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나는 너무 많이 참아왔다 - 쓸데없이 폭발하지 않고 내 마음부터 이해하는 심리 기술
강현식.최은혜 지음 / 생각의길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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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이제는 나에게 집중할 때, 심리학 추천 


- 그동안 나는 너무 많이 참아왔다. 


강현식/최은혜 지음


참다


동사: 


1. 웃음, 울음, 아픔따위를 억누르고 견디다


2. 충동, 감정따위를 억누르고 다스리다


3. 어떤 기회나 때를 견디어 기다리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 참을인 세번이면 살인도 면한다.. 당연하게도 참는 것은 사회의 미덕이요, 참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견디지를 못하고, 다스리지도 못하고, 기다리지도 못하는 것으로 비춰지기 쉬운 듯 하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참는 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가슴에 돌덩이가 있는 듯 꽉 막힌 듯, 뜨거운 용암을 지고 살아가는 듯 답답한 느낌을 호소하는 #홧병 을 경험한 적이 있다면, 이 책이 작은 해답을 줄 수 있을 듯 하다. 심리상담가인 저자들이 적어내린 건강한 화의 표출, #그동안나는너무많이참아왔다 이다. 


이따금 그렇다. 뜨거운 물을 방금 들이킨 것 처럼 가슴이 화끈 거리고, 참는게 이기는 거라는 위로가 무색하게 그냥 그렇게라도 말해버릴 걸 하는 후회로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은 그런 느낌. 분명 화내고 발끈하는 그 사람이 잘못한 거랬는데, 왜 내 가슴이 이다지도 무겁단 말인가. 잠못드는 새벽녘 이불을 수십번 걷어차고 머리를 베게에 파묻다 보면 공연히 나 자신만을 탓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결국 이렇게 참고 살 수는 없어, 라며 부루퉁한 표정을 가지고 출근을 하게 되고, 누군가를 마주하게 되고. 또 다시 반복되는 악순환. 결국 화를 내도 개운치 않은 마음을 가진 나에게 저자들은 "건강하게 마음을 전달하고, 더 바르게 화를 냄으로서 모두에게 이로운 결과를 만들어내자"라고 말한다.


비합리적인 신념은 자신이나 타인 모두를 괴롭힌다. 


왜냐하면 그 신념이 논리적이지도 못하고, 현실적이지도 못해서,


세상의 누구라도 그 기준을 충족시키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행여나 가족과 지인이 기준에 부합한다고 해도


즐겁거나 기쁘지 않다.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나는 너무 많이 참아왔다.> 중 1장 - 그동안 나는 너무 많이 참아왔다.


사람의 마음이 무한정 늘어나 모든 것들을 포용하고 감싸줄 수 있다면 좀 좋으련만, 우리의 뇌와 마음은 늘 터질듯한 생각과 과거, 현재, 미래로 복잡하다. 모든 것들을 정리하기에도 벅찬 상황에 현실의 타인이 개입하는 순간 아수라장이 되어버리고, 내 손을 떠난 듯이 망쳐지는 내 스스로를 바라보며 어느 시점에서 무엇을 바로잡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는 지경에 이르러 버리고는 한다. 이런 순간은 초반에는 어쩌다 가끔 일어나는 것 처럼 보여 이따금의 여행이나 혼자있는 #미타임 으로 해결되곤 한다. 하지만 마음의 근육은 생각보다 유연치 않은 경우도 있고, 삶이란 나를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에 와르르 쏟아지는 모든 것을 막아내기 힘든 순간의 빈도가 늘어나다 보면 여행은 또다른 스트레스가 되어버리고 미타임은 그저 무력감과 우울감을 키우는 공허한 시간이 되어버리곤 한다. 그러니 조금더 건강한 마음 근육을 훈련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조금씩. 그때 그때 바른 마음으로, 그 화를 바른 방향으로 흘려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동안 나는 너무 많이 참아왔다>에서는 무조건 모든 상황에서 견디고 누르다 보면 언젠가는 달콤한 미래가 다가온다는 말을 건네기 보다는, 정확한 순간에 바른 방법으로 스스로의 화를 표출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뿐만 아니라, 화와 감정 표현에 다소 소극적인 우리나라의 정서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사례들과 함께 스스로의 감정 상태를 체크할 수 있는 자가 진단표를 제공함으로서 보다 객관적인 나의 상태를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을 함께한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상대방을 괴롭히는 것만 공격성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상대방을 괴롭히는 것도 공격성을 표출하는 방법이다.


