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랜 불안에게
이원영 지음 / 꿈공장 플러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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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새벽 꽃시장에 다녀왔다. 기약없는 코로나의 종식 소식과 더불어 끝을 알 수 없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만난 작은 기쁨이었다. 비가 내릴 것 같은 흐린 날씨를 알기나 하는지 저마다의 색과 향을 뿜어내는 꽃들 사이에서 오랜만에 사람들의 활기를 보니 감회도 새로웠다. 어떤 이유로 꽃을 사는 걸까, 꽃을 사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피어있어 더욱 좋았다. 이원영 작가의 [나의 오랜 불안에게] 에는, 그런 꽃같은 삶이 담긴 듯 하다. 오랜 기간 불안을 앓아내고 버텨오며 꾹꾹 눌러적은 수필이 담긴 책을 봄의 한가운데에서 만났다.



 자유를 즐기는 여유보다 괴로움, 외로움, 막막함 따위의 부정적인 감정을 더 오래 견뎌내야 한다는 사실에 나 자신이 애처롭다.



처음 불안을 앓은 이후로 나는 굉장히 날카로워졌다. 다시는 불안을 겪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오히려 불안을 불러일으켰다. 악순환속에서 어쩔 줄 모르는 내 마음을 몰라주고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이 어찌나 야속하던지. 감정의 잔을 가득 채워 찰랑이던 불안은 이내 어디에서 엎어질 지 모르는 애물단지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나의 오랜 불안에게’ 를 읽으며 그 시간들이 자주 떠올랐다.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던 그 순간들, 이유도 모르고 엉엉 울던, 이건 우는게 아니라 그냥 눈물이 터지는 것이라고 애써 변명하던 그 시간들. 모든 것이 지나간 지금에야 이겨냈다, 라는 표현을 쓰곤 하지만 사실 불안을 겪는 사람들은 그저 그 순간을 견뎌내는 방법밖에는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마다 깊은 공감이 갔다.  


금방이라도 닿을 것 같던 목표가 거대한 벽처럼 느껴지자 초라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무기력과 절망 사이에 덩그러니 놓인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은 섬세한 고통이었다. 


그렇지만 견뎌내는 시간이 아무것도 선물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마음의 아픔은 어떤 병보다 전염이 빠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좋은 상담을 전문가로부터 받고, 나에게 맞는 루틴을 개발하고 안정에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 시도해보았다. 모든 것이 좋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제 내 스스로의 마음에 누구보다 더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해결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뿐이랴, 평소 같으면 차일피일 인간관계라 어쩔 수 없다고 믿던, 부정적인 사람들과의 관계도 조금씩 정리해나갔다. 불안이 정리되고 나니 일상에 의지가 더해졌고, 자연스럽게 나를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오랜 불안에게]의 서사도 그랬다. 차근 차근,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내게 필요한 일들을 찾아보는 시선의 이동을 통해 잊고 지냈던 그 치료의 시간들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었다. 사람들은 시간이 약이라고 하지만, 실상 힘든 일을 겪는 순간의 시간은 천근만근 느리기만 하다. 하지만 그 시간을 견딘 미래의 당신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않길. 책을 읽는 내내 작가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실은 나를 응원했던 그 마음으로 그의 시선을 따라가는 새벽의 독서가 행복했다. 


그럼 우리에겐 현재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안심한다.


김영하 작가는 우리가 졸업식과 같은 행사에 꽃을 선물하는 것은 한송이 꽃이 피어나는 과정이 무엇을 이루어내는 과정과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불안은 삶과 함께 지속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하루를 잘 이겨낸 누군가에게 기꺼이 꽃 한송이를 선물해 줄 수 있다면 그만큼 그에게 기분 좋은 위로가 있을까. 조금은 낯설어도 내가 나에게 꽃을 선물하며 그래, 잘 이겨냈다 라고 말할 수 있기를, 그러므로 인해 기꺼이 과거의 나와 미래의 불안을 온전히 품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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