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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인연입니다 - 일타 스님께서 직접 들려주신 41명 대가족의 출가.수행 이야기
백금남 지음 / 이른아침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저자가 41명이라는 대가족이 비슷한 시기에 연속적으로 출가, 수행한 일가의 이야기를 마지막 생존자였던 일타 대종사로부터 직접 듣고 기록한 내용을 사실대로 전하고 있다. 특히 일타 스님이 직접 설명을 위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가족승계보>(4쪽)를 따라, 4박 5일간의 해인사 말사인 지족암에서의 만남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일타 스님은 14세에 친가 및 외가의 식구 41명이 모두 출가하자 뒤를 이어 통도사의 고경스님을 찾아 출가하였으며, 26세 되던 1954년에 오대산 서대에서 혜암 스님과 함께 생식과 장좌불와로 하안거를 마친 뒤 엄지를 제외한 오른손 열 두마디를 연지연향(燃指燃香)했다고 한다. 두 차례에 걸쳐 경북 봉화에 있는 태백산 도솔암에서 안거정진 했으며, 1999년 법랍 58년, 세수 71세로 하와이 와불산 금강굴에서 열반에 드실 때까지 한국불교사에 큰 자취를 남기신 분이다.
연지연향(燃指燃香)한 오른손에서 살아 생전에 이미 생사리가 나와서 주위를 놀라게도 했지만(불교신문, 불기2543년 12월 7일자 3면), 무엇보다 이 책은 스님의 외증조 할머니 평등월 보살의 사후 이적으로 시작된 가족들의 승가와의 출가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명문 광산김씨 가문의 외증조부인 보운거사 김영인의 사후, 외증조모인 평등월보살은 독실한 불심으로 생전에도 이미 신통력을 발휘했으며, 사후에는 일주일간이나 방광을 보인 것으로 전하고 있다.
이런 신통력과 이적을 직접 경험한 주위의 가족들은 하나 둘씩 출가를 결심하고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고, 일타 스님에게 가장 직접적인 충격과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이는 어머니 상남(성호 스님)은 떠나기 전날 5일 장에서 아들의 운동화와 양복을 미리 준비하고는 당일 ‘주어진 대로 사는 길’과 ‘새로운 세상을 여는 길’의 두가지 길에 대해서 언급하며(171쪽) 자신의 길을 가겠노라며 당차게 당신의 길을 떠나고 만다.
부모와 자식, 특히 어린 아이의 손을 뿌리치는 어미의 심정은 부처가 아들 라훌라를 자신의 앞길에 장애라 이름하여 제쳐 놓고 출가하던 그 심정에 비유(173쪽)할 수 있을까마는, 나같이 어리석은 중생의 심정으로는 여전히 헤아리기 힘든 인연의 작용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단호한 결심과 행동이 아니면 인연의 고리를 끊을 수 없는 것이며, 육도윤회의 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단 말인가.
또한 이 책에서는 외삼촌 영천 스님을 통해서 ‘걸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부처님 자체가 걸사였으므로 승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걸사이며, 걸사란 ‘걸식을 일삼는 사람’이라고 설하고 있다.(227쪽) ‘거지’는 그냥 ‘음식만 축내고 육신의 배만 불리며 세월을 가는 사람’이지만, ‘걸사’는 ‘음식을 보시하는 이의 바램을 대신 실어 보내는 이로서 희망을 이루어주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228쪽)이라고 한다.
금오 스님이 만공 스님에게 “거지 짓도 아무나 하는 줄 아십니까? 중되는 복도 보통 복으로는 힘들지만 거지되는 복도 보통 복으로는 어림없습니다.”고 한 적도 있다(257쪽)고 전하고 있다. 깨달음이란 바로 낮은 곳으로 임하는 것(下心)임과 부처님이 걸식으로 중생구제를 위한 수행의 방편으로 삼은 이유를 알겠다. 그러고 보니 오늘날 우리나라의 승려 중 걸사를 행하는 이는 찾아보기 힘들고, 오히려 불사는 날로 요란하지만, 엄살들은 여전한 것 같다.
어쨌든 통틀어 41명의 출가자를 배출한 인연이란 참으로 기이하다. 하지만 의지와 상관없이 그런 인연으로 이미 삶이 시작된 것임에야 출가가 아니라면 달리 윤회의 고리를 벗어날 방도도 없었을 터이니, 최선의 선택이었을 수도 있으리라. 아마도 그들은 모두 해탈하였을 것이며, 영원한 열반에 들었을 것이리라. 그리하여 3대에 걸친 과보가 ‘하룻밤이 사라져버린 문 밖’(277쪽)처럼 분명 삼매의 행복이리라.
붙잡는다고 어디에 마음을 둘 것이며, 떠난다고 어디로 향할 것인가.
고해의 바다로 가는 길임을 알면서도 흐르는 강물처럼 매일 매일을 출가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