와 에너지의 전체 균형을 고려해야 한다. 물론 간단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74쪽


나는 무언가를 고치고 오래오래 쓰는 사람인가? 하고 자문해본다. 물건이 고장 나지 않도록 주의해서 사용하지만 그 기능을 잃을 때에는 마음속에서 양가감정이 생긴다는 걸 알아챘다. 물건이 헤지거나 망가지면 그것을 좋아하고 아꼈던 시간과 추억 때문에 아쉬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이내 ‘새것’을 살 수 있다는 기대에 살짝 들뜬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새로운 것에 대한 욕망은 옛 물건에 대한 아쉬움과 집요함을 너무나도 쉽게 이겨버린다. 결국은 건강하게 정립되지 못한 나의 신조가 소비주의 문화 속에서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전혀 문제없는 부분까지 교체해야 한다면 환경에 대한 고민은 어디로 간걸까? 58쪽


효율성을 높이고 더 값싼 재료를 쓰면서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쓰고 버리는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이런 사회는 수명이 긴 제품을 더는 가치 있는 물건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고쳐 쓰는 것 또한 무의미한 태도로 간주해버린다. 87쪽




결국 나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싶다는 것은 나의 생활 반경을, 주변의 사물을 대하는 태도와도 긴밀히 연결된다. 헤클 교수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하며 우리를 게으른 소비자로 내모는 산업의 흐름에서 벗어나, 더 지혜롭게 일상을 가꾸자고 말한다. 



내게는 스마트한 기기보다 스마트한 인간이 먼저고, 또 더 좋다. 스마트한 인간이 진정으로 스마트한 제품들을 만들고 이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마어마하게 쏟아져나오는 제품들 사이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 우리 소비자들이 구분할 수 없는 상태라면, 그건 제대로 된 발전이라고 볼 수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스마트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2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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