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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는 꽃이 피네 - 법정 스님 대표 명상집
법정 지음, 류시화 엮음 / 문학의숲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법정 스님의 말씀을 류시화 시인이 많은 독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엮어 낸 책이다. 스님의 말씀을 진의 그대로 전달하지 못할까 나름대로 염려를 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보기에는 충실히 진의에 가깝게 소개하고 있으며, 감초처럼 곁들인 엮자의 세심한 의견과 관찰이 더욱 독자의 이해를 풍부하게 하고 있고, 더불어 깊은 사유를 돕고 있다는 느낌이다.
스님은 무엇보다 자신에게 엄격했던 분이었던 것 같다. 맑고 향기롭게 남긴 말씀들은 밥값을 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갚음이었다고 하시며, 자신에게는 늘 ‘맑은 가난’을 스스로 강조하시면서 절제된 삶의 아름다움을 지향하셨다. 수행자의 삶은 가난해야 하며, 주어진 가난이 아니라 선택된 가난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기본적인 조건(34쪽)이라고 늘 강조하셨다.
“이 세상은 우리의 필요를 위해서는 풍요롭지만, 탐욕을 위해서는 궁핍한 곳이다”라는 마하트마 간디의 말을 인용하시며,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가릴 줄 알아야 한다(37쪽)고 하셨다. 필요에 따라 살되, 욕망에 따라 살아서는 안된다(39쪽)고 하시면서,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37쪽)에 있다고 하신다.
욕심은 부릴 것이 아니라 버릴 것(42쪽)이며, 텅 비어야 새 것이 들어 찰 수 있다(42쪽)고 하신다. 텅 빈 곳에서의 허무가 아니라 그 충만감을 느낄 수 있으면 그 곳이 바로 극락이라는 것이다.(42쪽) 허공을 채우는 그것은 과연 무엇으로 충만한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홀가분하고 가볍지만, 맑고 향기로운 기쁨일 것이리라.
장애가 없으면 해탈이란 있을 수가 없다.(59쪽) 해탈이란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일 것이므로 당연히 부자유를 전제하는 것이리라. 장애는 몹시 불편하고 살아서는 완전하게 벗어날 수도 없을 것이지만, 보왕삼매론의 말씀처럼 세상살이에 곤란없기를 바라지 말고, 피하지 말며 숙제처럼 맞서서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58쪽) 어느 순간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의 본성은 본래부터 맑고 향기로운 것이므로 스스로 깨닫고, 자신의 씨앗을 북돋아 한송이 꽃으로 피워내야 한다(86쪽)고 강조하신다. 또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고, 오직 현재일 뿐, 지금이 바로 그 때(200쪽)이므로 매 순간의 삶은 그냥 흘려버릴 것이 아니라 의미를 채우는 삶이 되어야 한다(86쪽)고 하신다. 그 하나의 의미가 바로 한 송이의 꽃일 것이리라. 그래서 이 세상을 꽃밭으로 만드는 중요한 요소일 것이리라.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80쪽)이라고 한다. 덜 가지고도 더 많이 존재할 수 있어야(64쪽) 하며, 적은 것으로써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少欲知足, 60쪽)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마도 필요에 의해 소유하는 것에 조차도 집착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일 것이리라. 지금 필요한 것이라고 한들 얼마나 의미로서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태초에 말씀이 있기 이전에 침묵이 있었노라(91쪽)며, 침묵은 모든 삼라만상의 기본적인 존재양식(91쪽)이라 하신다. 생각이 떠오른다고 불쑥 말해버리면 안에서 여무는 것이 없을 것(94쪽)을 경계하심이다. 공덕은 시끄러운 소리로 쌓는 것이 아니라, 침묵으로써 아무도 모르게 쌓을 때 비로소 생각을 다스릴 수 있음을 강조하신 것이리라. 침묵하지 않으면 교활한 마음의 작동들을 어찌 다 살필 수 있을 것인가.