이를 가리켜 '수동-공격' 이라고 부른다. 


<그동안 나는 너무 많이 참아왔다.> 중 4장, 정작 내 마음은 돌보지 못했다.


분명 나는 화를 안 냈는데, 모두가 나에게 공격적인 것 같은 그 순간, 사실 내가 표출하고 있었던 공격성을 바라보거나 안그러고 싶은데, 괜히 사랑하는 이에게 짜증을 잔뜩 부리고 난 뒤의 마음을 외상 후 스트레스 의 관점으로 바라봄으로서 분노와 화를 부정적으로만 대하기 보다는 그 자체를 올바르게 받아들이고 배출할 수 있는 작은 길을 만들어갈 수 있다. 마음의 지도를 그리듯 작은 길들을 내다 보면, 늘 잘못된 길로 빠져드는 것 같았던 인간관계는 조금 더 밝은 곳으로 향하게 되고, 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했던 스스로를 바른 시각으로 바라봄으로서 나와의 건강한 관계를 발전시킬 수도 있다. 


감정은 내것인데도 가끔 낯설 정도로,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기 어렵다. 가끔은 지질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질투를 느낄 때마다, 괜한 것에 아집을 부릴 때마다 쿨한 내가 되지 못하는 이 지질함을 바라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가끔은 심리학 책을 읽다가 덮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 감정을 너무나 직설적으로 말해주는 책은 부담스러웠고, 빙빙 돌려 두루뭉실하게 말하는 책은 답답했기 때문이다. 그 중간의 지점을, <그동안 나는 너무 많이 참아왔다.>에서는 사례를 먼저 소개함으로서 부담감은 덜고, 솔직함은 더했다. 이건 내 친구얘긴데... 처럼 들리는 사례는 대한민국의 사회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관찰될 수 있고, 내 인생에서도 한번쯤은 겪어봤을 케이스라 부담이 없다. 다정하게 상담을 진행하는 것 처럼 전개되는 심리학 용어들은 일상적인 사례와 함께 훨씬 더 가깝게 들리고 공감된다. 


질투라는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하면 자기와 대상에 대한 부적절한 개념이 형성되는데, 가령 자기는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로 남고 타인은 '내 사랑을 빼앗는' 아니면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된다. 



안타까운 점은 잘못된 고정 관념 때문에 관계를 다르게 인식하고 경험할 기회마저도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너무 많이 참아왔다.> 중 8장,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었구나. 


우리는 모두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가끔은 감정에 모든 것을 내어주기 마련이다. 합리적인 이성을 강조했던 데카르트 조차도 이성을 방해하는 감정이 우리의 정신을 가장 강렬하게 뒤흔든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감정을 지고 살아가며, 이를 통해 행복과 분노와 기쁨과 슬픔, 때로는 지질함까지 느끼며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보다 건강하고 영양가 있는 감정의 습득과 효율적인 배출. 그로인해 한층 더 발전하는 나 자신을 세울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이상적인 인간상이 있을까. 내 마음을 바로 세움으로서 비로소 남들과 연결되고, 나를 돌보기 위해 기꺼이 분노를 표출하고 참지 않음으로서 마음의 짐을 덜어낼 수 있는 방법을 뜨거운 여름의 전에 찾아볼 수 있다면 조금 더 선선한 여름의 밤공기를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을 듯 하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눈치보거나 휘둘리지 말고


'내 마음의 주인'이 되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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