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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빈곤 - 산업 불황의 원인과, 빈부격차에 대한 탐구와 해결책 ㅣ 현대지성 클래식 26
헨리 조지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5월
평점 :
보통 출판사로부터 서평을 위한 책을 받을 때에는 기한 엄수의 당부와 함께 책을 읽어야만 알 수 있는 주요한 포인트 정도가 담긴 메일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책을 보내주신 #현대지성 출판사 담당자님은 무려 책을 다 읽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덧붙여주셨습니다. 책의 양이 꽤 되고 내용이 어려울 수 있으니 다 읽지 않더라도 그 느낌을 전달하는 방향으로 글을 적으라는 천사와도 같은 말씀이 이 악한 글쓴이에게 나태한 마음을 심었습니다.. 게다가 책을 읽기 전에 편견을 가지기 싫어 작가 소개도 읽지 않는 저에게 책이 어려울 것이고.. 게다가 무거울 거라뇨.. 카페도 못가져 가겠군.. 하는 의기양양한 마음으로 책을 기다렸습니다.. 고전은 읽어야 한다고, 읽을 거라고 메모장에 고전 목록도 저장해놓았지만 불행히도 고전 도서들의 저자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는 관계로 차일 피일 미루기만 했는데, 좋은 기회로 읽어보게 된다면 그것 만으로도 큰 이득이 아니겠습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든 이 엄청난 두께의 도서는 생각보다 무겁지 않았습니다.. 1차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카페에 가지고 갈 수가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카페를 가지 않는 극단적이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시간은 흘러가고 책을 아예 안읽고 글을 쓰는 것은 모범된 자세가 아니므로 목차를 살폈습니다. 논문을 읽을 때는 모름지기 서론과 결론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서 저자의 서문 과 해결책 부분 을 읽어나가기로 했습니다. 저를 탓하지 마세요.. 그것만 해도 100페이지가 넘던데요.. 도서관 가서 <간추린 진보와 빈곤> 을 안 읽은 자신을 칭찬하고 있습니다만..
그렇게 나태한 마음으로 펼친 이 책의 첫 서두를 읽고, 이 부끄러운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강렬한 결의를 담은 헌사와 함께 현재를 비판하는 시작을 읽어내리는 마음은 그야말로 비참했습니다. 1879 년이라고 쓰여진 시간이 무색하도록 현재와 전혀 다를바가 없는 사회의 모습이 처음으로 따끔, 치열하게 노력하는 이들을 위해 쓴 글을 지식인이랍시고 펼치며 읽어내린 나의 나태함에 뜨끔입니다. 부분 부분만 읽겠다는 마음을 먹게 했던 두께는 헨리 조지의 단단한 묘사와 깔끔한 문장, 경제와 관련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설명되는 전개를 통해 전혀 무겁지 않게 다가왔습니다. 이런 번역을 해내는 현대지성의 노력에도 박수를 보내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고전의 이야기가 현대의 문제에도 어색함없이 끼워맞춰질 때, 비로소 그 가치를 발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이 책에 나오는 사회의 문제들은, 지금쯤 없어졌으면 이 책이 훨씬 더 가치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이 책에 담긴 사회상은 처절하게 현실적이고 차갑습니다. 뜬 구름을 잡는 듯이 막연한 이상을 노래하는 , 하녀가 끓여주는 스튜를 먹으면서 벽난로 옆에서 쓴 책이 아닌 것 같아요. 이 책에서는 노랑내가 안나고 노동자들의 기름 쩐내가 납니다.
토지는 부의 원천이다. 그것ㅇ른 노동이 가공하는 광석을 캐내는 광산이다. 그것은 노동이 실체를 부여하는 실물이다. 따라서 노동이 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면, 그것은 노동이 토지에 대한 접근을 거부당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
어디에서나 욕구는 충족되지 않는데 노동이 놀고 있을 때, 노동의 부 생산을 가로막는 장애가 산업구조의 바탕에 끼어 들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진보와 빈곤 - 헨리조지
토지사유제라는 문제의 시발점과 그 비판과 해결로 진행되는 글은 진보와 빈곤이 왜 공존하는지, 왜 더 잘사는 곳의 빈곤은 상대적으로 도드라져 보이는 것인지와 함께 사회의 문제를 이겨나갈 방법을 제시합니다. 어이가 없고, 이해가 안되기 까지 합니다. 100년이 지나고 이제 열차가 날아다니고 지구 반대편에 갔다가 집에 오는 데에도 24 시간이 걸리지 않는 지금의 문제와 이제 막 직물을 기계로 짜는 공장이 등장해서 실업자가 생겼다는 19세기의 문제가 다르지 않은 듯 합니다. 그야말로 말 대신 지하철이 다니는 것 하나만 달라진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요. 노동자의 인권이니, 어린아이들의 행복할 권리니 하는 깊은 이야기 까지 갈 필요도 없는데 그렇습니다. 어제 출판이 되었다고 해도 믿겠습니다.
사회발전이 특별한 섭리나 무자비한 운명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선량한 불변의 법칙에 의해 지배된다. 인간의 의지가 가장 큰 요인이고, 인간 전체를 볼 때 인간의 생활 조건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대로 형성된다.
경제법칙과 도덕법칙은 본질적으로 하나이다.
진보와 빈곤 - 헨리조지
애덤 스미스와 칼 마르크스 처럼 헨리 조지를 이름이라도 들어봤었더라면 그의 말이 이렇게 와닿았을지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애덤스미스였다면 문장이 끝날 때마다 보이지 않는 손이로군 !을 내뱉었을 것 같기는 합니다. 하지만 오늘 날 조물주보다 건물주가 더 나은 대접을 받는 현실에 대해 한번쯤 고민을 해본 분이라면, 나 혼자 잘 사는 것 보다는 다같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보장받았으면 좋겠다고 술자리의 푸념을 해보셨다면, 헨리 조지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의 마음의 위안과 함께 꽤 괜찮은 해결책을 내놓아줄 수도 있겠습니다. 솔직하게 이 책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한번쯤은 완독을 하리라고 다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