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의 인연 - 최인호 에세이
최인호 지음, 백종하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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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의 인연 - 끝나지 않은 풍경  



저자의 말처럼 인연이란 아마도 ‘신의 섭리’(머리말)라는 데 일단은 동의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밤하늘의 별처럼 만나고, 헤어지며 더불어 소멸해 가듯이 애초부터 인간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절대자의 영역임이 분명해 보인다. 존재하고 있던 순간 나를 반짝이게 한 그 투명했던 빛들조차도 나를 둘러싸고 있는 주위의  삼라만상, 그 인연들로 비롯되고 마쳐지는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또한 인연도 예외없이 마음을 따라 흐르는 강물과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흐름의 유형들은 마음으로 포용하면서 바다에 까지 이르는 인연이 있는 반면에, 마음으로 녹아들지 못하고 주위를 맴돌기만 하는 개여울같은 인연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다만 짧은 인연과 만남일수록 다하지 못한 이야기와 미련은 더욱 긴 사연의 완성되지 않은 ’풍경’으로 남아 있을 것이리라. 
 

비록 그 인연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같은 ‘끝의 공식'(17쪽)처럼 예정된 종말을 향하고 있다면, 종말의 이후를 경험해 보지 못하고, 준비도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이별이란 감당하기 힘든 굴레일 수도 있다. 이별이 있어 사랑이 존재한다는 언어의 유희를 어찌 간단하게 수용하고만 있을 수 있을 것인가.   


또 저자의 말처럼 인연이란 ’지금 시간의 강을 건너며 어깨에 지고 있는 사람들의 무게'(52쪽)일지도 모른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된 어머니의 뒤늦은 화장하는 모습을 보며, 자식된 도리로서 그 누군가에게 무엇도 되어주지 못한 회한의 중압감은 어느 누구도 쉽게 떨치기 힘들 것이리라.    


아무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 당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길’(127쪽)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을 설득시키는 일은 일생을 통하여 가장 버거운 일이라는 정도는 알만할 것 같다. 그러나 ‘죽음은 너무나 당황스런 떠남이지만, 오래 기다린 죽음은 그제야 출발하게 된 먼 여행과도 같을 것’(143쪽)이라는 기대로 마지막 정돈된 ‘풍경’을 만드는 일까지도 온전히 각자의 몫이리라.

‘향기와 꽃보다 그늘을 키우다가 가는 란’(153쪽)과 들판의 개구리, 참새, 나방(247쪽)들과 모과나무, 감나무, 대추나무(248쪽) 들이 한 줌의 흙 속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꽃이 피듯이, 인연이란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이라기 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정으로 존재하게 하는 삶의 관계들의 ‘풍경’일 지도 모른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피부의 질감까지 기억하는 인연들은 오랫동안 모두 같은 병을 앓았을 것이며, 앓고 있으며, 또 앓을 것이다. ‘추억 속의 바보’(281쪽)가 생명의 은인이었던 것처럼,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게 또 그 병들을 극복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며,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또 하나의 ‘풍경’으로 어떤 새로운 추억으로 기억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풍경’들이 비록 장미로 가득하진 않을지라도 장미와 완두콩을 구별(312쪽)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처음부터 저자의 머리말처럼 인간의 영역이 아닌 ’신의 영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나도 모르게 희미해진 기억 속의 그 ‘돌담’(321쪽)처럼 먼저 창문을 열고 그들의 이름을 부르는 일일 지도 모른다.

흔적의 시간과 관계의 공간들이 만들어 낸 기적, 그 ’인연'이라는 ’풍경'은 누군가의 붓으로 그려가는 각자의 그림(97쪽)일 것이지만, 반드시 그려진 모습 그대로 보여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렇더라도 흙이 기억하는 물과 바람에 대한 추억처럼 어느 순간에 사라지는 것도 아니리라. 
 

세상의 모든 존재들을 하나로 담아내는 ‘풍경’ 속에서  긴 여운을 남기는 나의 인연의 기록들이 하나의 이미지로 선명하게 다가 온다. 마치 그것들이 이미 오랜 세월에 걸쳐 무수히 나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지만, 이제서야 그 소리들을 처음으로 듣고 있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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