진정한 깨달음은 본래의 자기 마음 한 가운데 있는 꽃씨를 일상적인 행을 통해서 가꾸어 나가면서 시절인연이 되어 비로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는 것(110쪽)이라고 하신다. 순간순간 하루하루를 익혀가는 정진이 과거의 잘못 학습되어 저장된 습관들을 걷어내고 거듭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힘이라는 말씀일 것이리라. 오직 할 뿐인 것이다.
보이는 세계는 일시적인 것이며 항상 변하는 것이고, 보이지 않는 세계가 영원하며 오히려 진리의 모습에 가깝다고 하신다. 그러므로 변화하는 세계가 있을 뿐, 근원적으로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이다.(124쪽) 이미 죽은 사람들도 다른 이름으로 어디선가 존재하고 있을 것(124쪽)이므로 죽음조차도 마음이 지어낸 두려움, 즉 허상일 뿐이라는 것이리라.
순간순간 새롭게 피어나는 살아있는 사람(149쪽)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진리에 의지하여(150쪽) 순간순간 새롭게 피어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150쪽)고 하신다. 두려워할 것은 늙음이나 죽음이 아니라 오히려 ‘녹슨 삶’(150쪽)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의지와 상관없이 깃들인 습관을 바탕으로 또 새로운 습관을 들이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 것인가. 한 생각을 바꾸면 쉬운 일이라고도 하지만, 용기와 인내, 그리고 지혜가 무엇보다 필요한 일일 것이다.
카뮈의 말처럼 오직 사랑만이 우리의 존재를 증명해 줄 뿐이므로(156쪽) 스님은 산짐승을 위한 얼음구멍을 뚫는 일부터 시작해서 삼라만상에 대한 차별없는 애틋함을 가지고 그 사랑의 나눔에 지극한 정성을 들이신 듯 하다. 그래서 엮자는 ‘나눔이란 누군가에게 끝없는 관심을 기울이는 일’임을 스님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156쪽)
꽃들이 저마다의 최선을 다해 피어날 뿐, 어느 꽃에도 비교되지 않는 것이지만(169쪽), 화려하고 초라함을 통해 시샘하고 갈등하는 것은 오직 인간의 마음작용일 뿐이니, 본성을 보는 깨달음을 강조하신다. 깨달음에 이르는 두 길은 바로 ‘명상의 길’과 ‘사랑의 실천’이며, 사랑의 실천은 ‘지혜의 길’과 ‘자비의 길’임을 밝히고 있다.(170쪽)
출가의 정신이란 비본질적인 것들을 거듭 거듭 버리고 떠나는 정신임(183쪽)을 강조하시고, 크게 버리지 않고서는 결코 크게 얻을 수 없음(182쪽)을 말씀하시면서 탐욕과 미움과 무지로부터 벗어나는 보편적인 출가의 정신을 설명하시고, 무명이 원죄(184쪽)라고 하신다. 그러나 스님의 출가 동기는 당신대로 살고 싶어서, 당신의 방식대로 살고 싶어서라고 밝히고 있다.(177쪽)
아마도 인간인 한 누구나 자신의 방식대로의 삶을 갈구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적인 조건과 상황이라는 울타리에 갇혀서 자신의 방식대신 가두리 속의 삶을 다람쥐 쳇바퀴처럼 살고 있다. 그 쳇바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달음질을 잠시 멈추어야 한다. 생존을 위해 고공크레인을 올라야 하는 현실의 삶 속에서 어쩌면 ‘멈춤’이란 꿈같은 사치일 수도 있을 것이리라.
그러나 지금 바로 새로운 마음을 내는 것이 어쩌면 가두리 양식장의 인드라망 그물을 끊어내는 일이며, 죽지 않고 살아서 다시 태어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 그물은 무수히 복잡해 보이지만 한 코만 해체해도 그물의 전부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절대 변할 수 없다는 무지로부터 깨어나서 믿음을 가지고 실천한다면 반드시 새로운 꽃을 피워낼 수 있을 것이리라.
그제서야 누군가 ‘지금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202쪽)라고 묻는다면 ‘나는 지금 여기에 있노라’라고 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