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어하우스
베스 올리리 지음, 문은실 옮김 / 살림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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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야기는 진부할수록 즐겁습니다. 뻔하디 뻔하다는 말이 목끝까지 차오르지만, 누군가가 누군가를 만나 눈 깜빡할 순간에 반해버리는 대목이라던가, 두 사람이 은근하게 손을 맞잡는 부분. 책을 덮을때까지 반복되는 로맨틱 코미디 멜로의 클리셰 속에서도 사랑은 언제고 그 분홍을 빛내는 듯 합니다.. 이제 코끝으로 느껴지는 겨울의 시작에서, 조금 색다르지만 따뜻한 사랑 이야기를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영국의 한복판에서 침대를 나눈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려낸 베스 올러리의 소설, #셰어하우스 입니다.




침대를 나눈 남녀의 이야기라니, 조금 이상한 방향으로 생각이 흘러갈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책의 제목과 같이 두 주인공 리언과 티파니는 집을 임대하고 임차한, 셰어 하우스라는 철저한 이해관계 속에서 만남을 시작합니다. 야간 근무를 해야하고 주말에는 다른 일정으로 바쁜데다 돈은 필요한 집주인 리언과 낮 근무를 하고, 돈은 없는데 집도 없는 형편의 임차인 티파니는 2교대로 , 각자의 생활을 영위하며 #동거 를 하게 됩니다. 


 생활에 필요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위해 시작한 포스트잇 쪽지의 대화는 조금씩, 조금씩 더 서로에 대한 이야기로 번지기 마련입니다. 전화나 메세지로 1초만에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21세기에, 한글자 한글자 눌러쓴 쪽지로 통하는 마음은 조금 더 강할 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천천히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티파니와 리언의 시작.  그들은 씁쓸한 서로의 처지와 상처를 바라보게 됩니다.


냉장고 문에 이마를 잠시 얹었다가 종이 쪼가리와 포스트잇 노트들을 손가락으로 훑어본다. 


엄청난 양이었다.


농담, 비밀, 이야기들. 


두 사람의 인생이 천천히 펼쳐지고 있는 광경. 


두 사람의 인생이 바뀌어 가는 광경.



아니면 뭐랄까, 


동시에 똑같이 바뀌는 장면이랄까.


다른 시간대,



같은 장소에서.


분홍 분홍한 사랑의 이야기 속에, <셰어하우스> 가 가지는 또다른 매력은 사랑의 상처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다는 것입니다. 최근 대두대는 #데이트폭력 중 비교적 눈에 띄지 않아 그 심각성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은, 그리고 모르는 사람들은 더 많은. #가스라이팅 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낸 것입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이 책을 읽어온 분들도. 가스라이팅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저 또한 그랬으니까요. 이해를 돕기 위해 정의를 덧붙입니다.


가스 라이팅 Gas-lighting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해 피해자가 스스로 그 상황을 의심하게 만듦으로서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


오랜 기간 누군가와 사랑과 이별을 반복해왔던 여주인공 티파니는 어느 순간 자신이 자기 스스로를 격하시키고 있으며, 사실도 아닌 일에 대해서 사과를 해왔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또다른 사랑을 시작하기에도 겁이 날 정도로 스스로를 황폐화 시켜온 그 관계를 끝내기 위해, 그녀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마침내 스스로를 위한 결정을, 스스로만의 생각으로 이뤄내기에 이릅니다.

사랑이 뻔한 이유는, 아름다운 사랑에는 ​공통적인 요소들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다정한 누군가와, 더욱 사랑스러운 당신. 서로를 믿는 신뢰와, 그보다 더 강한 각자 스스로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치유되는 서로의 상처들. 그동안은 조금 막연하게 첫사랑의 누구누구로, 필연적인듯 우연적인 듯 한 사건들의 발단으로 치부되곤 했던 사랑의 장애물들은 사실 우리 마음의 불안정함이었던 건 아닐까요? 



 스스로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한발자국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 티파니와, 최악의 상황에서도 모두를 보듬기 위해 너른 어깨를 기꺼이 내어주는 리언의 관계에서. <셰어하우스>는 사랑보다 더 큰 무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해결 방법에만 집중해. 


시도 때도 없이 쳐들어오는 기억이 힘겨울거야. 


하지만 이 일은 중요해. 있는 힘을 다해야 해.




사랑에는 조건이 없다지만, 나와 다른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올바르게 사랑하는 법을 찾아 헤메이기도. 적어도 나에게 맞게 사랑하는 방법이라도 알기 위해. 혹은 내가 나를 사랑하고 보듬는 법을 알기 위해 사랑을 배우기도 합니다. 서로 함께 살아가면서 그 모든 과정을 함께 해 나가는 리언과 티피를 통해, 그리고 각자의 상황과 마음을 위해 무던히 노력하는 그 개인을 통해 조금 더 곧은 마음으로 서로를 위한 사랑을 하는 달콤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절박해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열리는 법.


<셰어하우스> 중


 밤낮없이 남을 위하느라 스스로의 행색을 살필 틈도 없던 리언과 형형 색색의 독특한 옷을 걸치는 180센티의 티피가 서로를 마주하게 되는 이 순간들은 #베스올러리 특유의 익살스러운 문체와 만나 더욱 유쾌하고, 즐겁게 다가옵니다.


부쩍 느껴지는 겨울 냄새로 옆구리가 조금 시려워진 요즘. 외로움에 시작하는 관계 보다는 , 스스로의 마음을 한번 더 돌아보고, 그 과정에서 진정 필요한 사랑의 요소들을 발견하고 싶은 당신에게, 셰어 하우스는 뻔하디 뻔하지만 가슴 따뜻한 #연애소설 이 되어줄 것 같습니다.



절박해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열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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