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과 시작은 아르테 미스터리 9
오리가미 교야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을 놓치면 30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일식이 있었다. 누군가를 간절하게 기다려본 이  라면 30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긴지 가늠이나 할 수 있을까? 오리가미 교야가 선보이는 신작 <세계의 끝과 시작은> 에서는 9년을 기다려 마주한 첫 사랑을 바라보는 소년의 시선이 담겼다. 


소설은 섬짓한 살인 사건으로 문을 연다. 대학가 한가운데에서 목을 뜯긴 채 발견된 시신, 9년 전 우연히 만난 단발머리의 한 소녀를 기다리던 주인공은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일본의 청량한 분위기를 그대로 담아낸 듯한 담백한 문체와 함께 간절한 기다림으로 사랑을 이어오던 소년의 풋내음이 만난 소설은 그 자체로 여름의 내음을 담아내는 듯 하다. 기다림에 지쳐 모든 것을 내던지고 싶다가도, 처음과 그대로 느껴지는 그 두근거림을 느끼는 순간 다시 시작되던 사랑. 도노의 사랑 이야기와 함께 진행되는 반전 가득한 미스테리 스릴러는 열대야가 시작되는 여름밤에 더없이 적합한 소설일 듯 하다.


친구라도 생각한다.


살아 있어서 기쁘다.


하지만 잃지 않고 끝날 수는 없을 듯 했다.



판타지를 다루는 소설은 으레 그렇듯, 긴박한 서술과 흥미 진진한 낯선 생물체들로 가득찬 소설은 부담없이 읽어내리기에 더없이 좋다. 하지만 오리가미 교야 작가 특유의 담백한 문체와 인간이 아닌 생물에 대한 인간적인 서술은 단순히 그들을 낯선 존재로 받아들이기 어렵도록 만든다. 9년 전 눈으로 담아낸 한 소녀를 간절하게 그리워 하던 도노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소설의 이야기들을 따라 가다 보면, 누군가를 기다리며 혼자 끝내고 시작하기를 반복하던 그 시절의 내 세계를 떠올리게 된다. 도노의 세계는 꼭 한 사람으로, 세계의 끝과 시작은 또 그 곳으로 향하는, 그 무엇도 문제가 될 수 없는 그들의 순수한 사랑만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지금 뭔가 말하지 않으면 두 번 다시 그녀에게 아무것도 전할 수 없다.


처음 만난 그녀에게 뭘 전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채, 뭔가 말해야 한다는 마음만 앞섰다.


결국 입에서 나온 것은 단 한마디였다.



"또 만날 수 있을까요?"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만나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게 낫겠죠."


소설의 서평은 늘 어렵다. 반전과 스포일러를 어떻게 조절해야 할 지, 소설을 읽으며 펼쳐온 나의 상상의 한 페이지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그 간극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세계의 끝과 시작은> 의 미스테리한 살인 사건을 따라가며 모든 것들에 궁금증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누가 저질렀는지, 도노는 결국 사랑을 이루고 말지, 그 끝과 시작을 알 수 없이 이어지는 모든 것들은 책을 덮은 이후에도 깊은 여운으로 남았다. <너의 이름은> 과 같이 일본의 가벼운 소설이 만들어내는 그 몽글함은 특유의 깊은 마침표를 찍는다.


이 삶이 끝나는 순간,


네 곁에서 다시 태어날 거야.


여름의 일출은 이르지만, 잠들지 못하는 밤은 언제나 길다. 반전을 거듭하며 몇번이고 되돌아오는 미스테리한 스릴러와 단 한순간의 마주침을 잊지 못한 9년의 사랑을 함께 하는 여름 밤. 기약 없는 일식을 놓친 오늘을 마무리하는 책으로는 이만한 것도 없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