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를 쏴라 - 스스로의 깨달음을 통해 자유로워지는 숭산 대선사의 가르침
숭산행원 지음, 현각 엮음, 양언서 옮김 / 김영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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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를 쏴라



종교의 궁극의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참 나를 발견하여 현생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리라. 숭산 대선사의 가르침을 그의 제자 현각스님이 엮은 이 책에서는 항상 바로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 즉 생각 이전의 원점에 머물라는 점을 강조한다.


나라는 존재도 나를 인식함으로써 존재하게 되는 것이므로 그 나라는 생각조차 떨쳐 버림으로써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깨닫고자 하는 그 마음조차도 눈(眼)이 눈(眼)을 보려는 것과 같아(38쪽) 길을 잘못 들게 하는 요인이 되므로 ‘오직 할 뿐’(正念, 14, 62쪽)임을 강조하고 있다.

아무런 생각없이 정진하되, 완전히 고요한 적정(寂靜), 즉 부동심(不動心)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생각을 끊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이란 이름으로 ‘마음’을 어지럽히는 존재들을 제거하는 방법으로써 아마도 부처를 만나면 그 부처까지도 쏘아서 없애버리라고 하지 않았나 싶다.

주위를 살펴보면 이 세상에 진리가 아닌 것은 없고, 모든 진리들은 생각의 여지없이 찰나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것들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마치 물 위를 걷는 사람처럼 물에 빠져 죽지 않기 위해서는 그 보다 빨리 걸어야 하는 또 하나의 진리를 강조하시는 셈인가.

“순간을 유지하면 당신과 신은 결코 분리되지 않아요”(68쪽)

하나의 우주가 음양의 질서로 교차하고, 하나의 국가가 보수와 진보의 가치로 어지럽고, 한 사람이 자신을 지키려는 마음(着)과 벗어나려는 마음(脫)이 싸우고 있는 것은 고통스런 현실의 삶의 모습일 수 있다.


그러나 한 생각을 내려 놓음(放下着)으로써 평화를 구할 수 있다고 한다. 생각 때문에 싸우고, 개념 때문에 싸우는 것은 결코 평화가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른다면 생각도 없어질 것이므로 싸울 일도 없어질 것인가.

마음의 공부란 마음의 방향을 정하는 연습을 하는 일일 것이다. 그 마음의 방향을 정하는 연습을 전생에서 잘 해 온 사람은 이생에서의 삶은 물 위를 걷듯이 비교적 순탄하겠지만, 그 연습을 게을리 한 사람의 삶은 각종의 장애에 부닥치는 일들이 많을 것이리라.

그러나 아무리 마음의 연습을 많이 한다고 한들, 애초에 방향이 잘못되어 있다면 다시 업을 쌓는 일일 것이며, 내생에 다시 그 댓가를 치르게 되는 것이리라. 모든 결과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원인들이 있듯이 말이다.

아마도 지금의 생(生)은 지난 생(生)의 결과인 동시에 다음 생(生)의 원인이 될 지도 모르는 것이므로 우리는 지금 각자 예비・음모적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무엇을 예비하고 어떤 음모를 왜 하는가에 따라 참 나를 찾게 되는 결정적 실마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책을 많이 읽거나 머리를 많이 쓰는 사람이 종종 길을 잘못 찾는 이유는 집착하고 분별하려는 생각 때문(224쪽)이므로, 지식이 아닌 무엇이 본성(自性, 佛性)인지를 꿰뚫어 보려는 지혜가 더 필요할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게으르고 생각없이 사는 사람이 본성(自性, 佛性)에 가까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사람은 동물과 달리 끊임없이 생각에 시달릴 수 밖에 없는 존재이므로 그 생각이 몸을 뒤죽박죽으로 잘못 흔들지 못하게 마음의 방향을 항상 올바로 향하도록 끊임없는 수행이 필요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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