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겨울
아들린 디외도네 지음, 박경리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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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무거운 책을 읽는다는 건, 그리고 그에 대한 글을 적어야 한다는 건 생각보다 조금 더 답답한 일입니다. 책이 마음의 추가 되어 내려앉는 데에는 그 주제 자체로 마음이 무거워서일 수도, 나의 이야기와 너무 닮아 갑갑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여름의 겨울> 의 경우에는.. 나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소녀의 성장을 보는 것 자체가 마음이 아팠습니다. 성장은 누구에게나 눈부신 계절의 한뼘의 아픔으로 남겠지만, 마음의 성숙이 뒤따르는 것에는 조금 더 책임이 따르는 법이고 성장의 시기에 올바른 어른이 없다면 조금 더 힘든 성장통을 겪게 되는 법이겠습니다. 아들렌 디외도네의 <여름의 겨울> 에서는 , 곧게 뻗은 지지대도 없는 상황의 작은 소녀가, 뜨거운 여름 태양 아래서 눈물로 성장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브뤼셀의 작은 따뜻함을 담은 소설, <여름의 겨울>입니다.


여름의 겨울, 은 조금 추상적인 느낌으로 다가오지만 프랑스어로 된 실제 제목은 La vrai vie, 진짜 인생 이라는 의미 입니다. 데모 라고 불리는 작은 주거촌에서 성장하는 소녀 와 그 가족의 진짜 삶은 진짜라기엔 믿기 싫을 정도로 힘겹습니다. 소녀는 밥을 굶거나, 집이 없거나 하는 고통을 겪지는 않습니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진짜 성장통은 어느 환경에서만 일어나는 특정한 사건이 아닙니다. 죽음을 목격한 이후 변하게 된 동생과 그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한 소녀, 그리고 모든 것을 방관하고 최악으로 끌고가는 어른들까지. <여름의 겨울>에서 가장 씁쓸한 성장통은, 과거로 인해 나아가지 못하는 모든 인간의 인생에 걸쳐진 후회입니다.


이야기엔 원래 우리가 무서워하는 걸 몽땅 집어넣기 마련이야.


그래야 그런 일들이 진짜 삶에선 일어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거든.


p.014 . <여름의 겨울>


갑작스럽게 목격한 죽음, 모든 것을 되돌려야 한다는 믿음으로 앞으로 나아갔던 소녀는 자신의 성장을 올바르게 인식하기 어려운 듯 합니다. 올바른 모델이 되어주어야 하는 어른들은, 과거의 문학상에서 뛰쳐나온 듯한 폭력적이고 무뚝뚝한 아버지와 그에 대응하지 못하고 "아메바"처럼 대응하는 어머니가 유일합니다. 트라우마로 변해버린 동생 질을 위해, 시간을 되돌리기 위한 소녀의 고군분투가 이어집니다. 소녀는 과학의 천재로 나오는 듯 하지만, 사실 모든 것을 저절로 이해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저 간절함만이 그 아이의 재능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누군가가, 어른이,


내손을 잡고 데려가 침대에 눕혀 주길 바랐다.


내 생의 방향을 바꾸어 주길 바랐다. 


내일이 올 것이고, 이어서 또 그다음 날이 올 거라고,


그러면 


결국 내 삶은 얼굴을 되찾을 거라고.


내게 말해주길 바랐다.


피와 공포는 옅어질 것이라고.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p.34 <여름의 겨울>


심지어 모든 조건들이 완벽할 때조차도, 


우리 마을은 언제나 절망적으로 추하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p.119 <여름의 겨울> 


담담한 성장은 늘 마음 한 구석을 불편하게 합니다. 어느 할머니가 말하듯, 어린 아이면 어린 아이 답게 하라는 그 말이 결코 어른들의 이기적인 마음만은 아닌 이유입니다. 자신의 변화를 올바르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소녀와 잘못된 모델을 통해 스스로를 틀에 가두어야만 했던 소년, 사랑을 받고 자라는 누군가를 부러워만 하는 아이의 시선이 건조할 수록, 읽어내리는 마음은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워집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의 구석에도 빛이 찾아오고, 봄이 오듯 소녀는 한뼘씩 더 자라, 조금 더 자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성장을 일구어냅니다. 담담한 성장도, 지독했던 성장통도 시간이 지난 뒤 뒤돌아 보았을 땐, 조금 더 눈부셨을 한 순간이었을까요. 홀로 버텨내기엔 위태로웠던 그 순간들을 끝내주는 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때입니다. 책을 말미에는 밑줄을 그을 여유도 없이 간절히 바랐던 고통의 끝에 소녀는 곁의 사람들과 함께, 힘겨웠던 성장의 마침표를 찍습니다.


여름은 그런 혼란스러운 감각,


내가 '엄마'라고 부르는 존재에게서 비롯한 경탄과 


내가 '아빠'라고 부르는 존재가 불러 일으킨 어마어마한 공포 사이에서 끝이 났다.



다음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면 내 삶이 바뀔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완전히 새롭게.


p.235 <여름의 겨울> 



북큐레이션 , 날


눈부신 성장의 고통, 낯선 성숙의 달콤함.


올바른 어른은 무엇인지, 20대가 지난지 몇년인 지금도 어렵기만 합니다. 어른이 되는 것의 무서운 점은 나 스스로를 책임지는 것 뿐만이 아닌, 나를 바라볼 누군가에게도 책임을 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여름의 겨울>에서는 보여줍니다. 빅토르로셀상을 휩쓸었다는 아들린의 문체는 건조하고 담담하기만 해서, 자칫 그 어른들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 으로조차 보입니다. 스스로의 아픔도 온전히 품지 못하는 어른들의 모습과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도, 모든 것을 되돌리고 싶어하는 순수한 소녀의 마음이 대비되면서 보여주는 불편한 감정. 사회가 책임져야 할 것은 아이들의 식사만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책입니다. 끝나가는 겨울의 한 구석, 어른이 되고자 하는 봄을 준비하시는 "어른이"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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